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독인들을 만납니다. 기독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아무래도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겠죠. 하나님과 여러 일들을 같이 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 듣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는 스릴 있고 기쁨 넘치는 그런 삶들을 우리는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것도 모르고, 성령의 내적 조명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우리가 생각하기에 잘난척 하고 그런 것들을 교만이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만은 순종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앉을 때 전적으로 내가 듣겠습니다. 행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요. 라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뭐가 내 안에 다가오나 보자. 하나님 말씀, 뭐 이런 게 맞아? 내 상황이나 아시는지? 이런 식으로 앉아 있을 때 교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관자라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적으로 배우겠습니다라는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태도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교만에 빠져 있으며 하나님과 절대 친밀해 지지 못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YWAM의 훌륭한 지도자인 플로이드 맥클랑이라는 분은 하나님과의 친밀감(intimacy With God, 부제: Winning over Pride)이라는 책에 대해서 썼는데, 그 책의 내용은 바로 교만에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가장 큰 방해 요인이 되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에 교만을 제거한다면 하나님과 친밀해 질 수 있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당연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존중하거나, 그분이 어떤 것을 가르쳐 주셔도 순종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사십니까? 아니면 끊임없이 쓴뿌리와 회의와 방황 가운데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께 따지려는 마음으로 결국은 어떤 것도 하나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는 것으로 나를 주님께 복속시키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 바로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는 가장 유일하면서도 가장 빠른길입니다.
 
 축복합니다.~~
 마 13:44-50
하나님 나라는 오래도록 밭에 감추어져 있다가 그 곁을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찾아낸 보물과 같다. 찾아낸 사람은 기뻐 어쩔 줄 몰라서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다. 하나님 나라는 최고의 진주를 찾아다니는 보석상과 같다. 흠 없는 진주를 만나면, 그는 즉시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산다. 하나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가로 끌어다가 좋은 물고기는 골라서 통에 담고 먹지 못할 것은 버린다. 역사에 막이 내릴 때도 그럴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쓸모없는 물고기들은 추려 내서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엄청난 불평이 있겠지만, 전혀 소용 없을 것이다. (MSG)


1. 저는 성경을 사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어떤 곳에 어떤 성경이 있다 소식만 듣게 되면 마음이 설레고 온통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값이 어떻든지 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불하고 그 성경을 사러 바로 달려갑니다. 우리 모두는 갖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말 원했던 것,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라는 소식만 들으면 얼마든지 시간도 내고 환경도 상황도 바꾸면서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너무나 바쁘고 너무나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우리가 행하는 태도를 보면 압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을 하기 위해 잠을 줄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다른 시간에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휴가를 내기도 합니다.

2.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열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2004년에 한국 예수전도단에서 직장인 dts를 했습니다. 70명 정도 학생들이 모이는데, 사업가도 계시고 의사도 있고, 어려운 직장 가운데서 봉급이 많지 않아 상황이 어려운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훈련받겠다라는 그 일념하여 상황을 극복하며 10개월 정도를 강의 들으러, 전도여행 준비 등으로 성실하게 모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시대에 사람들이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열정을 불어 넣어주고 동기를 넣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됩니다.

3. 헨리 나우웬은 돈 많은 젊은 부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맞습니다. 사랑하고, 그분을 향한 열정이 가득할 때 다른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분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분을 얻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입니다.

4.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길 기도합시다. 그분의 사랑을 알 때 그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때 그분을 더 알고 싶어합니다. 오늘 삶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되시고, 하나님 더 알고 싶습니다라고 마음의 소원을 올려드리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왕상 7: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한글개역개정)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프리셉트 성경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긴 - 원뜻은 똑바로 서다,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 하나님이 성전의 건립자이심을 나타낸다.
보아스 - 힘이 그에게 있다는 뜻, 하나님께서 성전에 힘을 주시고 영원토록 지속시키심을 시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두 기둥에 의해서 힘을 받고 세워집니다. 그 큰 기둥 두 가지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야긴 속에 담겨진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보아스 속에 담겨진 의미인데,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탁드리며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물은 지어지는 것만으로 그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유지 보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령께 민감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능력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성전인 우리 모두가 우리의 뿌리를 알고, 하나님께 계속 붙어 있어서 그 생명을 공급받아 멋진 성전으로 지어져 가길 원합니다.
   2 "I know your works, your toil and your patient endurance. I know that you cannot tolerate evildoers; you have tested those who claim to be apostles but are not, and have found them to be false. 3 I also know that you are enduring patiently and bearing up for the sake of my name, and that you have not grown weary. 4 But I have this against you, that you have abandoned the love you had at first. 5 Remember then from what you have fallen; repent, and do the works you did at first. If not, I will come to you and remove your lampstand from its place, unless you repent.

