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4:29-30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육적인 욕망에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자녀입니다. 즉 육으로 난 자녀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말씀대로 고난과 역경 가운데 기다리면서 말씀이 이루어져 나은 자녀입니다. 이삭을 바로 성령의 자녀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육의 자녀와 성령의 자녀의 대립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마엘처럼 신앙생활의 결과가 육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온다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결국 순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따른 생각뿐입니다. 교회 봉사를 하면서도 자기를 은연중에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 인도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곡이 성도들을 기쁘게 하겠다라는 자기의 생각으로 콘티를 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자는 성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그런 곡을 부르면 좋아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그 곡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리며 회개 가운데 이끌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곡을 하라고 하시면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콘티를 짜는 사람들이 영으로 인도하는 찬양 인도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찬양 인도를 해 왔습니다. 해 오면서 육에 이끌려 찬양 인도를 해 온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에 이끌려 찬양 인도를 하기 위해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과연 어떤 곡으로 찬양을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성도들에게 무엇을 전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만 운행하시고 하나님이 하시옵소서. 기다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 번의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콘티를 놓고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내 생각대로 성도들이 이런 곡에 감동받으니 이렇게 인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에 철저히 순종하고 그분께 주권을 맡겨드려야 하니, 그렇게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길은 어떻게 보면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포기했으니 이제는 철저히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 우리 삶 가운데 이삭이라는 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성령의 법 이삭과 육의 법 이스마엘이 언제나 싸우게 됩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지지 않는 이유는 성령의 법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기다리며 순종하지 않고 육에 이끌려 육신의 생각대로 교회를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의 점검을 하지 않는 이상 한국 교회가 바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설교하는 사람이 있고 영으로 설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설교하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이 기뻐했을 것과 같은 비슷한 상황입니다. 뭔가 기쁨은 있지만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아니라 곧 근심이 됩니다. 곧 죄악으로 연결되어 생명수가 끊어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설교하는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그분의 기름부으심과 임재가 역사하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통로로 내어 주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바로 생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정말 필요합니다. 구원의 메세지에 회개가 절대로 빠질 수가 없습니다. 회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처절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죄 용서를 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은 다시는 그 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에 감히 그 죄를 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는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오는 메세지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다가 정작 그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하도록 초청하는 것이 성령님께서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분명 육으로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그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메세지가 선포되고 예배가 드려질 때 악한 영이 비로서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죄도 반복되다 보면 죄가 편해집니다. 우리의 선한 양심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한 권세가 기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악한 영과 더불어 살던 육의 사람은 드디어 그 속에서 악한 영이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안절부절하게 되고 두려움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실체를 드러내느라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안에 있는 실체를 드러내고 쪼개려고 하기 때문에 악한 영이 소유를 주장하면서 두려움을 계속해서 불어 넣는 일들이 성령의 역사가 강한 집회 가운데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권세를 예수 이름으로 결박하시고 성령의 검으로 쫓아 낼 때 비로서 우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육으로 살고 있습니까?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소리가 내 자신의 소리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이 영으로 살고 있습니까?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우리의 영을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하면 이스마엘처럼 내어 쫓기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육으로 살던 사람들의 결말은 다 그와 같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그 결말이 내어 쫓김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도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그것을 내버려 두지 마십시요. 확신이 없는데도 구원받았다라고 믿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어디있습니까? 그러다가 구원받지 못했으면 어쩌시렵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구체적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지 못했지만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느끼신다면 이제는 그것을 방치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고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 달라고 적극적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신 분들.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시는지 확신하지 못하시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시는 분들 괜찮다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그런 신앙의 회의적인 데 자신을 방임하여 인생 끝나는 날까지 갈등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내 가운데 오심을 확실히 가르쳐 달라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간절히 그 분을 찾으십시요.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이 구체적이며 살아서 역사하는 신앙이 되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는 그런 역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가운데 오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을 얻으신 분은 더 풍성히 얻도록 성령을 구하시고,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확실히 내 안에 있음을 보여 달라고 구하십시요.

