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복음의 빛을 비춰주시고, 하나님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가 복음을 위해서 사는 자 되게 하여 주십시요.
오직 다른 어떤 은혜도 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길 원합니다.
전도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주께 더 인도할 수 있도록
창조적인 전략을 허락하여 주시고, 믿음의 도전을 하는 사람되길 원합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들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른다면
어찌 그 삶이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사랑에 감격하는 자가 날마다 늘어나길 원합니다.
식어진 영혼들 가운데 주의 영으로 채워주셔서 마른뼈가 살아나듯이 모두 다 꿈꾸는 자가 되고 살아있어 능히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쓰임받길 원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기도하면서 주의 은혜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십시요.
하루를 열심히 살아서 감사하고 헛되게 보내지 않아서 감사하고
하나님 은혜를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늘 감사로 무장된 사람 되길 원합니다.

아버지!
이 땅에 많은 청년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유일한 소망됨을 일깨워 주십시요.
공허하여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는 영혼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만족함 주시고 안정감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복음이 어둠가운데 침노합니다. 선포됩니다. 빛이 있으라 선포하신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자마다 생명이 가득하여 온 땅 가운데 가득하길 원합니다.

주의 영광이 온 천지를 덮습니다.
만물이 주의 영광을 찬송하며 그의 행하신 일을 선포합니다.

할렐루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Good News 친구초청잔치 11월 12일(토요일) 오후 6시
동막교회 1층 예그리나,
누구나 환영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 We are Dples! http://club.cyworld.com/dples

동막교회 http://dongmak.or.kr



2. Refill

Dples Seminar with YWAM Denver~
11월 18일(금) 오후 7시부터
- 19일(토) 오전 11시부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간입니다.
장소는 동막교회 교육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We ARe Dples 클럽을 참고하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 We are Dples! http://club.cyworld.com/dples

동막교회 http://dongmak.or.kr

빌레몬서
1:10-11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 복음은 사람을 완전하게 변화시킨다. 우리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하려고 한다. 자신감이 없다 게으르다 등등.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문제 해결의 근원은 예수를 만나는 것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예수를 만나면 삶이 근본에서부터 변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날 생각을 안하고 게으름을 고치거나 자신감을 늘리려고 한다. 치유가 안된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 부정을 일삼던 세리, 남자들에 빠진 사마리아 여인 완전히 삶이 바뀌었다. 이게 근원적인 치료이다. 이걸 안하고 다른 치료를 하려고 하니 일시적이며 또 무너지는 거다.

오늘도 보면 사람이 무익함과 유익함의 기준이 게으르지 않다 자신감 있다 이런 것 같은데 예수를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2. 오네시모는 빌레몬이라는 주인에게서 돈을 훔쳐서 도망갔다가 바울을 만나게 되었다.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했고, 베풀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니 그렇게 노예를 강압적으로 다루던 사람은 아니다.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아마 일하기를 싫어하고 삶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인 것 같다. 성실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성격에 모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도망친 노예, 그것도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서 도망친 사람이다. 바울은 어떤 마음으로 이 노예를 바라보았을까?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도 충성되지 못한 사람, 정말 무익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만나서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이 예수님을 만남이 이 노예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오네시모가 바뀐 것은 오로지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를 만나면 아무리 무익한 사람일지라도, 지혜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모습이 형편없을지라도 변화되게 되며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면 달라진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된다.

3. 변화의 원동력은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수록 하나님을 의지할 수록 성령님이 나를 이끌어 변화되게 하셨다.
나의 옛날 모습은 가망 없던 사람이었다. 나 자신을 보며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론에 그친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을 인도하시는 그 분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고 나니 그 분은 나를 사용하기를 원하셨고 나를 체질적으로 변화시키시기 시작했다. 그릇이 되도록 훈련시키시고 내 안에 있던 모든 문제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어 불태우기 시작하셨고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셨다.


마태복음을 보면 메세지 성경 번역본에 이렇게 되어 있다.
3:11-12
내가 이 강에서 세례를 주는 것은 너희의 옛 삶을 바꾸어 천국의 삶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너희 안에 천국의 삶을, 너희 안에 불을, 너희 안에 성령을 발화시켜, 너희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그분께 비하면 나는 잔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은 집을 깨끗이 하실 것이다.
너희 삶을 대대적으로 정리하실 것이다. 그분은 참된 것은 모두 하나님 앞 제자리에 두시고, 거짓된 것은 모두 끄집어 내어 쓰레기와 함께 태워 버리실 것이다.


