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다보니 말씀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자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삶 가운데, 모든 순간 마다 예수를 떠올리고 그 분을 묵상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설교 가운데 현실과 분리된 예화를 만들어내지 않고 현실에 뿌리박은 예화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자! 항상 기억하는 문구입니다. 물론, 이 문구는 히브리서에 있습니다.

 오늘은 말씀의 성육신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이 땅 가운데 사셨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한 가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실제로 사시면서 직접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시면서 가르치셨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세지가 강력했던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을 잘 아시고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해야 그들의 삶을 얽매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 있을지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이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메세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말씀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메세지가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세지가 되겠습니까?

예로, 신학생들에게나 가능한 신학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성육신이니, 칭의니, 성화니 이야기해도 그것은 뜬 구름 잡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분의 메세지는 참 깊이가 있지만, 청중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관념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의 메세지는 너무 쉬운 수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떤 회중들에 대해서는 그 메세지가 들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회중들의 수준에 맞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전하는 사람이 회중들의 수준으로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겸손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쉬운 메세지로 바꾸면 마치 자기 자신이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또한 너무 생각이 많아도 좋은 메세지를 전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한번에 변화를 주려는 생각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메세지가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메세지를 전하더라도 회중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전달하는 메세지는 근본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성육신하여 주의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의 원리는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적용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비밀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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