 주님은 살아계셔서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며 우리가 영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우리 모두 영으로 사는 사람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며 그분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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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믿음으로 구하면(받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신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고, 더 좋은 표현은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믿음을 사랑과 동일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믿음 좋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간절하다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면 믿음으로 구하라. 히브리서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말로만 믿습니다라고 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데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실제로 믿지 못하는데 그걸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마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며 하나님 뜻을 구하면서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대로 세상을 향해 중보하면서 그 기도가 능력이 있는 기도가 되고 믿음으로 담대한 선포의 기도가 되기 때문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기도를 해도 소극적인 기도, 선포하는 기도가 아니라 그냥 입에 맴도는 기도, 하나님의 은사를 사모하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도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가득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마치 은사를 구하면 뭔가 내 삶이 무당처럼 될 것을 걱정하게 합니다. 이 사람은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압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분을 갈망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충만하며 더욱더 하나님과 친밀함을 사모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되려는 갈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위해 거룩과 성결을 사모하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시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친밀함 가운데 더 풍성함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름부으심 없이 신앙생활 하면 종교적이 되고 율법적이 됩니다. 율법적으로 육적인 것을 죽이려고 하니 시간이 오래 지나도 신앙생활에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지만 변화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을 강조합니다. 영으로 육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은혜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아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십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영이 임하여 계신다,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은 마치 커피숍에 탁자 맞은편에 서로가 서로의 눈빛을 보고 이야기를 하며 주고 받는 대화가 있듯이 대화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하니, 삶에 어떤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다루시는지 영적인 눈이 열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비로서 말씀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고 하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영혼에 깊은 임팩트를 주는 꿈틀거리며 나의 전존재를 지배하는 변화시키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해 예전에 귀납적이니, 연역적이니 주제별 성경공부니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저는 가장 최고의 것이 성령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 블로그에 적은 바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말씀이 살아서 연결되고 영적으로 임팩트를 주는 말씀이 되며 마른뼈와 같은 사람들이 생수를 공급받고 비로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지금도 동일하게 일어나며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같이 동역하며 그 나라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요엘서의 예언처럼 오늘날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에게 폭발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것을 더욱더 추구하며 따라갑니다. 사회는 악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폭발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세대에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시대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시키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함으로 넘치는 사람에게 기름부으심을 폭발적으로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 그 분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로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영이 가르치시는 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이 수동적인 생활, 종교적인 생활로 가득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기름부으심이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영으로 말씀하시는 대로 주 안에 거하면 요일 2:28절에 우리로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담대함을 얻어 부끄럽지 않는 사람으로 준비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름부으심을 사모하십시요. 기름부으심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부터 불덩이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감싸며 진동속에 전율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영적인 것들을 열어주셔서 우리의 입의 말속에 성령을 담으시며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의 심령을 찔러 쪼개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즉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이 자라게 되겠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부터 그 분과 교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상의 작은 삶 가운데서 기도 생활 가운데 하나님 내 가운데 무엇을 말씀하길 원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내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으로 반응할 때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시는 것을 직접 체험할 때 말씀이 실제로 육신의 삶 가운데 임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점점 신뢰함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도 상대를 신뢰하게 되는 것은 상대가 말한 것을 실제로 실천하였을 때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인생을 약속할만한 신뢰가 싹터 결혼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말씀속에 나타난 진리가 우리 삶 가운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믿음이 싹트고 믿음이 자라서 열매 맺으며 주님의 보좌 앞에 담대함으로 친밀함으로 나아가 능히 그 보좌를 흔들며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바로 믿음의 시작이며, 영적인 여행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믿음의 여정을 시작함에 있어 성령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길 축복합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
Posted by HolyNFire sunki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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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 아침 신문 기사 중 하나가 일본에서 야구선수로 활약중인 김태균 선수가 잘 치는 이유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http://bit.ly/aMYujr
 sk의 김성근 감독이 김태균 선수가 잘 치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적고 있는데, 하나는 타구를 우중간으로 보낸다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 못쳐도 해맑게 웃는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후자에 대해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이 후자에 대해 더 설명한 내용입니다.

김 감독은 "이종범이나 이승엽은 하루 못 치면 고개를 푹 숙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말 그대로 '요즘 아이'답게 밝다"고 했다. 비슷한 예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다. "야구장에서 안 되는 일은 야구장 안에서 반성하고 집에 가는 게 좋다. 그래야 다음 날도 재충전이 된다. 이치로도 잘 안되면 그 날 남아서 계속 연습하고 집에 갈 때는 다 털고 간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노력을 많이 했어도 잘 안되는 날이 있고 실수할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자책을 하고 다음날에도 그러한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즈키 이치로 같은 경우에는 경기가 잘 안되었을 때 그 날 충분히 반성하고 그 날 계속 연습하며 집에 갈 때는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가기 때문에 야구를 잘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충분하며 집에 갈 때는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꿈을 꾸며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지난 시절 때문에 계속 자책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꿈을 못 꾸시진 않습니까? 이제는 툭툭 털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새로운 마음으로 달려갑시다.
Posted by HolyNFire sunki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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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너의 그 대답은 책이나 교사들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네게,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그 비밀을 알려 주셨다. 이제 네가 누구인지, 참으로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베드로, 곧 바위다. 이 바위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교회는 지옥의 문들조차도 막아서지 못할 만큼, 그 세력이 널리 뻗칠 것이다. (MSG)

