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은 엘리 대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변함없는 종교적 행위를 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대하여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엘리 대제사장은 눈이 어두웠습니다.
심지어 한나라는 여인이 성전에서 기도하느라 울먹이면서 술취한 사람의 모습을 보였는데, 영적으로 무지한 엘리 대제사장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느라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술취해서 그러는지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사무엘상 1:13-14)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모습인지 그렇지 않은지 영적으로 닫혀져 있으니 볼 것을 못 보고 보지 못할 것만 보고, 평소 자신이 관심 있어한 세상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볼 때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심사로 투영하여서 보니 오히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핍박하고 멸시하는 역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두 아들의 범죄 행위를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두 아들은 제사장 직분을 행하면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자기들이 탐하여 가지고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같이 성적인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의 죄를 약한 수준에서 경계하였을 뿐 금하지 않았습니다.(삼상 3:13)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들은 죄를 타협하지 않습니다. 작은 죄악이라도 그것이 얼마나 주님의 임재에 직결되는 문제인가를 생각하기에 그 죄의 모습에 대해 철저한 회개가 뒷받침됩니다. 작은 죄라도 우리 마음속에 호리라도 남은 것이 있다면 주님의 영이 그만큼 충만하게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얼마나 주님의 영에 대해서 사모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길 사모합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질까봐 가장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할 것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질까봐 그것때문에 근심하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사건은 점점 진행되어 엘리와 그 두 아들에 대한 심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대적하여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 없이 전쟁에 나갔다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한 군사가 4천명이 되었습니다.(삼상 4:2)
백성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패한 요인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4:3)
과거 광야 생활 때 여호와의 언약궤와 같이 한 전쟁의 승리를 기억했습니다. 그때 승리를 하였구나라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짊어지고 와서 블레셋 사람들과 다시 한 번 전쟁을 치루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만했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으니 우리는 승리하였다라고 기고만장하고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궤에는 정작 중요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죄악된 사람들이 아무리 종교적 행위를 해도 거룩함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패하여 여호와의 언약궤 마저 뺏겨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엘리 가문에 내려지게 됩니다.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이 전부가 되는 삶,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의 거룩함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에서 종교적인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찬양을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일순간 감정적으로 평안함을 느낀다해도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와 함께 함으로 느꼈던 승리의 기쁨을 하나님이 진짜 함께 계셔서 힘을 주시는구나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궤에도 계시지 않고 우리의 종교적 행위에도 계시지 않으며 주님의 거룩함이 있는 곳에 주님께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가운데 계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죄인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뿌려지며 그 안에서 새로워진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거룩한 성전이 되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내 자아가 죽고 나의 욕심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전부가 되신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거하실 것이며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 직접 일하는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