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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뜸해서 궁금하셨죠?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경순이가 미국 세일럼에서 안부전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변덕으로 사계절 옷을 번갈아가며 입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디계시든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거의 7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4월초에 세일럼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개월 동안 여행 가방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디 한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YWAM(예수전도단)에서 수십 년을 여행 가방을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음 행로를 놓고 신중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9월 이곳을 떠날 때 세일럼에서의 시간이 이것으로 마감했는지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많이 황당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굴복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세일럼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 돌아와 거의 두 달 동안 막노동을 했습니다. 커다란 베이스가 왜 이렇게 원망스럽게 느껴지던 지요. 손님들이 오고간 방을 수십 번 청소하고 더러운 화장실 변기를 박박 문지르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 함께 훈련받던 친구들이 이젠 리더십으로 올라가 회의하고 있을 때, 저는 베이스 한 구석에 처박혀 먼지를 털고 있는 모습이 참 처량해 보였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중앙아시아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의 상황이 더욱 힘들게만 느껴졌습니다. 밤마다 욱신거리는 등을 주무르면서 불평을 털어놓기가 일쑤였습니다. ‘주님! 저를 이곳에 화장실 청소하라고 보내셨나요?’


정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란 참 힘든 것 여러분도 공감하시죠? 기도하면 할수록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모델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이 떠오르면서도, 제 육체의(flesh) 연약함으로 자꾸 비교하고 질투하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모습에 어쩔 수 없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고, 선교라고 인식되지 않는 분야(부엌, 손님대접, 회계, 캠퍼스관리 등등)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섬김에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이런 분야에서 섬기는 분들을 하찮게(정직하게 고백하면) 여겼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학교를 운영하는 것 못지않게, 부엌에서 일하고 화장! 실을 청소하는 것도 주님보시기에는 중요하다는 것을 큰 값을 치르면서 몸소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승진(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을 해서 회계(Accounting)와 전화안내(reception)를 하고 있습니다. 후원자로부터 베이스로 들어오는 돈을 정리하고 입금하며, 또 베이스에 들어오는 모든 전화를 받고 베이스 내로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부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베이스가 하루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한편, 두 달 전쯤 유학생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는 분들이 한국음식을 만들어주지 않겠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대량의 잡채를 만들면서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대부분 아시아)을 만났는데 이들이야말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몇 주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였고, 또 방학을 맞이하여 월요일에 있는 친목 운동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국 학생들을 초대하면서 한국음식을 해먹자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하는 말 ‘누님! 소주는 제가 댑니다.’순간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좀 당황스러웠지만 기대가됩니다. 이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또 기? 만?따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요즘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에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곳 YWAM 세일럼 베이스도 새로운 시절이 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리더십의 교체로 겪었던 진통의 과도기를 잘 넘기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서 베이스를 향해 새롭게 주신 비전을 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다음에 자세하게 소개할 것을 기대하며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왜 돌아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며 기도할 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눅 5:38)’의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주님께서 이곳에 새로운 일을 하시고 계신데, 제게 새로운 마음과 태도로 이곳으로 돌아오기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 넘게 이곳과 인연을 맺으며 일하면서 어느 정도 타성에 젖어버린 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베이스와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회개해야 할 부분을 말씀하셨을 땐 정말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더군요. 저를 겸손케 하시려고 막노동의 시간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모든 것에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고민과 연단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나누어야 할지 몰라 소식을 자주 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떤 분께서 힘든 시간도 함께 나누어야 기도해주지 않겠느냐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던데, 굴속을 지날 때 잠잠해지는 것이 습성이 되어버린 터라 나누기가 힘들었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여러분들의 격려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주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P.S. 사진첨부

사진1 - 화장실을 예쁘게 가꿀 때 (오랜만에 붓글씨도 써보고..한자가 맞나?)

사진2 - 잡채를 만들던 날 (대부분 맛있다고 잘 먹었는데, 아이들은 당면이 지렁이 같다고 먹기를 거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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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경순이를 나에게 친구로 주심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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