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개역개정)
14:1 여러분의 생명의 사랑에 달려 있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사랑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선물을 열심히 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리를 힘써 선포하심시오. (MSG)


 고린도전서에는 성령의 신비로운 은사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 은사들을 질서 있게 사용하지 못함으로 혼란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은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랑에 대해서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언사역자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14:1절에는 예언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고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없이는 아무리 놀라운 능력이라도 사람을 파괴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사단이 타락하게 된 것은 교만이었고 사단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죽음과 파괴 속으로 몰고갑니다. 사단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사랑이라는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이용하고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특징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나누어 주실 때 우리 속의 동기를 반드시 확인하십니다. 너가 왜 은사를 구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인가? 너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인가? 그리고 은사를 받았을 때도 계속 우리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느 순간 이 은사가 잘못 사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는 어떤 것들도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까?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교만하여 지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역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은사는 겸손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겸손하게 사용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예언들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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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day as they were worshiping God-they were also fasting as they waited for guidance-the Holy Spirit spoke; "Take Barnabas and Saul and commission them for the work I have called them to do." (사도행전 13:2, MSG)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신학적인 견해들이 있지만, 전 누구보다 무엇보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나타난 현상들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더이상 오늘날에는 말씀하시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어떤 교리에 대해서는 지극히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보다보면 얼마나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지 놀랄 지경입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도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견해에 대해선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성경적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리보다 더 성경에 나타난 것들을 그대로 믿으며 체험하고 그 방법대로 실천할 때 우리의 인생이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대로 해 보십시요.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것을 그대로 삶에 적용하고 기도한 다음에야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예언자와 교사들은 모여서 하나님의 구체적으로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guidance라는 표현은 제가 참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그들 가운데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기 위해 그들은 예배 드리며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이 도우슨은 시련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 10번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백만불짜리 질문' - "주님께서 저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을 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히 듣기까지 끈기 있게 기도하게 되도록 구한다. 그들이 환난을 겪고 있는 목적과 이유를 계시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가운데 guidance를 주십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해결책이던 기다리라는 표현이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계시하십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응답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해결해야 할 때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오십시요. 반드시 들어오십시요. 이 말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guidance를 받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의 guidance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교회가, 한국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guidance를 받아 나아간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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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공부를 하다 보면 이유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이런 걸 해야 합니까?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왜 내가 용서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을 왜 용서해야 하죠? 이렇게 따집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면 왜 믿어야 하나? 이런 걸 못하게 하는데... 라고 말합니다.
 '왜'라는 표현을 우리는 잘 씁니다. 그러나, 실상은 '왜'라는 것을 알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내 삶과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따라사는 것이 싫기 때문에 '왜'라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나타낼 때가 많습니다.
 정말 '왜?' 라는 것이 해결되면 따라하겠습니까? 저는 그 말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실천부터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이유부터 따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선하심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사시절에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왜 해야 하죠?라고 이유를 따집니다. 그래서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결국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기 때문에 이유가 생기는 것이죠.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왜?라는 답변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야 될 이유를 찾습니까?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다루시는 것과 그 분의 은혜를 알게 되며 변화가 시작됩니다.
 신학에는 큰 두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알면 믿게 된다 라는 말과 다른 하나는 믿으면 알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다른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 보면 알게 되고 믿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정말로 찾고 싶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요. 그러면 이유를 찾게 될 것입니다.
 영향력 있게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다보니 그 말씀이 얼마나 능력있는지를 경험했기에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실천해 보십시요. 알게 됩니다.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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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믿음 좋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라는 말을 듣는다.
저 사람은 참 믿음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인가?
 간증 집회를 가 보면 온통 성공 이야기이다. 이렇게 하고 살았더니 하나님이 돈 벌게 해 주셨다.
학벌 좋게 해 주셨다. 병을 고쳐 주셨다. 이런 사람들을 초청한다. 서로 초청하지 못해 안달이다.
믿음 좋다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살면 너 인생이 성공한다라는 삶과 일맥상통하는 말과 같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가?
 이렇게 했더니 자녀가 복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내 사업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병이 고침받고
이런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이고 복받은 사람인가?
난 별로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 사람 정말 믿음 좋아서 저렇게 성공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가?
 
