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장 24절에서 27절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KJV, NASB 26절뒤, 27절 앞에 but 이라는 표현으로 잇고 있다.

따라서, 24-26절까지 내용은 한 문맥이며, 27절은 독립된 한 문맥이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체험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큰 목표였습니다.

왠지 성경만 보면 무언가 기적적인 하나님과의 만남만 보였고, 어느 집회를 통하여 제 삶이 변화되길 꿈꿔왔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이상한 집회에 갔었는데, 이 기도원 원장이 안수 기도만 하면 뭔가 일어난다는 아주 소문이좋은 집회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는지 제일 앞으로 뛰쳐나가서 안수해 주길 기다렸고

안수받았을 때 너무나 기뻐서 잠이 안 왔었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이상한 기도원이었습니다.

뭔가 은혜로운 메세지를 전하고 북을 치면서 헌금을 내도록 분위기 조성하고, 안수해 주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야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부딪혀 가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묵상은 무엇인지, 기도는무엇인지, 성경은 왜 중요한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정작 하나님 이름만 알았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사랑의 하나님이신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찬양팀을 하면서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리더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생활 속에서 신앙을 보면서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훈련을 받게 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뭐든지 새로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아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지름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생활화될 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또는 교회 생활을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나쁜 점은 바로 무언가 색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을 넘어선 뭔가 다른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해 줄 자극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도 신앙의 기본기를 지켜가는 것 보다

영적인 것에만 관심있고 은사에 관심이 있다보니 기본에 관련된 것은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적 은사만 받으면 다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는 거죠.

또 뛰어난 지식만 있으면 다 된 것이다 하고 그것만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거꾸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식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본적인 원리로 돌아가라고 고린도전서를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은사를 추구하여서 은사만 받으면 나의 신앙생활은 다 완성된걸로 생각되던 고린도교회 사람들, 또는 지적인 것만 알면 나의 신앙 생활은 다 된 걸로 생각한 고린도교회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고 무엇을 하셨는지를 체험하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철저히 기초한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고,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 그 은혜를 생각하며

그 복음을 절대적으로 붙들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리고 그 분을 알리는 것이 바울의 가장 큰 원리이자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도 이 기본적인 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MSG 버전에서는 율법 아래 있는자에게 있어서도 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율법 아래 있는자가 되었지만은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접근하였다라는 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원리가 절대적으로 작용해야 하는지를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절실하게 느끼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역자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에게 양육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목적이 되어서 정작 저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잃어버리는 것 만큼 큰 잘못은 없습니다.


 다른 교회의 어떤 여자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에게 불만이 있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뭐든지 돈에 관심이 있으시고, 성도들을 볼 때 그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집니까?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자신에게 있어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도 순간 순간마다 청년부를 생각할 때 가장 잊기 쉬운 것이 내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내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주님! 제가 주님이 필요한 자인데요, 그것을 또 잊어버리고 욕심이 앞섰네요.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요. 그것을 잊어버리면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 그래도 정작 자신은 버리워진 채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작 자신은 복음에 참여했지만, 자신이 버림받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가꾸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사역을 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평생 간직하시고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약간 제비같이 생긴 나이가 60대쯤 되는 아저씨인데,

한자에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하면서

한자 능력시험을 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자신을 가꾸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빠질 정도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내릴 때 저한테 잘 해 준다고 꼭 오라고 명함을 주셨습니다.

그 명함은 무도장과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이 분들도 먹고 살려고 자신을 잘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없어질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자신을 잘 가꿉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영적인 삶을 잘 가꾸는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우리의 노력을 기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뭐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일어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가꾸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도 세상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잘 가꾸도록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존재도 우리의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하나님에 의해 빚어지고 이 땅 가운데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잘 가꾸라고 말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아무 노력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주님은 우리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가꾸며 이땅 가운데서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은혜 이후에 우리의 반응이 항상 요구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이후에, 어떤 반응을 하시며 어떻게 자신을 가꾸고 계십니까?

자신이 항상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고 그 분으로부터 공급받으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는 다녀도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도 정작 자신은 복음에서 제외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려고 하십니까?

혹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제외되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토록 열정을 쏟았던 어떤 교회 대학부 회장 출신 한 형제가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것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역이 우상이 되어 정작 자신은 복음의 감격에서 멀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목사님들이 타락한 모습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정작 사역이 우상이 되어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데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근 몇 주 동안 저는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동생이 A형 간염으로 입원하여 있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서울에 아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성내역에서 내려 아산병원으로 가는 10여분의 그 길을 쭉 가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면 갈수록 불안한 마음도 많이 들고, 가보면 상태는 안 좋고, 집에 와서는 온갖 저의 신경이 그곳으로 쏠리며 기도도 그 쪽으로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저 개인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끼워 놓고 상황이 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날로 신경질적이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요일 저녁에 하나님께서 그 점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저군요. 하나님! 저에게 주의 은혜를 부어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안에 새로운 힘과 기쁨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전에 똑같은 길을 걷는데, 이상하게도 평안함과 기쁨이 흘러 넘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길에서 손을 벌리고 온 세계가 주께 속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기쁨으로 걸어갔습니다. 이상하게 그 전날까지 기도했던 그 숫자만큼 기도도 안하고 연락도 안 해 봤는데, 제 마음이 왜 이리 편했는지요.

오는 길에는 거의 울면서 왔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이네요. 하나님! 주님께 더욱더 집중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아니면 일 가운데 우리는 정작 그것에 사로잡혀서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face dow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엎드려 주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바로 나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알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이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작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사랑에 반응하도록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 기초는 바로 묵상과 기도입니다.


 묵상,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입니다.

이 책 제목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의 힘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이 행하십시요. 작은 기적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요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히딩크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축구에서 기본기가 정말 중요한데, 자기는 어떤 시스템이 있으면 그것이 적응되도록 또 노력하고 노력한다고.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을 자기것이 되도록 만드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여러분! 새로운 것을 찾으십니까?

기본적인 것이 자기 것이 되도록 정진하십시요.


저는 지금도 다른 사람을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해 주는 것이 어색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을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응답은

가장 기본적인 것 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평생 구하며

자신을 훈련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른 무언가 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을 돌보셨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완전하신 하나님이신데, 무슨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땅 가운데 철저한 인간으로 오셨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몸으로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아무리 사역이 바쁘시고 힘드셨어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급받음을 결코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입니다.

정작 일 때문에, 정작 상황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서 성령을 소멸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소홀히 하다가 정작 자신은 복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있어 왔습니다.

항상, 하나님 저에게 주의 은혜로 채워주세요. 주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가 없습니다. 오셔서 저에게 힘 주시고 저의 삶을 다스려 주시겠습니까?

고백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임바 되는 종교입니다.

다른 무슨 좋은 일을 했다고 자랑 할 것 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역사하시고, 내 마음의 중심이 그리스도로 향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을 점검해 보시겠습니까?

과연 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삽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며 능력이고 우리 삶의 영원한 근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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