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4-5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MSG)

 
 마태복음은 구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언의 성취에 대한 부분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 습니다. 그래서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동안 스스로 해 보려고 했는데, 결국 좌절과 절망 뿐이지 않느냐?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겠다. 하나님이 직접 구원하시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즉, 예수님이 직접 너희들 가운데 가르치시고 위로하시고 함께 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기억해야 마태복음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8복의 내용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본문을 개역개정으로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는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여러분, 애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애통해야 하나님 앞에서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약간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애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너희가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그 속에서도 어려움과 핍박을 겪어서 혹시 애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애통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고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봐야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패커도 이런 해석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사람도 그런 잃어버린 양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들 이렇지? 힘들지? 이런 너희들에게 이제는 복이 있어. 왜냐하면 너희들은 나에게 왔기 때문이고, 나의 품에 안길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율법주의로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내가 너희를 이제 품에 안겠다. 주인없는 목자처럼 방황하는 너희를 내가 직접 안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구절들을 우리는 이러이러 해야 합니다. 복 받기 위해 이러이러 해야 합니다.라고 바꾸면 또 악순환인 은혜를 율법주의로 바꾸는 역할밖에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힘드시고, 어떤 사람도 여러분 곁에 없다고 느끼십니까?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과정 가운데 아무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 없습니까? 그래서 애통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시고 품에 안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음성보다 격려보다, 하나님의 격려와 인정을 받을 때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품겠다. 걱정하지 마렴. 너희들은 내가 인정하는자야. 힘내렴.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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