 
2.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사람에 대해서 나오고 있다.
한번 보자.  11장 4절 아벨이 나온다. -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얻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가인의 질투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에녹- 그의 세상에서의 삶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도중에 하늘로 들림받았다.
7절 노아를 보자. - 방주를 준비하여 일생동안 미친 사람 소리를 들으면서 방주를 지었다. 물론 목숨을 건졌다.
8절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인가 -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25절에 모세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바로의 궁에 있었으면 온갖 보장되는 삶을 살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기를 자처하고 평생 광야를 떠돌다가 가나안 땅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11장 35절부터 38절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떻게 살다가 인생을 마쳤는가?
고문을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받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 등의 죽음의 환난의 고통 속에서 살다가도
얼마든지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차히 풀려나가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고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어떤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3. 믿음의 사람은 12장 2절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들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12장 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의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삶을 산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린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벗어버린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던 곳의 부요함을 벗어버렸다.
노아는 자신의 평판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제정신이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모세는 어떤 것을 벗어버렸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을 수 있는 권리를 벗어버렸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따라가는 데 무거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자 청년의 문제가 무엇이었냐? 자기를 지탱하고 있었던 재물이라는 것, 사실 이 재물이 자신을 눌렀던 무거운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벗어버리지 못해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의 틀 속에 갇혀 부모님이 계획하는 삶 대로 사는 무거움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까봐 그것들을 짊어지고 사는 경우가 있다.
왜 그렇게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하나님 주신 자유함 속에 살지 못하는가?
내려 놓아라. 여러분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내려 놓아라.
이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내려 놓음이 있어야 한다. 나를 예수 그리스도 따르는 것에 대해 얽매이는 무거운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에게는 두 가지 정도가 있다. 그것은 두려움과 하나는 안락함이다. 그것을 내 삶 가운데 주님이 연단하셨고, 나는 믿음으로 반응했다. 내 안에 그 무거운 것들로부터 자유함이 생겼다.
 
둘째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사람이다.
죄를 짓게 되면 죄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이사야서에 보면 오직 죄악이 너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내가 죄를 범하게 될 때 하나님과 나와의 통로가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하도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이 있다.
이런 죄를 범하면 며칠동안 하나님과 내 사이가 가로막혀 기도해도 벽을 치는 것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마다 견딜 수 없이 답답하다.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지 못할 때 얼마나 우리의 영혼이 공허한 줄 아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죄가 우리를 얽매이고 있어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는 그런 괴로움이 여러분 삶에 있지 않은가?
내버려 두지 말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 눈물로 나아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셋째는 인내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몇 번 기도해 보고 포기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조금 기도해 보고, 이내 포기하고, 조금 시도해 보고 이내 포기하고. 결과가 별로 좋지 않는다고 해서 이내 내 행동을 방치하고.
인내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다. 주님은 인내하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난 믿음에 얼마나 인내가 요구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신대원 공부하면서 집안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고 끊임없이 주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하나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한 달을 꼬박 기도하면서 기도하기도 했고, 내 삶 가운데 고난이 다가올 때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그분의 계획하심을 믿고 또 신뢰하며 또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제서야 믿음이란 것은 인내를 바탕으로 생겨나고, 인내로 나아갈 때 그분과 깊은 친밀감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도 고난을 같이 견디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을 때 더 친밀해지며 사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세가지가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 보자.

예수님은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셨으며,
에녹처럼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셨으며,
노아처럼 사람들의 평판과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을 묵묵히 준행하셨으며,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살다가 정작 자기의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모세처럼 하나님께 영혼을 인도하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스러움 버리시고 친히 인간이 되어 모든 수고를 다하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고
부활의 삶을 바라보며 온갖 조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고 떠도는 삶을 사셨다.
그러나, 절대 어려움 속에서도 죄와 타협하지 않으시며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다.
인내하셨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모든 무거움을 내려 놓고 사셨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바로 내려 놓음을 실천하고, 죄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인내로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읻아.
 
