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내려놓음의 문제입니다.
권리포기란 말로 많이 불리고 있지만, 내려 놓음이란 말이 더더욱 좋은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면,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것이므로, 내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럼 제 안에 있는 내려놓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의 문제:
사실, 가난하게 살거나, 불편하게 살거나 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이 어찌보면 저에게는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거나, 고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삶을 어느덧 추구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막연한 반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소위, 돈을 많이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것에 대한 반감들...

과연 이런 행동이 옳은 것일까요?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와도 교제를 나누셨고, 아시다시피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에게도 안타까운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럼, 우리의 반응은 어찌해야 할까요?
이 사회 구조 간에는 너무나 큰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이들과, 나이 드신 분들과의 대립,
보수 주의 진영과, 진보 주의 진영의 대립,
부자와 가난한 자들과의 대립...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고 서로 자기의 생각들이 옳다고 하죠.
어느 것에도 답은 없습니다.

단지, 요구되는 것은 상대방을 편견없이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고,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예수님을 만나고 삭개오는 삶이 변화되었고,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게 되었듯이,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는 삶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함과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된 상태에서 잘못의 교정이 이루어졌던 것이지, 편견이나 어떤 비난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을 바라보던지 간에, 그 사람에 대한 편견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봐주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겠죠.

내려 놓음에 대해 좋은 일화를 소개하죠.
예수전도단의 홍OO 형제님이 bedts 강의 때 이런 강의를 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외국에 강의가 있어서 누추한 여인숙에 묵을 때에도 마치 자기 집인양 편안하게 누리고, 혹시 좋은 호텔에서 묵을지라도 마차 자기 집인양 편안하게 누린다고...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저는, 누추한 곳에서 잘 누릴 수는 있어도, 풍부함에 있을 때는 잘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안에서 잘 누리고, 또한 무엇을 풍요롭게 받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려 놓음의 좋은 실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6-07-07

'성경적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흥의 바람  (0) 2006.07.21
예언과 그 이루어짐  (0) 2006.07.11
학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0) 2006.07.11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2) 2006.07.11
죄악을 가리는 아담과 하와(창세기 3장)  (0) 2006.07.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