뭐라고 되어 있는가? 진짜가 오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너희 안에 성령을 발화시켜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체질 변화를 이루어내실 것이다. 우리 삶을 완전히 대대적으로 정리하셔서 거짓된 것들을 다 끄집어 내어 태워 버리실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게으르던 사람이 변화되어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거짓말 하던 사람이 변화되어 정직한 사람이 되고, 두려움 많던 사람이 변화되어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내 안에 성령이 발화되어 일어난 변화이다.
그동안 그토록 마음 먹어도 안되던 것들, 그동안 의지적으로 마음 먹고 또 먹어도 안되던 일이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니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복음인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났는가.
오늘도 주님은 생명의 근원인 내게로 오라고 한다. 내게로 오면 변화되는데, 자꾸 다른 것을 통해 너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성공철학이나 긍정의 힘이나, 자꾸 마음먹고 결단을 하면 되겠지라고 최면을 건다. 안된다. 실패일 뿐인 것이다. 한 순간은 좋아보이나 궁극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또 지나가면 허무해지고 무너지고 결국 변화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여러분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주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게로 오라. 나를 만나라. 내가 너희 삶을 주장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진짜 예수님을 만났고 복음을 들었고, 복음이 내 삶을 지배하는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며 그분께 순종하는가. 그럴 때 변화가 다가오고. 성령께서 발화되며 여러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능력이다.
헬라인은 지식을 원하고 유대인은 기적을 원하지만 오직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능력인 것이다.
지식을 갖는다고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을 본다고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도움은 될 수 있다.
헬라인은 지식을 통해 변화되길 원한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보길 원하지만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능력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만이 길인 것이다.
주님을 만나야 살 수 있고, 쓰임 받을 수 있다.

4. 백정 무익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예수를 만나 변화되면 유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무어 선교사는 알았다.
무익한 사람을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예수님이시다.
우리도 무익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는 일에 힘쓰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주님은 무익했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유용한 자로 서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아라. 변화되게 되어 있다.
생수의 근원에게 나아가야 한다.

나는 예수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며 출세론 성공론에 관심이 없다.
예수님을 만나라. 생수의 근원되신 그분께 나아오라. 그러면 변화되게 되어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쓰임받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라. 그러면 된다. 인생을 발견하고 삶의 소망을 발견한다.

다윗을 어떤 사람이 따라다녔나? 마음에 모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부랑자 같은 사람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다 용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변화되게 되어 있다.
다른 곳을 찾아보지 마라.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원해라. 하나님 앞에 앉아 있어라. 그럴 때 우리 삶 가운데 변화가 다가온다.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생의 제일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각종 이단들이 판치고 있고 성령의 은사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때보다 분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성결의 삶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아래 성령의 열매를 낳게 됩니다. 그에 따라 점점 하나님의 거룩한 삶, 정결한 삶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결의 삶은 반드시 겸손의 삶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으니 어느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결한 삶을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함으로 성결을 드러내고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성결한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삶 속에서 구별됨이 드러내기 때문에 굳이 자기의 차별성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결은 남을 정죄함으로 성결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정죄함과 성결의 삶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면서 자기가 이렇게 정결하다라고 하면서 차별성을 일부러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번 쯤은 점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마귀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이 세상가운데 역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권세를 부여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집회 영상을 보면 보는 내내 마음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어두움의 영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회의 전반적인 균형이 마귀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자아냄으로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협박식으로 이끌어낼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지는 삶은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삶이지만 주님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내가 십자가 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스스로 따르게 하십니다. 억지로 무서움에 이끌려서 두려움 때문에 아니면 현세에 대한 지나친 축복에 대한 대가로 헌신하게 하는 것은 신앙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과정이 좋지 않다면 바른 신앙을 갖기 어렵고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헌신하게 하는 것도 바른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던 것이지 정죄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죄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올바른 헌신과 역사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3. 하나님은 묵상해도 끝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마귀를 묵상할 시간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그분의 성품에 대해서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더욱더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단의 전략에 대해서 연구할 시간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전략에 대해서 더욱더 연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받을 수록 사단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만 더욱더 보입니다. 그분을 더욱더 사랑하고 싶고, 그 분을 많은 사람들이 더욱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만이 온전히 드러나며 강조되는 신앙이 우리 가운데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진리로 무장시켜 주옵소서. 세상의 어떤 공격에 대해서도 주님의 진리로 이길 수 있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구합니다.
요한사도가 말했듯이 이 땅의 청년들은 강하고 진리 가운데 서 있으며, 악한 자를 능히 이기는 자입니다.
청년들이 주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청년의 강하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으며, 어떤 세상의 악한 사상에 대해서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주님의 군대를 세워 주시옵소서.
세상의 부정직함과 거룩하지 못함과 서로를 속이고 비열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무너지며 정직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한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주님의 숨결을 불어 놓으신 주님,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셨던 주님, 세상이 줄 수 없는 인간의 존귀함을 주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며,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전진하는 주님의 청년들 세워주시고 진정한 인간 존재의 회복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그들 가운데 약함을 덮어 주시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가운데 나아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덧입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선포하게 하여 주십시요.

