이제 신대원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1월달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한 달 있으면 종강이고 그것으로 신대원 생활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자에게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여 주신 것만으로도 참 감사합니다.

항상 중요하게 얻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따라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계획 하신 곳에 내 자신이 통로로 사용되길 원하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것을 바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율법주의적으로 살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유진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의 갈라디아서를 보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율법을 자발적으로 감사함으로 지킬 때 율법주의라는 것을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세우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일 하나 하나에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라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삶이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대 교부들이 성령을 사랑의 끈으로 생각한 것이 많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진정한 자유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렵고 답답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 사랑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십자가의 길이라도 자유롭게 됩니다.
멀리 돌아가지 마시고
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그 사랑에 반응하는 자 되도록 기도하며 나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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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공부 하면서 곤혹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의지와 은혜와의 관계입니다.
의지를 강조하다보면 은혜를 감소시키지 않을까 이런 긴장감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됩니다.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학생부에 끌려와서 선생님에게 매를 맞으면서 가장 황당하고 억울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뭘 잘 못했는지를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매를 맞는 것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이런 이런 점이 너가 잘못했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그래서 너는 매를 맞아야 하는 거야,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설명을 해 줍니다.
그럴 때 매를 맞는 아이도 표정이 나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교사로 가르쳐 주십니다. 너가 무엇을 잘못하지 않았니? 또는 이런 것을 해야 하지 않겠니? 이렇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선 우리의 의지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 되었고 요구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요구되는지를 알고 그 다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단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슬픈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우리 가운데 잘못한 것이 없고 아무것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떤 음성도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우리의 본성 때문이며 우리가 들을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누군가가 우리가 잘못했다고 충고해 주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사역자이다 보니 저에게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플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분명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있을텐데 사역자라는 위치에 있다보니 기회가 많이 줄어드는 것을 느낍니다.
분명 사역자가 아니면 같이 삶을 나누면서 저에게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의지를 드려서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참 은혜입니다.

정리해 보면
우리에게 의지를 드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렇게 되는 것 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큰 틀 속에 우리의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되지 않겠니라는 의지적 결단을 요구하는데서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삶을 고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시구나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
승리하세요.
어제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했습니다.
한 주 동안 하나님 앞에 잘 서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많이 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예수를 믿는 자로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제게 주어졌습니다.

교회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빵과 포도주가 나누어졌습니다.

아마 그 중에는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성찬은 나누어졌습니다.
그것도 똑같이 말입니다.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믿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어느 한 사람도 제외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저 나 자신을 자랑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평가할 필요도 없으며
그냥 하나님이 자녀 삼아 주신것에 대한 감사와 응답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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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젼의 사람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이재철 목사님이 하신 설교였었는데, 그분은 아마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목회자중의 한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설교라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설교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설교 대상을 생각하기에 한쪽으로 중점이 두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은 내가 교사였기에 잘 안다.
한 반에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 할 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그룹은 상대적으로 만족 못하게 가르칠 수 있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교인들의 많은 수가 기본적인 신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소수의 사람이 뛰어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그들에게 설교를 해야 한다면, 소수의 뛰어난 지식이나 믿음을 가진 사람이 보기엔 너무 쉽고 평이할지라도 난 거기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청중들 대상으로 하여 말하는 사람의 한계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청중의 소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화자에 대해 저 사람은 뭐 저 정도밖에 설교를 못할까? 왜 그렇게 큰 비젼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까 편견을 갖기 쉽다.

실제로 목사님들도 이런 종류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그들의 설교가 사람들에 의해 비난되어 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비난을 하려면, 그 설교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는지, 그리고 내가 평소에 그 설교자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 설교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비난을 한다면 그건 비난을 위한 비난이며 오히려 죄를 짓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왜 내가 비젼의 사람에 대해 썼냐면,
처음의 그분의 설교를 들을 때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에 대해 약간 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분이 스위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왜 많은 한국 사람이 스위스 로잔에 있는 YWAM까지 와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왜냐면, 그분의 신념은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 어느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지 구태여 다른 곳에 나가서 배운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서 하신 말씀이셨다.
그런데, 내 경우에 약간 반감이 든 것은, 한국에서의 현실이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는 삶, 과감히 포기하는 삶에 대해서 가르치지 못했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이나 돈을 들여서 다른 곳에 가서 훈련을 받냐는 것이다.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 엄청난 한국 교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럼 왜 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까?

그 동안 우리 교회 중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제시한 사람들이 드물었기 때문이 아닐까 쉽다.

나는 사실 수련회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수련회보다 은혜가 넘치는 삶이다. 수련회 가서는 은혜 충만하면서 돌아온 평상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경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에 전혀 하나님에 생각하지 않고, 갈망함도 없던 사람에게는 수련회가 좋은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좌우지간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여 어디를 가서 훈련을 받는 것도 좋은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평소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어디를 가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평소 삶에 충실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이재철 목사님의 그 부분에 반감을 가진 것은 제대로 된 것일까?
이 설교는 장신대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였다.
아마도 신대원생들에게 현실에 뿌리박힌 하나님과의 날마다의 기름부으심과 교제가 필요해서 특별히 그 취지의 말씀을 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나는 그 목사님께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성숙하고 본이 되시는 목사님으로 스위스 YWAM 에서 훈련받는 사람들을 평가 절하할 생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른 설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라 생각된다.

귀납적 방법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의 자세, 비단, 성경 해석하는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오해 하지 않고 바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귀납적 방법이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 사람에게만 한정된 건 아니지만,
내가 상대방을 잘 알면 그 사람과 충분한 교제를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묻어난다.
이런 자세들이 우리 가운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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