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기질상 오해되는 선지자 타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해되는 선지자는 차가울 것 같은 선지자입니다. ^^)

 

선지서들을 읽을 때 그 선지자들이 가슴 아픈 현실과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그 모습이 일부 사람들에게 이상한 방향의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차갑게 비판하는 것과 독설을 날리는 것이 마치 거대한 세상의 잘못된 파도를 헤쳐나가는 강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듯의 만족을 주는 관념도 우리에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고는 냉철하게 하더라도 마음은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순화할 수는 없는가를 고민해 보게 됩니다.

 

선지서들을 읽을 때 정말 자세히 읽어보면 선지자들의 마음이 차갑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졌을 마음 가짐에 대해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직을 지니신 그 모든 직책의 완성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따뜻한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죄인에 대해서 따뜻한 마음을 품고 먼저 받아주시고 그 다음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에 대해 결단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선지자의 모습을 오해해서 세상을 향해 칼을 날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과 진정한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왜 머릿속에서 비교가 되는 것일까요?

 

비판을 해도 풍자를 담고 해학이 있으며 생각하게 만드는 비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요나가 니느웨 사람에게 날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께 그런 마음을 가지지 말 것에 대해서 책망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봐도 선지자는 사람들에 대해서, 원수에 대해서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가질 것이 요구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복음서 비디오에서 한 비디오는 예수님을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위선적인 모습에 대해 풍자를 날리면 사람들이 웃음보가 터지면서 그러면서 또 진리를 생각하는

그런 광경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품으신 것처럼

우리도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서는 냉철하며 사람에 대해선 따뜻한 넓은 가슴을 가질 순 없는 건가요?

보다 주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리 미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미운 사람이 많고 그 사람을 향해 날카로움을 날리는 이 입의 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난 정의로운 사람이야라고 주장하려는 내 속 깊이 오해되어진 선지자적 일부 행동방식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사람들을 쉽게 정죄해 버리는 그런 못된 습관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점 때문에 정작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못 나오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받을 준비를 하셨는데, 정작 기독인들이 그리스도께 못 나아가도록 막고 있지는 않은지요?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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