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14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독자는 알아 들으라. )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13:15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려 내려 오지 말며

13:16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 가지 말아라.

13:17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13:18 이런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13:19 그 때에는 무서운 재난이 닥쳐 올 터인데, 이런 재난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또 앞으로도다시 없을 것이다.

13:20 주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사람은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뽑으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줄여 주셨다."

 

재난이 다가오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재난이 다가올 때 가장 피해를 입는 계층이 어느 계층인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마가 다가올 때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침수가 잘 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즉, 침수가 잘 되는 걸 알면서도 그 지역에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질병이 돌 때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치료를 잘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플루로 인해 인도가 어느 나라보다 피해를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문지상에 보면 그 나라는 치료 시설이 열악하여서 방치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피해가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앙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에 편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에 골고루 경각심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 계층에 피해를 입는 방식으로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하나님의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생각없는 비판에 대해서 감히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일컫는 행동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위에 적은 마가복음에서도 불의한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군인에 의해 자행되는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일이라든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행동에 대한 이미 이루어진 예언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런 행동들이 결국 약자들에게 가장 피해가 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더 고통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고통의 기간을 줄여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일으키고 악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의 결과를 수습하시고 선으로 바꾸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나미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생각의 깊이가 얕음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구는 인간이 지구를 잘 보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에너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한쪽으로 지구 에너지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지각의 얕은 부분을 통해 분출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쓰나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약한 지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쓰나미의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으켰습니까? 선한 하나님을 왜 불의한 하나님으로 몰고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어두운 눈이,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죄악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 죄로 인해 가슴 아프고 절망 적인 현상들을 선으로 바꾸길 원하시고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결국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것이 주님의 심판이니 뭐니에 대한 판단을 하지 말고,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현실이 빨리 그치고 여러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도록, 고통의 기간이 짧아지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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