 
나이 60이 되어 훈련을 받고 하나님을 따라 살기 시작한 김원호라는 장로님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라는
아주 훌륭한 책을 쓰신 분이시다. 인생 60이 되어 훈련받기 시작하시고 모든 안락함과 은퇴 이후의 재정을 다 포기하고
이분은 예수전도단의 목회자 dts의 교장으로 오랫동안 섬기셨던 분이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의 전체적인 특징, 즉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사람의 전체적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자기 이름 내고 높은 직책 갖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 부리지 않고 겸손하다.
- 자기의 유익을 챙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한다.
- 하나님의 뜻이라면 조용히 순복한다.
- 조급해서 혈기를 부리지 않고 오래 참는다.
- 환경이나 여건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도 요동함이 없다.
- 이 땅에서 별난 소망, 대단한 야망, 거창한 설계 없이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는 곳에 있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에 충성되고
하나님이 떠나라면 아무리 좋은 사역지라도 미련 없이 떠난다.
- 조용하고 평범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단순하며 누구보다도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누린다.
 
 
이 분은 가진 것 없고, 자기 삶의 안락함이 없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변화된 삶을 사셨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아닌가?
 
 
끝으로 믿음의 사람의 간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선희라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고 장로회 신학대학교 05학번 교음과 4학년이었던 자매이다.
이 자매를 만난적이 없지만 하나님은 이 자매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의 명단에 기록해 놓으셨음을
믿는다.
 
 
 
 
故 이선희 학생(교음과4) 부친의 감사글
 한상수   2010-01-15 10:53 (장로회신학대학교 게시판에서)
 
 
 
 
 존경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장영일총장님!
 
 그리고 저희 딸에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값진 천국 학문과 찬양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 주의 사랑으로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대학 학창시절과 투병생활, 임종, 장례식의 순간, 순간들을 함께해 주셨던 딸(05학번 교음과4년 이선희학생)의 학우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글을 올립니다.
 
 딸의 3살짜리 조카가 있는데 집에서 병원을 향해 마지막 떠나는 이모의 얼굴에 수십 차려 뽀뽀를 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는데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그 조카는 이모는 어기 갔어요?란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더 큰소리로 할머니 이모는 어디 갔어요? 울부짖는 순간 가족 중 누군가가 이모는 천국에 갔단다. 울먹이며 겨우 대답하자 조카는 또 그럼 이모 언제와요?란 질문에 온가족은 힘들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하였습니다.
 
 어린아이를 단 한 시간만 봐주기도 힘든 일인데 25년간 애지중지 키운 딸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참으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아픔이지만 장례식 예배를 주관하신 목사님의 죽음은 천국을 가기 위한 관문이다란 말씀과 천국에서 기다릴 딸과 그 문에서 만날 참 즐거운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라고 찬양하던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의 음성이 귓가에 생생히 남아 우리 가족을 천국의 소망 가운데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25년 전 딸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당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가 이선희였는데 그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되 넌 세상노래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라고 딸의 이름을 이선희라고 지어주고 기도하며 양육했고 딸은 부모를 따라 새벽기도와 교회의 모든 공적예배에 잘 참석하였습니다.
 
 딸이 6살 때 아빠의 친구(라오스 故김정인선교사님)가 선교준비를 하면서 선희야 너 우리 며느리 할래?하고 묻자 저는 결혼은 안 할거구요 커서 선교사가 될래요 라고 대답했는데 전자의 약속은 충실히 지켰지만, 해외선교는 단기선교(태국 우돈타니) 6개월뿐이 못했습니다.
 
