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 조차 없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의도적으로라도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살겠죠.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중요한 것은 선악과를 만드신 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고 세상의 주관자이므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 그 분에게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선악과 자체만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를 사단은 이용하여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 자체가 줄 수 있는 이익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도 선악과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 7:8-12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 기억 못하십니까? 나는 너무도 잘 기억합니다. 율법 조문은 처음 시작할 때는 대단히 멋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어떻게 되었던가요? 그 명령을 죄가 왜곡하여 유혹이 되게 만들었고, 그래서 결국 "금지된 열매"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율법 조문이 나를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유혹하는 일에 사용되어 버린 것입니다. 율법 조문이라는 장신구가 붙어 있지 않았을 때는 죄가 그저 따분하고 생기 없어 보였을 뿐, 나는 그것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율법 조문을 가져다가 장신구로 삼고 자신을 꾸미자, 나는 그것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나를 생명으로 안내해야 할 그 명령이, 도리어 나를 넘어뜨리는 일, 나를 곤두박질 치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죄는 생기가 넘치게 되었으나 나는 완전히 생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율법 조문 자체는 하나님께서 상식으로 여기시는 것으로서, 각 명령은 모두 건전하고 거룩한 권고입니다.

율법도 하는 역할이 율법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쪽으로 인도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선악과를 이용하여 선악과 자체만 집중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썼던 것처럼, 율법도 똑같이 사단이 그 의미를 왜곡하여 사람을 거기에 얽매이는 역할로 잘못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율법이 진정으로 지시하고자 했던 것, 선악과가 진정으로 지시하고자 했던 것, 바로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 분과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즉, 선악과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도구였으며, 선악과를 볼 때마다 선악과 이외의 그 넓은 에덴 동산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구나라고 하나님 사랑에 빠져드는 그 아름다운 관계의 도구였습니다. 율법도 원래는 그런 역할을 담당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재하시면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 자체만 바라보고 맞네 틀리네 너무 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역시 선악과 자체만 보는 것이고 율법 자체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바라보지 못하며 눈이 어두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로 만드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모든 율법이 이루어지게 되고 모든 목표가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뛰어넘는 아니, 율법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내 삶을 아름답게 빚어가실 것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율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은혜가 시작됩니다. 비로서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온갖 서류를 다 구비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면, 인격적 신뢰가 들어설 여지는 아예 사라지고 약속은 냉혹한 계약으로 바뀌고 맙니다.! (롬 4:13-15 중, 메시지 성경)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서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계약서 없이 그분을 믿고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