 1999년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기도제목을 잔뜩 적어 가지고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기야, 너에 대해서 누가 가장 잘 알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저를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계획하였으니 너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가장 잘 알고 있고 너가 누구인지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도제목으로 기도해야겠다라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를 듣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험이 제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까요? 난 어부로 태어났다. 이것이 내 평생의 직업이며 운명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베드로를 부르셨는지 베드로는 누구인지를 새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누구인지, 참으로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베드로, 곧 바위다. 이 바위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교회는 지옥의 문들조차도 막아서지 못할 만큼, 그 세력이 널리 뻗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이 땅 가운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인지를 실은 잘 모릅니다. 이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앉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누구인가요?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야할까요? 이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사명을 발견한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능력있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비전을 발견하는 분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Posted by HolyNFire sunki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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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실로
    2010.05.24 17: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나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라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이 가능합니까?

    다른 질문 하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정말 왜 교회들은 좋은 위치와 그 많은 돈을 투자해서 교

    회를 건축합니까? 저는 항상 궁금했어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어려움에 굶주리고 편모편부 가정에

    서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들이 그들을 위해 교우들로 받

    은 봉헌금을 그들을 위해 사용하길 바래요. 그리고 노방전도니 교회틀안에서 공부만 하지 말고 진

    실로 성경의 말씀대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길 바랍니다.
  2. 2010.05.27 11: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1.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은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틀립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여러 경로가 있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시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내적 조명이라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령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지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역사서들을 통해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만큼 훌륭한 교과서는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일어나는 사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 교회건축에 대해서도 어떤 분들은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건축하지 아니하고 분립을 한다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가진 돈을 내어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 건축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일반화시킬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일반화시킨다면 사람들도 다 획일화된 로보트만 존재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올바른 가치관이 담겨서 흘러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 건축이 필요할 수도 있고, 때로는 교회를 건축하지 않고 그 비용을 사회로 흘려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부르시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각각 다른 영역으로 부르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욕심이나 이기심의 발로인지, 하나님의 뜻을 정말로 따르기 위함인지 점검해야겠죠. 아마 본인들이 가장 잘 아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하나님은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니까요.

    3.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진정한 크리스챤이겠습니까? 크리스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크리스챤이 아니겠죠^^. 요한일서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4.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먼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그 분의 뜻대로 본인이 변화된다면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은 변화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것을 비판하는데만 정신 팔려 정작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안타까운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정직하게 반응한다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와 새롭게 하심이 이 사회가운데 넘칠 것입니다. 저는 남 비판할 시간보다 저 자신을 비판하며 돌아볼 시간도 부족하답니다. 항상 배우는 자로 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평생 서 가길 원하는 마음 뿐입니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진실로님께서도 참 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흘려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중간지대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때 중간지대가 괜찮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저럴 수도 있지!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면 할 수록 중간지대는 없고 주님께서는 좀 더 높은 정도의 헌신과 주님을 향한 순종을 이야기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분 나쁜 일도 생깁니다. 내 맘을 몰라주고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안에서 우리를 근심하게 만드는 말들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룩한 잔소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메세지에 응답할 때 그것이 나를 몰라준다고 기분나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뜻이 맞다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기분이 나쁘더라도 나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에 앞서 바로 우리 자신, 나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시키길 원하십니다. 거룩하고 변화되어 정결하고 주를 따르도록 준비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향해 하나님이 어떤 도전을 주시고 어떤 면에서 바꾸기를 원하시는지를 먼저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나는 사역자입니다. 내 안에 변화되어야 할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면들이 저를 좌절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기대함이며, 하나씩 변화되어 거룩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가는 과정 가운데 소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고 합니다. 또 인내하고 참으려고 합니다. 그 인내가 온전히 내 안에 이루어져 믿음의 승리를 얻길 원합니다.