 초, 중등시절을 거의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학교공부 보다는 성경말씀과 찬양으로 충실하였고, 여자지만 의리가 있어 고교시절 강원도에서 전학 온 여학생을 왕따 시키는 남학생들과 맞서 싸우며 연약한 친구를 보호하기도 하였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진학한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회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복음의 열정에서였습니다. 대학을 입학할 무렵에 아빠가 건축한 개척교회를 섬기며 새벽예배 반주, 성가대 중, 고등부교사, 철야예배 찬양인도 등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면서 맡겨진 사명을 늘 충실히 감당하면서 항상 교수님들의 훌륭하신 신앙과 인품을 존경하며 그 모습을 닮기를 소망하였습니다. 특히 예마본 중창단을 많이 사랑하였고 자신이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음과 학생이란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2009, 2 예마본 일본공연을 앞두고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나서 본인이나 가족이 받아드리기에는 너무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그를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그냥 지켜만 보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순종하면서 10개월의 투병생활기간 천국을 차근, 차근 준비하는 모습에서 그는 나만의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호흡이 멎기 3일 전까지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천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딸이 평소 즐겨 부르던 찬송가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이 세상 끝날 까지의 가사처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이 세상에서 내가 저 사람을 어쩌면 마지막 볼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대하며 복음을 전하였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 할 때도 내가 천국가기 전 이 땅의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지막 예배와 찬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몸을 드려 뜨겁게 찬양하였습니다.
 
 어린 10대들에 대한 교회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투병 중에 개척한 고양시 청소년선교교회는 개척한지 불과 5~6개월 만에 300여명의 학생들(초등6년~고1까지)이 몰려왔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배운 찬양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찬양을 통해 아이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찬양의 위대함과 찬양사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슴깊이 체험하였습니다. 
 
 딸의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글을 나중에 보았지만 2009년 겨울에 떠나요란 글을 적으면서 천국에 가 기전 이 땅에서의 복음의 사역기간이 너무 짧고 아쉬운 듯 아빠가 개척한 장년교회, 청소년교회, 태국선교, 모두 봉사해 보았는데 군 선교를 안 해보았다며 인근부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여 교회 출석하는 장병들을 3배 이상으로 부흥시켰습니다.
 
 부흥의 이유는 몇 달 후에 세상 떠날 암 말기환자도 저렇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데 건강한 우리가 침묵해야 되겠느냐는 헌병대장 집사님의 간절한 복음전도는 장병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병원에서 아빠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준 격려금을 모두를 군부대교회의 음향기기를 새것으로 교체하여 주어서 장병들로 하여금 감동을 사기도 했습니다.
 
 고양시 청소년선교교회 어린 학생들 역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희선생님이 많이 아프신데도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 하시는데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며 신앙생활 잘하자면서 서로에게 신앙을 격려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눈시울을 적시었고 평소 딸을 많이 사랑하던 불신자 부시장님, 구청장님, 경찰서장님 모두 딸의 믿음생활과 봉사에 감사하며 격려하였습니다.
 
 딸은 10개월간의 투병기간 동안 철저하게 천국생활을 준비하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나누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천국시민의 생활규범)을 암송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 최선을 다하였고 임종 20일 전에는 구약성경을 많이 못 읽었다고 엄마와 함께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학교전도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였고 기도제목과 전도대상자 모두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손에 힘이 떨어질 때까지 고등학교동창에게 전도의 서신을 썼습니다. 입원했던 일산백병원에서도 환자들과 의사선생님, 간호사님 모두에게 비쳐진 딸의 모습은 천사라고 칭찬하곤 하였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님들과 함께해주신 딸의 학우여러분! 딸은 한알의 밀알이 되어 우리보다 먼저 천국을 향하여 떠났지만 저는 딸 선희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키워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간직하며 저의 가족은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딸이 천국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달란트와 사명 그리고 그 기간이 정해져 있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호흡을 마감하시는 순간까지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며 항상 기도하는 자리에, 십자가 지는 자리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리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도록 충성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내가 어떤 큰일을 하기보다는 소자 하나를 정성껏 섬기며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길 기도하면서 … )
 
 우리가 하는 복음의 일들이 작든, 크든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 재산과 같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이 한 일이 온 세상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 여인이 한 일도 같이 전해져 그를 기억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한일이 하늘의 생명책과 세상에 모두 영광스럽게 기록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감사의 글을 마칩니다.
                     
