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10:1-14

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10:3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10: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0: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10:6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10: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10: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10: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며칠전 너무나 더웠습니다.

그 때 마을버스를 탔는데, 에어컨 성능이 별로 안 좋아서인지 버스안이 정말 더웠습니다. 분명 짜증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더우면 쉽게 짜증나기 때문입니다. 마을 버스 타고 출발을 기다리면서 이 점을 깊이 인식한 저는 짜증나는데 마음을 내어 주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갑니다. 사람들이 탑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짜증내기 시작합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내려달라고 우깁니다. 사람들이 더욱더 짜증냅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신경질이 극에 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익히 예상했던 일이라 짜증나지 아니하고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밖을 내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측면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어떤 상황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짜증이 나고 화가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아주머니 때문이라든지, 아기가 운다든지 등의 이런 상황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상황을 알았으면 자신을 내어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상황에다가 맡겨버리기 때문에 그 상황에 휩쓸려 가기 쉽습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으며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정말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그 분의 도움이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을 때 새벽기도를 몇 번 나간일이 있었습니다. 기도 제목을 잔뜩 적어서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기야, 누가 너를 가장 잘 알겠니?” 생각해 보니 제가 제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곧 이어서 내가 너를 창조했으니 너가 무엇을 해야 가장 잘할지 무엇이 너에게 필요한지 가장 잘 안단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기도제목을 잔뜩 가지고 와서 일방적으로 나에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너가 무엇이 필요한지 나에게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망치로 두드려맞은 듯한 그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무엇을 해야 여러분들이 가장 잘 할지 여러분 안에 어떤 훌륭한 자질이 감추어져 있는지? 무엇을 고쳐야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자유함과 기쁨이 나오는지? 어떻게 해야 여러분의 인생이 풍성한지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니까 자꾸 어떤 유명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고, 그 방법대로 시도도 해 보려고 합니다. 알면 절대 그런 일이 없겠지요. 그래서, 조금만 맞는 것 같으면 감동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어떤 공식이 그 사람에 가장 잘 맞춰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가장 우리의 삶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도 알게 됩니다.


 제가 계속 강조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이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른다고 우리 힘으로 살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는 바로 우리의 방향성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내 인생 조차도 어떻게 바꿔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방향성을 나 중심에서 하나님에게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성장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라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어려서부터 잔소리를 너무나 많이 들어온 여러분과 저는 누가 무엇을 하라 그러면 무조건적인 반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가장 불쌍한 상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말씀도 어떤 충고도 여러분에게 하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는 상태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이었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니? 마음을 하나님께로 드리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하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울은 계속 그런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다가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잘못을 지적하니 자신이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잔소리 하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고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든지 나쁜 길로 가든지 상관이 없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2장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녀로 생각하시기에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들을 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가운데 책망하시고 이런 것은 너가 잘못 되었다 고쳐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망들이 계속 거슬립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창조시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지만 죄 때문에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를 솔직히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칫,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단지 상황이 문제인 것이야라고 말하겠습니까? 마을버스에 탄 사람들처럼 많은 사람이 단순히 상황이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본질인 자신이 마음을 어디에다가 내어 두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예배에서 무엇을 바라십니까? 어떤 감정적인 것들을 원하십니까? 예배는 감정적인 만족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감정적인 만족, 눈물 흘리는 것 그것이 아닙니다. 콘서트장에 가서도 똑같은 것들을 우리는 느낍니다. 은혜는 바로 지정의가 같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은혜 받았다고 느꼈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여러분들은 좋은 콘서트를 보신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마음속에 거리끼지만 그것이 자꾸 생각나서 내 삶을 고치는 것은 은혜 받은 것입니다. 의지로 결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치는 돌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여러분 중의 어떤 분은 그것이 부담스럽고 거북하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내 마음에 거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기쁨이 넘친다라고 이야기해도 거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예수를 받아들이길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고침을 받아야 할 존재이고, 하나님은 나를 고치시길 원하시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7절에 우상 숭배하지 말라, 8절에 음행하지 말자, 9절에 시험하지 말자, 10절에 원망하지 말라 13절에 조심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놔두지 않으십니다. 경고하십니다. 그런데도 안 고치면 여러분의 인생은 파멸되고 사단의 노예가 될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12절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일부 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것들을 체험하고 예수를 알았다고 해서 이제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결코 자신들은 넘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넘어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을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3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한 것이 없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고 피할길을 내신다고 하면서 너희가 죄악에 빠지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죄악에 빠져드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이 감당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꺼야라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왜냐하면 이 문맥은 우상 숭배에 빠져드는 것과 관련되어 나온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악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은 모든 조건을 만드셨는데, 너무 자신을 쉽게 내어 줘서 죄악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상숭배, 시험, 음행, 원망 모두 자신을 쉽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내어 주는 것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나오는 시험, 음행, 원망 모두 우상숭배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를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자기가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 주며 테스트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선생님에게 시험문제를 내고 뭘 아는지 테스트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은 사단은 본성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하셨습니다. 원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러해야 한다고 자기가 생각해서 이런 식으로 안되면 원망합니다. 즉,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원망이 없습니다. 누가 우리 인생의 주인 입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민수기는 출애굽해서 멸망당하는 출애굽 1세대의 실패 가운데 2 세대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멸망당한 큰 이유는 바로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 우상숭배는 원망에서 기인한 것이 큰 우상 숭배의 요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면 쉬운 길로 바로 직행하게 하셔야지, 왜 돌아가게 하시는거야? 왜 맛있는 음식도 안 먹이고 메추라기와 만나만 주시는 거야라고 사람들은 원망합니다. 원망이 싹트다보니, 자기 자신을 위에 놓고 하나님을 밑에 놓으며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즉,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생각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보다 위에 놓고 자기 자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기 25:1절에 음행은 바로 우상 숭배와 연결된 음행이었습니다. 음행과 우상 숭배는 그 성격이 대단히 비슷합니다.

 음행은 내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적인 관계에서는 서로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드러내고 적극적인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상대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어떻게 다루든지 나는 맡기겠다라는 항복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책임감 없는 상대에게 그냥 내 몸을 맡기게 될 때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우리 안에 넘치고 깨어지는 것들이 큽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음행을 피하라라고 말하면서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안으로 상대의 영향력을 다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는 어떻습니까? 영적인 옷을 벗고 다른 신에게 자신의 영을 내어 맡기는 것이고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음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영의 영향력이 그대로 자신에게 들어오도록 자신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영적인 옷 영적 갑옷을 벗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음행을 통해 내어 줘서는 안 되고, 영을 우상숭배를 통해 다른 영에게 내어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2-14절에 보면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에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거나, 다른 영의 노예가 되지 말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봐 조심하고,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넘어질 정도의 유혹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 죄에 빠지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선 줄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평생 겸손하게 하나님 제 삶을 인도해 주시고 고쳐 주시고 제가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것을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사십시오.

또는, 나의 삶이 항상 이렇지 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고, 하나님이 내가 나의 마음을 영적인 사막 가운데 두는 걸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또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의지를 드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여러분 그냥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충고가 부담스러우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길 원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충고도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문제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망하지 말고 인정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시는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조정하며 그대로 안되면 원망했던 분 계시다면 하나님께 회개하시고 다시는 원망하거나 시험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시고 그렇게 사십시오. 원망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들을 파괴하는 사단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을 파악하시고 적극적으로 대처합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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