이 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도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시고 절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으시는 분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열방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그 본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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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29-3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너라."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발밑에 거세게 이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순간, 베드로는 용기를 잃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지체하지 않으셨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용기 없는 사람아, 어찌된 것이냐?" 두 사람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가라앉았다. 배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 보던 제자들이 예수께 경배하며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MSG)


 믿음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겠습니까? 저는 믿음을 생각해 보면서 이렇게 정의를 내려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 믿음은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풍랑가운데 믿음으로 바다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순간 상황 때문에 물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베드로는 같이 바다를 걸어 배에 오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 이야기가 나오며 믿음에 대해 쭉 설명합니다. 결론으로 나오는 부분이 바로 12장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기에서도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11장 바로 앞에도 인내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11장은 믿음에 대해, 12장 첫 부분도 인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믿음에는 인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내로 완성이 됩니다. 처음에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냐, 상황 가운데 빠져들 것이냐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차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게 되면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은 견고한 믿음을 위한 완성단계에 접어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같이 나아가는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할 방향인 것 같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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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44-50
하나님 나라는 오래도록 밭에 감추어져 있다가 그 곁을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찾아낸 보물과 같다. 찾아낸 사람은 기뻐 어쩔 줄 몰라서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다. 하나님 나라는 최고의 진주를 찾아다니는 보석상과 같다. 흠 없는 진주를 만나면, 그는 즉시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산다. 하나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가로 끌어다가 좋은 물고기는 골라서 통에 담고 먹지 못할 것은 버린다. 역사에 막이 내릴 때도 그럴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쓸모없는 물고기들은 추려 내서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엄청난 불평이 있겠지만, 전혀 소용 없을 것이다. (MSG)


1. 저는 성경을 사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어떤 곳에 어떤 성경이 있다 소식만 듣게 되면 마음이 설레고 온통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값이 어떻든지 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불하고 그 성경을 사러 바로 달려갑니다. 우리 모두는 갖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말 원했던 것,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라는 소식만 들으면 얼마든지 시간도 내고 환경도 상황도 바꾸면서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너무나 바쁘고 너무나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우리가 행하는 태도를 보면 압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을 하기 위해 잠을 줄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다른 시간에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휴가를 내기도 합니다.

2.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열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2004년에 한국 예수전도단에서 직장인 dts를 했습니다. 70명 정도 학생들이 모이는데, 사업가도 계시고 의사도 있고, 어려운 직장 가운데서 봉급이 많지 않아 상황이 어려운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훈련받겠다라는 그 일념하여 상황을 극복하며 10개월 정도를 강의 들으러, 전도여행 준비 등으로 성실하게 모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시대에 사람들이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열정을 불어 넣어주고 동기를 넣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됩니다.

3. 헨리 나우웬은 돈 많은 젊은 부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맞습니다. 사랑하고, 그분을 향한 열정이 가득할 때 다른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분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분을 얻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입니다.

4.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길 기도합시다. 그분의 사랑을 알 때 그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때 그분을 더 알고 싶어합니다. 오늘 삶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되시고, 하나님 더 알고 싶습니다라고 마음의 소원을 올려드리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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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36-43
예수께서 회중을 돌려보내시고 집에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들어와서 말했다. "밭의 엉겅퀴 이야기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께서 설명해 주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는 인자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 백성이다. 엉겅퀴는 마귀의 백성이고, 엉겅퀴를 뿌리는 원수는 마귀다. 추수 때는 시대의 끝이고, 역사의 끝이다. 추수하는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엉겅퀴를 묶어서 불사르는 장면은 마지막 막에 나온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나라에서 엉겅퀴를 뽑아 쓰레기장에 던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높은 하늘에 대고 불평하겠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너희는 듣고 있느냐? 정말로 듣고 있느냐? (MSG)