 
                                                       2010年 1月  
 
                         사랑했던 딸을 천국 보낸 이선희 아빠 李達宰 長老 드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 아침 신문 기사 중 하나가 일본에서 야구선수로 활약중인 김태균 선수가 잘 치는 이유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http://bit.ly/aMYujr
 sk의 김성근 감독이 김태균 선수가 잘 치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적고 있는데, 하나는 타구를 우중간으로 보낸다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 못쳐도 해맑게 웃는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후자에 대해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이 후자에 대해 더 설명한 내용입니다.

김 감독은 "이종범이나 이승엽은 하루 못 치면 고개를 푹 숙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말 그대로 '요즘 아이'답게 밝다"고 했다. 비슷한 예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다. "야구장에서 안 되는 일은 야구장 안에서 반성하고 집에 가는 게 좋다. 그래야 다음 날도 재충전이 된다. 이치로도 잘 안되면 그 날 남아서 계속 연습하고 집에 갈 때는 다 털고 간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노력을 많이 했어도 잘 안되는 날이 있고 실수할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자책을 하고 다음날에도 그러한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즈키 이치로 같은 경우에는 경기가 잘 안되었을 때 그 날 충분히 반성하고 그 날 계속 연습하며 집에 갈 때는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가기 때문에 야구를 잘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충분하며 집에 갈 때는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꿈을 꾸며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지난 시절 때문에 계속 자책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꿈을 못 꾸시진 않습니까? 이제는 툭툭 털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새로운 마음으로 달려갑시다.

마 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너의 그 대답은 책이나 교사들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네게,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그 비밀을 알려 주셨다. 이제 네가 누구인지, 참으로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베드로, 곧 바위다. 이 바위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교회는 지옥의 문들조차도 막아서지 못할 만큼, 그 세력이 널리 뻗칠 것이다. (MSG)

 1999년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기도제목을 잔뜩 적어 가지고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기야, 너에 대해서 누가 가장 잘 알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저를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계획하였으니 너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가장 잘 알고 있고 너가 누구인지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도제목으로 기도해야겠다라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를 듣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험이 제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까요? 난 어부로 태어났다. 이것이 내 평생의 직업이며 운명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베드로를 부르셨는지 베드로는 누구인지를 새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누구인지, 참으로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베드로, 곧 바위다. 이 바위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교회는 지옥의 문들조차도 막아서지 못할 만큼, 그 세력이 널리 뻗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이 땅 가운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인지를 실은 잘 모릅니다. 이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앉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누구인가요?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야할까요? 이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사명을 발견한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능력있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비전을 발견하는 분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중간지대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때 중간지대가 괜찮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저럴 수도 있지!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면 할 수록 중간지대는 없고 주님께서는 좀 더 높은 정도의 헌신과 주님을 향한 순종을 이야기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분 나쁜 일도 생깁니다. 내 맘을 몰라주고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안에서 우리를 근심하게 만드는 말들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룩한 잔소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메세지에 응답할 때 그것이 나를 몰라준다고 기분나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뜻이 맞다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기분이 나쁘더라도 나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에 앞서 바로 우리 자신, 나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시키길 원하십니다. 거룩하고 변화되어 정결하고 주를 따르도록 준비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향해 하나님이 어떤 도전을 주시고 어떤 면에서 바꾸기를 원하시는지를 먼저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나는 사역자입니다. 내 안에 변화되어야 할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면들이 저를 좌절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기대함이며, 하나씩 변화되어 거룩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가는 과정 가운데 소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고 합니다. 또 인내하고 참으려고 합니다. 그 인내가 온전히 내 안에 이루어져 믿음의 승리를 얻길 원합니다.

