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1)
관찰: 자주 반복 되는 단어 중에 너희라는 단어가 있다.
해석 :문맥상에서 볼 때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음행을 범한 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고 너희라는 교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문제 제기에 있어서 음행을 범한 자가 원인이 되었지만 그 죄에 대한 처리 방법이나 그 죄에 대한 부분들에 있어서 공동체에 공동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적용 :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교회 구성원들의 잘못에 대해 공동책임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수반되는 것이다. 사랑만 강조하다가 방임으로 흐르지는 않는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이다.

2)
관찰 :
5:2  너희가 교만하여 졌다.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였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교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해석) 5:8절에 보면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순전함과 진실함의 표현을 쓰고 있다. 순전함과 진실함은 문맥에서 제기된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진실함의 영어 표현은 truth로 되어 있는데, 진리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교만이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보다는 자기의 기준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행동들을 범했다. 구약에서도 보면 구원자가 하나님이기 보다는 애굽이나 바벨론을 의지할 때가 많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행동에 대해 하나님은 교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에 음행의 죄를 범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즉,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대해야지, 고린도에 유행하였던 영지주의에 바탕을 두어 그것에 따라 판단하며 면죄부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적용)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을 권면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접근하는가?

3)
관찰:
5:5 사탄을 언급한 부분
해석 :
이 부분은 해석하기 너무 어렵다. 저자의 의도는 사탄 자체에 있지는 않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사탄에게 내어줌은 영적으로 구원으로 이루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사탄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사탄의 존재가 결국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유익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적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탄에 의해 시험받으셨다. 사탄은 자기의 존재의 거대성을 생각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보잘 것 없는 존재였으며 세력없는 하나의 자기 교만의 절정이었다. 하나님은 사탄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데 이용하셨다.
결국, 여기서 볼 수 있는 점은 사탄이 자기의 의도를 행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서 이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탄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의미가 문맥상 해석 가능하다.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느끼는 것은 탕자의 비유이다.

4)
관찰:
5:7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해석 :
결국 논리체계는 예수께서 너희를 위해 희생되셨으니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는 것이다.
먼저 나오는 것은 예수가 무엇을 하셨느냐라는 것이다.
바울의 논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셨으니, 이제 어떻게 너희가 살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5:8
관찰 :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해석 :순전함은 음행의 부분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이다.
저자는 음행의 문제에 대해 순전함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히고 있고
음행의 문제에 대해 방임을 하는 공동체를 보며 교만에 따라 너희의 뜻대로 판단하지 말고
진실함, 즉, 진리 위에 서라고 말하고 있다.

더 생각해 보기:
5:1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다.
 일단 이 말 자체에는 교회 공동체가 이방인들의 모습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예수의 공동체는 예수를 안 믿는 공동체와 행위적인 면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 공동체는 구별되고 있는가?
 구별되고 있지 않다면 어느 부분이 특별하게 그런가?
 문맥에서는 음행의 특정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보편적 진리를 추론하자면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거룩함이 교회 가운데 있는것인가?

5:6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로 퍼진다.
죄의 전염성이다.
내가 지은 죄가 공동체에 해를 가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죄에 의해 공동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
죄에 대한 결과가 공동체로 확장되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는가?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뿐만 아니라 창조 세계,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까지 만들었다.
(아담 한 사람의 죄의 확장성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죄 인식에 있어서 공동체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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