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하늘이 임했다.

평범한 덤불마다 하나님으로 불타고 있다.

그러나 보는 자만이 그의 신을 벗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덤불 주위를 거닐며

산딸기 따는 일에 여념이 없다.

- 엘리자벳 바렛트 브라우닝

 

생각할 점)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데,

떨기 나무 자체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변함없는 현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신을 벗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믿음의 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출처 : http://www.gbod.org/worship/2009-2pagercl.pdf

 

저는 설교할 때 보통 RCL을 사용합니다.

그냥 성경의 한 권을 강해식으로 설교하는 것보다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성경을 이해할 때

마태복음의 본문을 사용한다면

마태복음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하는데,

마태복음을 가지고 강해를 한다면 그 수고는 한 두번 정도로 하면 되고

부분적인 부분을 전체와 연결시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RCL은

성경 본문이 교회력에 따라 다양하니

그것을 설교하기 위해선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 수고를 더하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

RCL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성경을 골고루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몇 문제점들도 있습니다.

 

위에 적은 링크를 클릭하시면

2009 RCL 본문을 적어 놓은 pdf 문서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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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최고였다.

 

 

과연 이런 성극팀을 또 만나 볼 수 있을까?

이들의 열정과 끼 존경스럽다.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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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를 쓰다가 textcube로 이전했습니다.

tistory에 계속 에러가 나서 해결을 할 수 없었고, textcube가 제공하고 있는 기능들이 제가 사용하는 블로그의 성격에 더 맞아서 과감히 옮겼습니다.

 

앞으로 좀 더 활성화된 블로그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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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문득 구유에 나신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누추한 곳을 예수님이 날 자리로 하나님이 준비하셨던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누추한 곳을 보고 계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누추한 곳까지 보고 계시군요.

그리스도인들은 영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육의 눈으로는 가장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나 높은 곳만, 편안한 곳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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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갈대상자 속에 놓인 모세가 흘러 흘러 이집트 궁전으로 갔듯이
처음에는 이집트의 생활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더 흘러 흘러 성령의 갈대상자에 실려 가나안으로 향한다.
모세가 바로의 궁을 떠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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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달리 예수님의 고백이 떠올랐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지는 그 날에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랑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냥 끝까지 사랑하겠다.

머릿속으로 이 장면을 떠올리며
가족과 청년부원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냥 끝까지 사랑하겠다.

평생 예수님의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그들을 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이런 고백은 여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시면서도 이런 말씀을 또 하신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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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기독인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은 기독인들에게 반감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생각을 해 보면 이것 때문에 기독교가 확장된 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각 나라들이 인정함에 따라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이 자유롭게 포교 활동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기독교가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점은 기독교 또한 유불리를 가진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기에 기독교는 또한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다.

즉, 어떤 현상을 분석할 때 근본주의적으로 이것 아니면 절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면에서 살펴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그저 이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근시안적인 해석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한정된 시공간 속에 가두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모 목사님이
기독교 이외의 어떤 종교가 들어가는 나라 쳐 놓고 잘 사는 나라 없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역사 의식도 결여되었을 뿐더러, 신학적인 관점에서 바로 서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성경만 봐도 하나님을 안 믿던 나라들이 강성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전인수격의 논리를 갖다 붙이면서 자기 생각에만 갇혀서 기독교를 설명하게 될 때에,
오히려 기독교는 고립될 것이고 그들만의 종교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기독교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으로만 이해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비기독교 역사 가운데서도 나타나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며
역사 공부도 해야 하고, 일반 학문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니엘서를 살펴보면
다니엘이 바벨론의 음식을 거부했지 학문을 거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다니엘은 바벨론의 학문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을까? ^^;;;

1: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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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가 내겐 정말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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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바알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알은 풍요를 상징하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상징했던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자체를 창조된 목적대로 에덴의 가치관으로 회복시키길 원하셨습니다. 물질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되어 버리는 인간, 죄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파괴적인 곳에 방임해 버리려는 인간들을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너희가 바알을 따를 것이냐, 하나님을 따를 것이냐 선택하라고 하였으며, 그 질문을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예수님께서도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시대를 사로잡고 있는 가장 강력한 사단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물질을 숭배하는 가치관입니다. 신자유주의 사상에서부터 시작하여서 사회나 교회 안에서도 물질을 숭상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돈이면 대접받고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돈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우쭐해 하는 모습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제만 살리면 이 사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 어디를 통틀어도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경제를 살리더라도, 사회 안에 도덕성이 없으면 그 도덕성 없음으로 인해 얼마나 경제적인 손실이 있는지 모릅니다. 즉, 경제만 살리면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본질적인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모 그룹의 총수였던 사람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집행 유예 선고를 받았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이며, 또한 이 나라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삶에서 열매가 나타날 수 없고 기독교의 가치관이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매와 가치관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과연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 단체에서 무조건 기독인이라고 당선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독인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모든 사람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논리에서 이 땅의 기독인들이 벗어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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