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1-32절

이 부분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 조건없는 사랑,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사랑에 대해 많이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이 구절에서 큰 아들의 모범생 컴플렉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기까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교회에서 봉사도 나름대로 많이 하고, 기도회나 기타 여러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그랬지만, 수련회를 가면 꼭 이상하게도 교회에 얼마 나오지도 않은 몇몇 사람들이 방언도 받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충만하게 들어가서 눈물 흘리고 감격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아서 일종의 질투와 회의감과 자기 연민등에 휩싸였던 때가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하나님은 저 사람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건가? 난 왜 소외 당했다는 느낌이 들까?

이런 문제들이 바로 이 구절들에서 나오는 큰 아들의 마음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도 않았으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주어진 임무들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아버지는 동생에게 예정된 몫을 강탈하다시피해서 떠난 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 작은 아들이 정말 형편없고 비참한 모습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잔치를 벌이고 큰 은혜를 베푼다.
이것을 본 큰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에 상심하고 만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 이 큰 아들의 모습들이 있다.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예배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욱더 큰 복으로 채우시리라는 그런 조금의 기대감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보다 못 해 보이는 사람들이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이것에 대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31절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것이로되....
"큰 아들아 나의 모든 것은 너의 것이다."
질투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큰 아들에게 주기로 작정하신 모든 것이나 주신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관점은 작은 아들을 더 사랑하신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큰 아들에게 이미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큰 아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작은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32절에서 볼 수 있는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었다가 얻었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작은 아들도 마땅히 구원받아야 하고 잘못에도 불구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 품에 거하도록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인 것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오해하지 말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해야 한다.
이미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있고 상급이 있으니, 죄 짓고 돌아오는 자기의 형제를 같이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안의 많은 모범생들... 능력도 있고 헌신되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이 작은 아들을 끌어 앉고 입 맞추고 사람들 앞에서 큰 잔치를 벌이는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할찌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미 소유하고 그 사랑이 거한다는 것을 알며, 포용할 수 있다면 더더욱 멋진 하나님의 모범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자기 자신이 죽어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이 시대의 모범생들의 컴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성경적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몸으로 도망간 청년  (0) 2007.03.09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  (0) 2007.03.08
치열한 일상의 현장...  (0) 2007.02.27
거룩함.  (0) 2007.02.27
2004년에 B국에서 부족 사역자들에게 전한 메세지...  (0) 2006.12.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