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하다보면 부딪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설교에 대한 부분입니다.
무엇이 성경적인 설교입니까?
성경 말씀을 많이 인용하면 성경적인 설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경적이지 않은 설교일까요?
보통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내용에 대해서 성경 구절이 많이 인용되지 않을 때 자기 생각을 나열하는 제대로 된 설교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많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에 많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깊게 생각을 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보통 그 시점에 자신이 말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그 과정은 본인만 압니다.-결론적인 이야기를 꺼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그 현재의 시점의 말만 듣기 때문에 오해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게 된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들려지는 말만 듣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이란 것은 또는 글이란 것은 그것이 들려지거나 쓰여졌을 그 당시까지 이르는 과정과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 그런 말을 한 의도, 그런 글을 쓴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결국 철수와 영희가 결혼해서 잘 살았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이 뭐야라고 누군가가 물을 때, 철수와 영희가 결혼해서 잘 살았어라는 게 결론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의미없는 답변도 없을 것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결혼해서 잘 살았다. 그런 text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과정, 철수와 영희가 정말로 어려운 난관 속에서, 어찌보면 우리보다 더 힘든 과정 속에서 이렇게 이렇게 극복하여 결국은 결혼까지 이르게 되고 잘 살게 되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지은이가 그런 글을 쓴 이유까지 생각해 본다면 의미는 더더욱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지은이는 왜 그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요?
지은이는 아마 현실 가운데 사랑이라는 것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고, 독자 또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겁니다. 즉, 철수와 영희가 난관을 극복하고 결혼했다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 자체에 의도된 것이 더 큰 의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자체의 text가 있다면, 그 text가 쓰여진 의도를 찾아야 합니다. 왜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는가? 왜 이 부분에서 이 구절이 들어가게 되었는가? 왜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시는가?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서 어떻게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까?

항상 말과 글에는 숨겨진 과정과 의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을 위한 숨겨진 변화를 위한 메세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찾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신학자들이 계시라고 일컫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성경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무엇을 가르치길 원하시는가?를 찾는 과정이지요.
어떻게 보면 설교라는 것도 바로 text 자체가 있으면 그 과정과 그 과정과 결론에 이르는 연결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이라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성경 구절 많이 늘어 놓는 것이 성경적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도와 그 과정 결론에 이르는 종합적인 것들을 다루는 것이 성경적이겠습니까?
성경 구절을 많이 늘어 놓지는 않아도 모든 일련의 과정이 하나님의 의도를 찾는다면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을까요?
성경 구절이 아무리 많이 인용되었더라도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이 성경적일까요?

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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