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한 동네에는 주차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먼저 차를 가지고 온 순서대로 파킹을 한다.
그런데, 한 젊은 사람은 마치 빈 한 자리를 자기 자리인 것처럼 사용한다.
누가 파킹을 해 놓았을 때, 버럭 화를 내며 마치 죽일 것처럼 성질을 엄청 낸다.
미안하다고 해도 계속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순간적으로 나도 욱하긴 하지만, 그냥 참았다.
그런데, 웃긴것은 그 자리가 그 사람이 완전히 독점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이 성질 내는 일들을 경험하고 나선 아예 그 자리에 파킹을 안하게 된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소리 크고 화 잘 내는 사람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내버려두면 그 사람은 사회적인 이익을 독차지 하게 되고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보게 된다. 지적해 주고, 대응을 해야 하지만 그 반대 급부적인 것들이 두려워서 또는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 마저 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사회적인 공의는 어떻게 보면 저해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라면 좋은 해답을 주셨을 텐데... 가이사의 동전처럼 말이다.

인생 쉽게 생각하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살기 쉽지만, 그렇지 않고 하나 하나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래서 인간은 더더욱 한계를 느끼게 되고 겸손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버스를 타면 참 재밌는 게 있다. 교회 근처에 명산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런데,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웃긴 건, 산을 오르는 운동을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기 위해 산의 입구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의 버스안에서는 절대 서 있으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자리를 차지하려고 투쟁 비슷한 마음 가짐으로 자리를 확보하려는고 애절하게 노력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 여유로움으로 자리 양보하면 안될까? 씁쓸하다.

지하철을 타다보면 사람들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 앞에 서 있어 진행 경로를 막기도 한다. 그냥 실례합니다 그러면 되는데, 화를 막내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모든 일들이 인격 수양의 과정이다.

불과 5년 전하고 지금 하고 내가 느끼는 사회의 각박함은 천지차이이다. 도처에 웃음짓고 여유롭게 양보하며 미덕을 보이는 사람보다, 성질내고 못 잡아 먹어서 안 달이고 자기 것만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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