관찰:
반복 : I know
list : your work, your toil, your patient endurance, not tolerate evildoers, tested those who claim to be apostles, them to be false, enduring patiently and bearing up, not grown weary
대조 : But
key words : abandoned the love you had at first, unless you repent
명령 : remember, repent
what : what you have fallen, do the works you did at first
가정 : if not, unless

해석 :
1.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 생활이 나는 무엇을 했다 무엇을 했다 이런 식으로 자랑에 사로잡혀 있음을 볼 수 있다. 신앙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형식만 강조되며 그것이 오히려 더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잇다.
2. 하나님은 안다.안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안에 탄식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게 핵심이 아닌데. 에베소 교인 속에 들어있는 자부심들을 하나 하나 지적해 내시며 But 이후의 내용을 강조하시기 위해 논점을 뒤에 두시고 계속 몰아가신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의 초대를 하신다. 그것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촛대를 옮기신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핵심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걸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음을 설명하신다.

적용 :
1. 신앙이 형식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며 엎드리는 모습이 없는 우리의 모습은 없는가?
2.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가 붙들었던 하나님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 마음으로 돌아갈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초청하신다. 그걸 평생 붙들어야 한다.

마 13:36-43
예수께서 회중을 돌려보내시고 집에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들어와서 말했다. "밭의 엉겅퀴 이야기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께서 설명해 주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는 인자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 백성이다. 엉겅퀴는 마귀의 백성이고, 엉겅퀴를 뿌리는 원수는 마귀다. 추수 때는 시대의 끝이고, 역사의 끝이다. 추수하는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엉겅퀴를 묶어서 불사르는 장면은 마지막 막에 나온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나라에서 엉겅퀴를 뽑아 쓰레기장에 던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높은 하늘에 대고 불평하겠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너희는 듣고 있느냐? 정말로 듣고 있느냐? (MSG)

1.  교사 생활을 할 때 부모님들 상담을 해 보면 왜 자기의 자녀가 엇나가는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친구 잘 못 만났다. 그런데 꼭 친구 탓만은 아닙니다. 친구를 잘못 만났을 수도 있고, 또한 잘못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인데 자기가 거기에 휘둘렸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두 가지의 요건들이 충족되어 아이가 잘못 되는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악에 노출되어 있고, 누구나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럴 때 잘못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호시탐탐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갖은 전략을 다 동원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에 비해 그 전략이라는 것이 창조적이지도 않고 단순하고 몇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하나님에 대해 불평을 하게 한다거나 뭐 그런 것이지요.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이 사단의 특징이니까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몰아갈 때 우리를 통치하는 세력이 마귀가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능히 자신의 나라를 꾸밀 계획을 가지시고 실행하실 권리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꽃들로 나무들로 채울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마 이 세상 가운데 있는 사람들 하나 하나를 살펴 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풍성하게 채울 사람들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생각만 해도 풍성함이 가득한 구절인 것 같습니다. 더이상 죄악이 없으며 죄악으로 인한 아픔들이 없고 눈물이 없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아름답게 채워질 그 모습...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놀랍게 확장되며 궁극적으로 주님의 그 나라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풍성함이 늘 넘치길 기대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가 가득한 그런 사람 되길 기도합니다.

마 12:39-4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증거를 찾고 있으나 엉뚱한 증거를 찾고 있다. 너희는 너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고, 기적에 대한 너희의 욕망을 채워 줄 무언가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가 얻게 될 유일한 증거는, 증거처럼 여겨지지 않는 요나의 증거뿐이다.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처럼, 인자도 사흘 밤낮을 깊은 무덤 속에서 지낼 것이다. 심판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증거를 내놓을 것이다. 요나가 설교할 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고쳤기 때문이다. 요나보다 더 큰 설교자가 여기 있는데도, 너희는 증거를 따지고 있다. 심판날에, 시바 여왕이 앞에 나와서 이 세대를 정죄할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여왕이 지혜로운 솔로몬의 말을 들으려고 먼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큰 지혜가 바로 너희 앞에 있는데도, 너희는 증거 운운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MSG)