주님, 진정한 진리의 복음이 부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단순한 능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회개하며 돌아올 날들을 꿈꿉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의 능력 앞에 절망에서 벗어나 소망으로 꿈꾸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요.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꿈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 꿈을 꿔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을 위하여 기도하며 실천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공동체를 향한 꿈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꿈꾼 것들을 계속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찬양팀을 생각할 때마다

ywam의 화요모임 찬양팀의 모습을 꿈꿔 봅니다.

그 이상을 꿈꿉니다.

열정적으로 인도하는 찬양 인도자, 훌륭한 세션들, 수 많은 예배자들

저는 이미 머릿속으로 그것을 믿고 이미 이루어짐을 선포하며 나아갑니다.

그래서, 하나 하나 그것을 향하여 실천합니다.

싱어들이 점점 충원되었고, 예배팀은 먼저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 앞에 열정을 드리며 예배 드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보팀을 생각할 때마다

중보실이 꽉 차 기도의 열기로 뜨겁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의 장소가 성령으로 인하여 진동하는 꿈을 꿉니다.

기도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선포하고, 나라를 위해서 중보하고, 사람들이 다 용사로 변하여 거듭나는 것을 꿈 꿉니다.

그래서 중보팀장을 세웠고, 중보팀원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뜨겁게 하심이 강하게 느껴져서 지난주에 참 감사했습니다.

 

그룹을 생각할 때마다

서로 모일 때마다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뜨겁게 기도하고, 떡을 나누고, 자신의 재정들을 나누며,

말씀을 서로 가르치고 나누고, 더 이상의 사랑의 아름다움이 없을 정도로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그리며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도여행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꿈들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마포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청년들이 마포 땅을 밟으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마포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아무도 이 땅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기도하면서 매일 같이 거리를 걷고

하나님 이 곳에 하나님의 복음이 열려지게 하십시요. 그 마음을 품고 매일을 사는 모습을 꿈꿔 봅니다.

마포 지역에 가난한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것들을 가지고 찾아가는 동막 청년으로 인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는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해 봅니다.

 

캠퍼스를 생각할 때 마다

많은 학생들이 소망 없이 학업에 치우쳐서 인생의 절망가운데 혼자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동막 청년들이 다가가서 캠퍼스를 위해 기도한 것처럼 그렇게 복음의 눈물의 씨앗이 뿌려지길 원합니다.

영화 믿음의 승부처럼, 한 목사님이 캠퍼스에 아이들 사물함을 하나 하나 만지면서 기도하며 오랫동안 걸어다녔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습을 보았지요?

예전에 우리 같이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그 모습을 저는 상상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상상은 무엇을 그리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어떻게 되길 원한다는 믿음의 상상을 그리셔야 하고,

그룹별로 팀별로 우리 그룹이 팀이 어떻게 되길 원한다는 믿음의 상상을 그리셔야 하고

동막교회 청년부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상상을 그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포지역, 캠퍼스, 이 나라, 세계 열방을 향한 하나님 마음을 가진 믿음의 상상을 그리셔야 합니다.

 

믿음은 이 모든 것들이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작은 것들에 치우쳐서 종합적인 믿음의 상상을 제한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합니다.

주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HIS KINGDOM COME!

(청년부 클럽에 쓴 글.)
많은 사람들이 거듭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거듭남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거듭난 사람을 그리 많이 만나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유대인의 지도자인데, 성경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보자마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지요. 모르면서도 거듭났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기가 거듭났는지 아닌지 불확실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못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너희가 믿겠느냐? 처럼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복음은 복음이 무엇인지 체험한 사람에 의해서 잘 전파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길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복음을 어떻게 강력하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학문으로도 전파되는 것도 아니고 지혜로도 전파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은 복음을 경험한 사람에 의해서 강력하게 증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그 사람이 복음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복음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읽어도 뭔가 얻는 것 같지만 명확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이 새로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 육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새로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사단에게 지배받던 것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단의 지배와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성령님이 우리안에 들어와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것이 사단에게 사로잡혀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 육이 영을 지배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영이 자유케 되며 영이 육을 지배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이 육적인 삶이 전부였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영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영이 육을 다스리는 삶에 대해서 갈망하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삶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육적인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거기에만 치중하며 영적인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것에 대해 적대적인 마음이 든다면 정말로 거듭났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닫힌 채널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과 교통함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적인 예배, 육적인 관심으로만 살다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영이시다라고 선포하시는 그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영이시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선 너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보여 주십니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하늘의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전에는 땅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입니다.

