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5:21-32
 병사들은 오전 아홉 시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진 그분의 죄목이 십자가에 적혀 있었다. 예수와 함께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렸는데, 하나는 그분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그분 왼쪽에 달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슬픈 척 고개를 저으며 예수를 조롱했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으스대던 네가 아니냐. 그러니 실력을 보여 봐라! 네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십자게에서 내려 와 봐라!"
 바로 그 자리에서, 대제사장들도 종교학자와 나머지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그분을 비웃었다. "그가 다른 사람은 구원하더니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메시아라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그럼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다 믿을 텐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까지도 조롱에 가세했다.
(MSG)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게에 못 박히셨는데, 사람들의 조롱에 대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롱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던 너가 왜 너 자신은 구원못하느냐?라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똑같은 비난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된다고 영혼이 구원받는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 너의 모습은 왜 그 모양이냐? 도대체 집이 잘 되기를 했나? 너 처지와 형편이 풀리기를 했나? 가족들은 왜 그 모양이냐? 이런 걸 가지고 예수 믿으면 잘된다고 말한 너의 모습은 내가 보기엔 형편없다. 한심스럽다. 이러면서 조롱을 받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편이라도 남보다 잘 풀리면 우리는 담대함을 얻습니다. 봐라, 예수 믿으니 이렇게 잘 되지 않는가? 오늘날 교회에서 들려지는 많은 간증자들의 메세지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믿었으니 자식들이 성공했다. 예수 믿었으니 봐라, 내가 사회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 되었다.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이런 말들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고, 예수를 따라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망가지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달려갔으나, 정작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교회에서도 정작 그런 수고 보다는 믿음을 탓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 선교사분이 오랜 외국 생활 가운데 본인도 병을 얻고 가족들도 많이 지쳐, 이제 그 자리를 정리하고 한국에 요양을 하려고 돌아왔지만 패배자로 몰아가는 현실 속에서 아파했던 경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십자가 사건도 예수님이 패배자로 보이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그 뜻 하나님이 다 아시고 계시는 것이죠. 오히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그 모든 비난을 감당하시고 걸어가셨습니다.

 오늘날도 힘든 상황 속에서 인정 받지 못함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아픔을 쏟아 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우리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은 결코 겉으로의 상황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공주의적인 신앙의 모습만 생각하고 달려가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혹시 없는지요?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칭찬만 늘어 놓는 우리들의 모습은 없는지요?
 진정한 믿음은 세상적으로 보기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런 간증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달려갔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삶 가운데 근원이시며 소망이시라. 그 분만이 나의 구원이시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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