 기독인들과 만나다보면 그의 삶 속에 영향력을 줬던 유명한 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분은 참 훌륭하셔. 그 분의 말, 그분의 글, 얼마나 내 삶을 바꿨는지 몰라. 이러면서 그 분을 칭찬하기에 너도 나도 동참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그분 그냥 말만 듣고도 믿음이 갑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는 까칠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 하셨다라고 하면 우리 모두는 정말 그러냐? 증거를 대라.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신기하죠? 왜 사람의 말은 그토록 아무 비판없이 훌륭하다 싶으면 그냥 받아들이는데, 하나님 말씀에 대해선 그토록 의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 심판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니느웨 사람으로 볼 때는 듣보잡인 요나가 나타나서 회개하라 하나님 심판이 임한다라고 했으니, 절대 안 믿어도 상관없습니다. 증거를 내 놓으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회개하라는 말에 사람들이 찔려서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지 않도록 자신을 겸비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요나의 말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반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람들이 전혀 반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증거를 내 놓아라고 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신 모습도 여러번 보여주셨지만 요나는 그냥 말 한마디에 니느웨 사람들이 믿었지만, 예수님은 또 다른 기적을 보여 달라고 사람들이 요청하며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N Jesus Nam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 윌로우크릭의 한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자신은 교회가 지시하는 사항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가슴 아프다.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따라갑니까?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모순된 행동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시다. ^^

야구 시즌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야구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기사를 보다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 기사는 lg와 넥센 야구단에 관한 것입니다.
기사를 요약해 보면 lg는 리빌딩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였고, 화려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lg를 4강 후보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넥센은 화려한 선수도 거의 없고, 경영난 때문에 야구단을 제대로 꾸려 나가기도 힘드니 하위권 후보로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되자 마자 두 구단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lg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고, 넥센은 안정된 투타를 바탕으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lg는 화려한 선수들과 좋은 조건이 있지만 모래알 같이 하나 되지 못하는 느낌이고, 넥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도 해 주고, 성적이 나쁘면 격려도 하면서 강한 의지로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http://bit.ly/aoo131

사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 좋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환경이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초호화 멤버를 거느리고 있는 팀이 월드 시리즈를 꼭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아실것입니다.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서로 하나되어 해 보려는 의지가 승리를 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됨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되어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고, 하나되어 하나님 뜻을 실천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정,의의 영역을 모두 사용하여, 하나님 뜻을 향해 달려나가는 공동체가 되었을 때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되는 공동체만큼 강력한 것이 없으며, 아무리 조건이 좋더라도 하나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앞에 보이는 모래성과 같을 것입니다.
막 16:1-5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께 바르려고 향료를 샀다. 일요일 이른 새벽 해뜰 무렵에, 그들은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에서 돌을 굴려줄까?"하고 서로 걱정하며 말했다. 그들이 문득 고개를 드니 돌- 아주 큰 돌이었다.-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한 청년이 흰옷 차림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몹시 당황하여 놀랐다.(MSG)


1. 부활의 소식
 인생을 살다보면 무덤과 같은 현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무덤을 닫고 있었던 돌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을 열어야 나는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데, 닫혀져 있다고 느껴지는 현실 가운데 마음이 답답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아픈 현실 속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방황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삶 가운데 해결해 줄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직도 없다라고 하면서 한숨 짓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미 무덤에서 돌문이 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길은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달려갈 방향성과 구원의 문은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아직도 방황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 오십시오. 그 문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직접 달려갈 자세가 요구됩니다. 아직도 열려져 있지 않다고 닫혀진 문만 생각하며 방황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그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경험하셔야 할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들이 하나 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그 삶의 모습을 볼 때, 우리가 그 분의 행적을 따라갈 때 그 분이 우리 삶 가운데 믿고 따라야 할 분인가를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달려갈 길을 방황했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했던 사도 바울도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문이, 인생의 목적의 문이 이미 열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 문이 닫혀져 있고 문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 문이 열려져 있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증인들입니다.

이사야 53:4-6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MSG)


1. 자기가 스스로 초래한 고난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대부분의 고난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 결과로 얻어지는 고난입니다. 사실 이런 말에 고난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가를 치룬다라는 말이 더 적당하겠죠.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떨어져 놓구선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잘되면 내탓 못되면 주님탓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구선 그 결과에 대해서 불평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요. 그런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 쓴소리를 한다면 하나님 측면에서도 많이 억울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불만인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래, 뭐 때문에 불만이야? 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딱히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실패적인 삶에 대해서 핑계를 돌릴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예수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예수님이 뭘 잘못했단 말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 죄인들의 친구가 되라고 했습니다. 뭐 하나 잘못된 말이 없는데 구체적이지도 않은 추상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비난합니다.

