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회 때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어떤 지체가 방언을 받았음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분도, 사역을 인도하셨던 분도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던 이 지체가 입을 꾹 다물고 어떤 기도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믿음의 행위를 보이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행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에 휴가라서 모 교회에 수요 예배에 참석했었는데 거기서 목사님이 드신 예화입니다.
지리산에 어느 사역하시는 분이 있는데, 여러 곳에 성도들의 집이 흩어져 있고 심방을 가려면 개울도 건너야 하고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일 심방을 가기로 결정했는데 그 집에 가려면 개울도 건너야 하고 비가 많이 와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방 전날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이 분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내일 심방 가길 원합니다. 하나님 날씨가 좋을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가 보니 먹구름이 끼었답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집에 가서 우산을 챙겨가려고 아내에게 우산 달라고 했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가운데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믿음으로 선포했는데, 다음날 우산을 들고 나오는 일이 과연 믿음으로 기도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낳게 합니다.

하나님 음성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해 볼 때, 처음에는 그런 것이 나의 생각이 아닐까라는데 집중하느라 시도도 못해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으니 나는 믿음의 행위를 보일 것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하십시요.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성경과 하나님의 성품과 타당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바로 실천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놀랍지만 일상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으면 묵상 강의 때 장미꽃을 나눠 줍니다. 장미꽃을 보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장미꽃을 통해 말씀하셔야 할 이유가 있는가? 왜 이런 걸 사용하지? 이상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그 살아계시는 증거가 온 천지 만물을 통해 선포가 되고 있는데, 장미꽃을 통해 말씀하지 못하실 이유가 뭐가 있는가? (롬 1:20)
난 장미꽃을 보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냥 생각해 볼 것이고 들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적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을 것이다. 라고 믿음의 행위를 보이는 사람에게 영적인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십시요. 소경을 고칠 때도 진흙 덩어리를 눈에 붙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믿음의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소경은 실로암 연못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여리고성 무너질 때도 돌라고 하였습니다. 성 주위를 믿음을 가지고 돌았을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구걸하는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고치는데, 7절에보면 그를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켰다라고 되어있고 그 순간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걷지 못하는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대신 믿음을 보이면서 잡아 일으킵니다. (지붕 뚫고 아픈 친구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모습이지요.)

믿음은 믿음의 행위를 수반할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믿음의 행위를 보일 때 비로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내함으로 신뢰함으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십시요.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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