1.  교사 생활을 할 때 부모님들 상담을 해 보면 왜 자기의 자녀가 엇나가는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친구 잘 못 만났다. 그런데 꼭 친구 탓만은 아닙니다. 친구를 잘못 만났을 수도 있고, 또한 잘못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인데 자기가 거기에 휘둘렸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두 가지의 요건들이 충족되어 아이가 잘못 되는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악에 노출되어 있고, 누구나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럴 때 잘못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호시탐탐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갖은 전략을 다 동원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에 비해 그 전략이라는 것이 창조적이지도 않고 단순하고 몇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하나님에 대해 불평을 하게 한다거나 뭐 그런 것이지요.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이 사단의 특징이니까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몰아갈 때 우리를 통치하는 세력이 마귀가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능히 자신의 나라를 꾸밀 계획을 가지시고 실행하실 권리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꽃들로 나무들로 채울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마 이 세상 가운데 있는 사람들 하나 하나를 살펴 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풍성하게 채울 사람들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생각만 해도 풍성함이 가득한 구절인 것 같습니다. 더이상 죄악이 없으며 죄악으로 인한 아픔들이 없고 눈물이 없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아름답게 채워질 그 모습...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놀랍게 확장되며 궁극적으로 주님의 그 나라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풍성함이 늘 넘치길 기대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가 가득한 그런 사람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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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39-4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증거를 찾고 있으나 엉뚱한 증거를 찾고 있다. 너희는 너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고, 기적에 대한 너희의 욕망을 채워 줄 무언가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가 얻게 될 유일한 증거는, 증거처럼 여겨지지 않는 요나의 증거뿐이다.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처럼, 인자도 사흘 밤낮을 깊은 무덤 속에서 지낼 것이다. 심판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증거를 내놓을 것이다. 요나가 설교할 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고쳤기 때문이다. 요나보다 더 큰 설교자가 여기 있는데도, 너희는 증거를 따지고 있다. 심판날에, 시바 여왕이 앞에 나와서 이 세대를 정죄할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여왕이 지혜로운 솔로몬의 말을 들으려고 먼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큰 지혜가 바로 너희 앞에 있는데도, 너희는 증거 운운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MSG)

 기독인들과 만나다보면 그의 삶 속에 영향력을 줬던 유명한 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분은 참 훌륭하셔. 그 분의 말, 그분의 글, 얼마나 내 삶을 바꿨는지 몰라. 이러면서 그 분을 칭찬하기에 너도 나도 동참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그분 그냥 말만 듣고도 믿음이 갑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는 까칠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 하셨다라고 하면 우리 모두는 정말 그러냐? 증거를 대라.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신기하죠? 왜 사람의 말은 그토록 아무 비판없이 훌륭하다 싶으면 그냥 받아들이는데, 하나님 말씀에 대해선 그토록 의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 심판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니느웨 사람으로 볼 때는 듣보잡인 요나가 나타나서 회개하라 하나님 심판이 임한다라고 했으니, 절대 안 믿어도 상관없습니다. 증거를 내 놓으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회개하라는 말에 사람들이 찔려서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지 않도록 자신을 겸비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요나의 말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반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람들이 전혀 반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증거를 내 놓아라고 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신 모습도 여러번 보여주셨지만 요나는 그냥 말 한마디에 니느웨 사람들이 믿었지만, 예수님은 또 다른 기적을 보여 달라고 사람들이 요청하며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N Jesus Nam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 윌로우크릭의 한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자신은 교회가 지시하는 사항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가슴 아프다.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따라갑니까?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모순된 행동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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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6:1-5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께 바르려고 향료를 샀다. 일요일 이른 새벽 해뜰 무렵에, 그들은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에서 돌을 굴려줄까?"하고 서로 걱정하며 말했다. 그들이 문득 고개를 드니 돌- 아주 큰 돌이었다.-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한 청년이 흰옷 차림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몹시 당황하여 놀랐다.(MSG)


1. 부활의 소식
 인생을 살다보면 무덤과 같은 현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무덤을 닫고 있었던 돌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을 열어야 나는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데, 닫혀져 있다고 느껴지는 현실 가운데 마음이 답답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아픈 현실 속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방황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삶 가운데 해결해 줄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직도 없다라고 하면서 한숨 짓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미 무덤에서 돌문이 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길은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달려갈 방향성과 구원의 문은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아직도 방황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 오십시오. 그 문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직접 달려갈 자세가 요구됩니다. 아직도 열려져 있지 않다고 닫혀진 문만 생각하며 방황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그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경험하셔야 할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들이 하나 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그 삶의 모습을 볼 때, 우리가 그 분의 행적을 따라갈 때 그 분이 우리 삶 가운데 믿고 따라야 할 분인가를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달려갈 길을 방황했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했던 사도 바울도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문이, 인생의 목적의 문이 이미 열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 문이 닫혀져 있고 문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 문이 열려져 있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증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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