이 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도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시고 절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으시는 분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열방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그 본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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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29-3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너라."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발밑에 거세게 이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순간, 베드로는 용기를 잃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지체하지 않으셨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용기 없는 사람아, 어찌된 것이냐?" 두 사람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가라앉았다. 배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 보던 제자들이 예수께 경배하며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MSG)


 믿음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겠습니까? 저는 믿음을 생각해 보면서 이렇게 정의를 내려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 믿음은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풍랑가운데 믿음으로 바다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순간 상황 때문에 물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베드로는 같이 바다를 걸어 배에 오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 이야기가 나오며 믿음에 대해 쭉 설명합니다. 결론으로 나오는 부분이 바로 12장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기에서도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11장 바로 앞에도 인내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11장은 믿음에 대해, 12장 첫 부분도 인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믿음에는 인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내로 완성이 됩니다. 처음에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냐, 상황 가운데 빠져들 것이냐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차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게 되면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은 견고한 믿음을 위한 완성단계에 접어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같이 나아가는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할 방향인 것 같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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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kerson served as a pastor in small churches in Scottdale and Philipsburg, Pennsylvania, until he saw a photograph in Life Magazine in 1958 of seven New York City teenagers charged with murder. He later wrote, that as he felt the Holy Spirit move him with compassion, he was drawn to go to New York in February 1958. It was then that he began his street ministry to underprivileged inner-city youth.

Wilkerson is well-known for these early years of his ministry to young drug addicts and gang members in New York City in the 1950s and 1960s. He co-authored a book with John and Elizabeth Sherrill about his work with the New York drug addicts,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which became a best-seller. Included in the book is the story of Nicky Cruz's decision to become a Christian, who later wrote "Run Baby Run" about his own life. The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has sold over 50 million copies in over thirty languages since it was published in 1963. In 1970 the book was also released under the same title as aHollywood movie starring Pat Boone as Wilkerson and Erik Estrada as Cruz. The book was included among the 100 most important Christian books of the 20th century.[citation needed]

In the early 1960s, Wilkerson, his wife Gwen, Loren and Darlene Cunningham, and Howard and Pat Foltz, prayed together in Colorado. From this developed three ministries: Teen Challenge USA (Wilkerson's), Youth With A Mission (Cunningham's), and Teen Challenge Europe-Asia (Foltz's), which have reached youth and adults worldwide, many with life-controlling problems, through its centers and ministry. Teen Challenge's USA and Europe-Asia ministry is a biblically-based recovery program for drug addicts that has been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effective efforts of its kind.[1]

In 1967, Wilkerson began Youth Crusades, an evangelistic ministry that was aimed to reach teenagers whom Wilkerson called "goodniks" — middle-class youth who were restless and bored. His goal was to prevent them from becoming heavily involved with drugs, alcohol, or violence. Through this ministry, CURE Corps (Collegiate Urban Renewal Effort) was founded. It was intended to be something of a Christian version of the Peace Corps and Volunteers in Service to America (VISTA).

In 1971, Wilkerson moved his ministry headquarters to the town of Lindale, Texas (just outside of Tyler), where he founded World Challenge. The organization's mission is to promote and spread the Gospel throughout the world.

In 1986, while walking down 42nd Street in New York City at midnight, Wilkerson believes that the Holy Spirit called him to return to New York City and to raise up a ministry in Times Square. This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Times Square Church which opened its doors in October 1987. The church first occupied rented auditoriums in Times Square (Town Hall and the Nederlander Theater), later moving to the historic Mark Hellinger Theatre, which the ministry purchased in 1989 and in which it has operated ever since.

For over four decades, Wilkerson's ministry has included preaching, teaching and writing. He has authored over 30 books.

Since the 1990s, Wilkerson has focused his efforts to encourage pastors and their families throughout the world to "renew their passion for Christ". In his own words:

"I've been an evangelist for 50 years, but I didn't want to preach to pastors until I had gray hair, until I'd pastored. Now after 15 years of pastoring, sharing the hurts, pains, and difficulties of the ministry as a pastor, I felt the Lord finally release me, that I might have something to say."[citation needed]

Wilkerson and his wife Gwen moved to New York City at the inception of Times Square Church in 1987, and in 2006 began splitting their time between New York and Texas (near their World Challenge offices in Lindale). They have four children and eleven grandchildren. His son Gary Wilkerson has also begun to gain recognition as aChristian minister and evang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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