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마태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점점 말씀을 재밌어 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오늘은 4장 부분을 가르쳤죠.
4장은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시는 장면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시험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40일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어떤 상황가운데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 있는 의미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던 것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닮아가라는 예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사단이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40일 주야를 금식하신 예수님께 다가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속여서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고 합니다.
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 떡덩이가 되게 해 봐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죠.
이런 식의 접근은 에덴 동산에서도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너희더러 동산 나무의 모든 과일를 먹지 말라고 하였느냐?(3:1) 이렇게 물어보죠.
이런 식의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건들게 하고, 기분나쁘게 만들어서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나 존재의 의도대로 따르도록 만들곤 합니다.

약간 비약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죠. 어떤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에게 사단은 이런 마음을 불어 넣습니다. 너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못하느냐? 이런 일을 함으로 너의 힘과 능력을 보여봐 이런 식의 질문입니다.
이런 식의 마음을 불어 넣음으로 사단은 인간을 파괴의 길로 몰아 넣으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두 번째 시험에서도 나옵니다.

첫번째 질문의 두번째 부분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는 부분입니다.
바로 앞부분에 예수님이 심히 굶주리셨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굶주렸을 때 가장 원하는 것이 먹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셨는데, 못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단이 떡덩이를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요구에 대해서 내가 사단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겠다라는 말을 하죠. (구체적인 성경의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4:4)

우리가 지치고 피곤할 때, 항상 우리에게 약한 부분으로 가서 죄책감을 느끼도록 사단은 유도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알콜 중독으로 빠져든다든가, 어떤 사람은 금지된 약물 복용, 어떤 사람은 자극적인 영상등에 빠져 버립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우리에겐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처럼 자유 의지의 사용을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서 자신을 멸망의 길로 파괴되는 길로 몰아 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예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떤 학생이 너무 힘들어서 사단이 이런 속임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힘들지? 자살하는 건 어때?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사단의 길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단은 생명을 파괴하는 쪽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죽이고 멸망하고 파괴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은 사단에 의해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학생에게 이런 파괴적인 생각이 들 때에는, 자신이 자살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의지를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내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가운데 나를 맡기겠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두번째 시험은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에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재밌는 것이 사단도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는 구절은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밌는 점은, 성경 구절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게 우리의 상황에 무조건 맞는 구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 어느 하나를 딱 떼어서 그걸 자기가 원하는 목적에 사용한다면 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파괴하는 말씀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을 사용합니다.
집에 찾아와서 성경 어느 구절을 보여주고 기독인들에게 보여주고, 성경을 믿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믿는다고 하죠. 그리고 나서는 성경 구절 이런게 있는데 이것을 믿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은다음 사람들을 속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 드렸다시피, 성경은 전체적인 맥락, 문맥에 따라서 봐야지 한 구절만 떼서 사용하면 저의 어떤 주장도 다 근거로 댈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런 전략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속이는 데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변개시켜 이용하는 거죠. 좌우지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시험도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상실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번째 시험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사용하였습니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이렇게 사람들이 소리쳤죠.
마귀의 이 두 번째 시험이 바로 이 부분과 정확히 일치되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우리 죄를 대속하지 않으셨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두번째 시험에 대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대적합니다.
예수님을 이런 시험 속에 넣으면서 하나님을 자기가 움직이게 하려는 등의 의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단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마치 하나님 위에 서려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죠.

세번째 시험은 사단이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주리라고 말합니다.
참 재밌는 것은 이 세상을 사단이 자기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하 만국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으로 미혹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자신을 섬기라고 합니다.
사단이 속이는 영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면서 대적하고 있죠.

복음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예수님의 그 사명에서 벗어나게끔 속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약할 때
또는 우리가 어느 지위에서 힘이 있을 때,
사단은 우리를 유혹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살게끔 만들고 하나님을 따르지 말고 사단의 길을 따르길 원합니다.
또한, 사단이 아무 세력도 없는데, 사람들이 속임에 넘어가 사단이 시키는대로 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분명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를 멸망의 길로 가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가는데 사용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길로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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