2. 아무 이유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고난의 한 종류가 나옵니다. 그것은 누군가 고난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예수 믿는 누군가가 저렇게 힘들면서도 믿음을 잘 지키는구나.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는 대부분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 없다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고난도 우리의 눈으로 결코 이해되지 않지만, 그분의 고난 때문에 사람들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겪는 고난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당장 그것이 가슴 아픈 길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보면 아, 이래서 내가 이 고난을 짊어지고 가게 되었구나라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 가운데 통로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고난 받을 이유가 없는데 고난 당한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친밀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저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너는 나와 함께 십자가까지 질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극도의 친밀함 말입니다. 친구가 정말 친구이고, 친밀한 친구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고통까지도 같이 나누는 친구가 정말 친밀한 친구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나 괴로우나 같이 할 수 있는 부부가 더더욱 친밀한 부부가 아닙니까? 나와 함께 하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어려움이 있소. 그러나 같이 해 줄 수 있겠소? 이 고백은 정말 멋진 고백입니다. 어려움까지도 같이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힘들어도 우리 끝까지 같이 가는 그런 사람됩시다라는 극도의 친밀감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누군가에게 나와 함께 십자가 질 수 있겠냐고 초청하는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그만큼 신뢰하신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분과 신뢰함 가운데 깊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꺼이 고난을 받으신것도 나는 너희를 위해 고난까지도 짊어질 수 있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역시, 고난까지도 같이 쉐어할 수 있는 사랑으로 연결된 그런 관계 속으로 깊이 주님과 위탁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막 15:21-32
 병사들은 오전 아홉 시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진 그분의 죄목이 십자가에 적혀 있었다. 예수와 함께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렸는데, 하나는 그분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그분 왼쪽에 달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슬픈 척 고개를 저으며 예수를 조롱했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으스대던 네가 아니냐. 그러니 실력을 보여 봐라! 네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십자게에서 내려 와 봐라!"
 바로 그 자리에서, 대제사장들도 종교학자와 나머지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그분을 비웃었다. "그가 다른 사람은 구원하더니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메시아라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그럼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다 믿을 텐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까지도 조롱에 가세했다.
(MSG)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게에 못 박히셨는데, 사람들의 조롱에 대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롱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던 너가 왜 너 자신은 구원못하느냐?라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똑같은 비난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된다고 영혼이 구원받는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 너의 모습은 왜 그 모양이냐? 도대체 집이 잘 되기를 했나? 너 처지와 형편이 풀리기를 했나? 가족들은 왜 그 모양이냐? 이런 걸 가지고 예수 믿으면 잘된다고 말한 너의 모습은 내가 보기엔 형편없다. 한심스럽다. 이러면서 조롱을 받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편이라도 남보다 잘 풀리면 우리는 담대함을 얻습니다. 봐라, 예수 믿으니 이렇게 잘 되지 않는가? 오늘날 교회에서 들려지는 많은 간증자들의 메세지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믿었으니 자식들이 성공했다. 예수 믿었으니 봐라, 내가 사회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 되었다.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이런 말들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고, 예수를 따라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망가지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달려갔으나, 정작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교회에서도 정작 그런 수고 보다는 믿음을 탓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 선교사분이 오랜 외국 생활 가운데 본인도 병을 얻고 가족들도 많이 지쳐, 이제 그 자리를 정리하고 한국에 요양을 하려고 돌아왔지만 패배자로 몰아가는 현실 속에서 아파했던 경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십자가 사건도 예수님이 패배자로 보이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그 뜻 하나님이 다 아시고 계시는 것이죠. 오히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그 모든 비난을 감당하시고 걸어가셨습니다.

 오늘날도 힘든 상황 속에서 인정 받지 못함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아픔을 쏟아 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우리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은 결코 겉으로의 상황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공주의적인 신앙의 모습만 생각하고 달려가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혹시 없는지요?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칭찬만 늘어 놓는 우리들의 모습은 없는지요?
 진정한 믿음은 세상적으로 보기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런 간증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달려갔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삶 가운데 근원이시며 소망이시라. 그 분만이 나의 구원이시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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