거듭남을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나의 영적인 부분이 열렸는지를 체크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삶에 깊게 박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에 완전히 뿌리박히는 자만이 거듭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거듭난 자는 자신의 영을 인도하는 분을 바라볼 수 밖에 없고, 자신의 구원자를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역할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로 우리의 영 가운데 깊게 박혀져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고다 언덕과 같은 우리의 영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박혀서 보혈로 생명의 언덕이 되어 계속 생수의 강이 콸콸 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거듭난 사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분을 알기 위해 전심을 다합니다. 세상 그 무엇 보다 그 무슨 일보다 예수님을 더욱더 알고 싶어하고 그분을 향한 깊은 갈망이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가운데 계시니 당연히 그 사람의 영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고 우리의 육에게도 영이 명령을 내립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너가 충만해지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길 원한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당신은 정말 거듭났습니까? 영이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는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것에 눈을 떴습니까? 영적인 교통함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무슨 사상과 이론들이 그렇게 난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주의 등으로 규정되는 숱한 이론 속에서 너는 무엇을 따르느냐? 나는 무슨 주의이다. 이런 식으로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길 원하시고 그분만이 나의 왕이시며 하나님이시며 구원자 되시고 나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을 알아야 할 이유도 다른 것들을 따라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 가운데 날마다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유명하다는 사람을 따르고 유명하다는 어떤 이론 소위 ~ 주의를 따르고 거기에 몰두해 자기의 세력들을 넓혀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은 점점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보이게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년에 가면 바울의 삶이 보이지 아니하고 바울 속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보이는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을 살펴보면 그리스도는 어디로 가고 사람들과 이론들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어떤 교리적인 논쟁을 하느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열심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는 열심만 넘쳐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이 다른 논쟁들을 그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면 영원한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같이 바라본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 나타날까요?

우리가 사나 죽으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는 거룩한 꿈을 꿔 봅니다.

저는 오늘 몇몇 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주님을 알고 싶어서 연결되고 싶어서 간절한 갈망을 가진 사람 몇 분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 간사님! 축복합니다.
** 간사님에게는 주님의 눈물이 있습니다. ** 간사님은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눈물, 주님을 알고 싶어서 흘리는 눈물을 주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특별히 ** 간사님을 향한 주님의 blessing 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회나 메세지를 통해서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슴 아픈 것은 정작 자신이 주님을 알기 위해서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더 알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교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이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가슴이 아프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공허함이 많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정작 신앙 이야기를 하고, 정작 자기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지만
그 가운데 성령님이 계시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도대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인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그저 주님 앞에 순종하고 그저 주님이 좋아서
그분 이야기만 나누게 됩니다.
그분이 전부이시기 때문에 그분 이야기 밖에 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 거하지 않고 주님의 영이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지가 없고
그저 자신의 계획과 뜻만이 나타날 뿐입니다.

여러분!
항상 주님께 고정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 항상 고정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원하는 유일한 소망은 여러분이 주님께 고정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주님을 사모하여 그분을 미치도록 사모하여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임이 아무리 즐거움이 있다하더라도 웃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모임입니다.
아무리 활력이 있어도 죽은 모임일 뿐입니다.

조용히 있을지라도 그 곳에 주님의 임재가 넘친다면
생명이 넘친다면
자신의 변화를 소망한다면 그곳은 다시금 살아날 것입니다.

이 땅 가운데 죽음이 가득합니다. 이 나라의 교회들 가운데 정작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님은 이 땅 가운데서 누가 나를 경외하고 누가 나의 마음을 품으며
나와 더불어 이 땅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신지요?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분 자신만을 위해 드리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은 사역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동행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아무리 성경적 지식이 많더라도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날 가운데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
무한히 풍성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시고
성령님과 더불어 나가는 놀라운 역사들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전부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오직 유일한 생명의 근원되시며 주님이십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의 무한한 복이 임하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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