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그 후에 예수께서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곳에는 마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에 대비하셨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극에 달했고,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 그 점을 이용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 돌들한테 말해서 빵 덩이가 되게 해보아라."
4 예수께서 신명기를 인용해 답하셨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5-6 두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앉혀 놓고 말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내려 보아라."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해 예수를 몰아세웠다. "그분께서 천사들을 시켜 너를 보호하게 하셨다. 천사들이 너를 받아서 발가락 하나 돌에 채이지 않게 할 것이다."
7 예수께서 신명기의 다른 구절을 인용해 응수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8-9 세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대한 산 정상으로 데려갔다. 마귀는 선심이라도 쓰듯, 지상의 모든 나라와 대단한 영광을 두루 가리켜 보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전부 네 것이다. 무릎 꿇고 내게 경배하기만 하면 다 네 것이다."
10 예수께서 딱 잘라 거절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세 번째로 신명기를 인용해 쐐기를 박으셨다. "주 너의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여라. 일편단심으로 그분을 섬겨라."
11 시험은 끝나고 마귀는 떠났다. 대신에 천사들이 와서 예수의 시중을 들었다. (MSG)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번지수를 잘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높은 뜻 교회의 김동호 목사님이 사경회에서 설교한 내용 중의 하나인데, 성경아 남편들아 이러해라 라고 이런 구절이 있으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그 말씀 가지고 봐라 이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답니다. 똑같이 성경아 아내들아 이러해라라는 구절이 있으면 꼭 남편들이 아내보고 성경에 이러해라라고 주장한답니다. 이건 번지수를 못찾은 거라는 것이죠.
 아내들아, 라고 했으면 아내가 읽으면서 자기에게 적용하라고 있는거지, 남편들이 아내보고 이렇게 하라라는 말로 훈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꼭 나에게 다가오는 구절이 있으면, 이 구절은 어떤 누가 읽어야 하고 감동받아야 하는 구절인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지요.
 어떤 분과 새벽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부르짖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후에 저와 논쟁이 붙었습니다. 저는 조용하게 묵상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는 성경에 어디 기도를 조용히 하는 것이 있느냐? 기도는 부르짖어 하는 것이다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씀적 근거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고난이 많아 차마 입술로는 부르짖지 못하고 꺼이 꺼이 하면서 입이 안 떨어지고 마음속에 깊이 부르짖음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숱하게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라는 구절은 또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말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골방에서 기도하라라는 말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도 바울이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한 점은 무엇입니까? 또한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성경 구절은 무엇입니까? 디모데가 기도 방법은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은 또한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숱하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으라는 표현들은 무엇입니까? 부르짖는 기도도 좋고 조용히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기도도 좋고 방언으로 하는 기도도 좋고, 일어서서 공격적으로 하는 기도도 좋고, 사단을 대적하며 큰 소리로 선포하는 기도도 좋습니다. ^^;;;
 (참조 : 항상 말씀 논쟁은 본문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만 인용하여서 생깁니다. 올바른 말씀 인용은 문맥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 햇으면 왜 부르짖으라고 했는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으면 왜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는가? 등등이죠. 이걸 생각하는 게 올바른 말씀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적혀 있다라고 말하는 식의 말씀 인용은 사실 본질을 잃게 됩니다. 제가 근거로 들은 말씀 구절도 올바른 인용이 아닌 것을 밝혀 둡니다. 그분의 똑같은 논리 구조로 반박했을 뿐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

 결국 신앙에서 우리 각자는 은혜 받았던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가장 잘 아셔서 특별하게 이용하셨던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은총을 베풀어주셔서 자기에게 그 방법으로 은혜를 주셨으면 다른 사람도 그런 방식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또한 주장하는 것은 신앙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찬양의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전도단에서 하는 방식의 찬양 집회에서, 어떤 사람은 두란노에서 하는 방식의 찬양 집회에서,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서 북치고 성령께서 춤추게 하는 방식으로 찬양을 할 때 하나님을 깊게 만나게 되었다면 그것이 하나의 통로가 된 것이지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할 때도 자기가 은혜 받은 구절만 보는 것은 참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런 구조가 특히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는데 사단이 시험했던 방법이 바로 "너는" 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돌을 빵으로 만들어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 내려 보아라, 세상은 전부 네 것이니 내게 경배해라. 사단은 자꾸 너는 이런 존재이다. 너는 높은 존재이다. 너는 세상의 왕이 될 존재이다.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화법을 보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라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모든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느냐를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맞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능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셔도 천사가 받들만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돌을 빵 덩이가 되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의 범위,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스스로 침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모든 생각의 관점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끄시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를 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 나 자신을 높이고 인간을 높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하나님이 누리게 하신 것들을 넘어서게 만듭니다. 선악과의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꾸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를 떠나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상의 것을 창조한 것인양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사단도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시편 91편을 인용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천사들이 너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이 자기 맘에 드는 구절이라 취사선택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들어야 하고 그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책을 넘겨보다가 내 맘에 쏙 드는 말씀만 취사선택하거나, 이건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하면서 내 자신의 욕구에 따른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말씀을 취한다면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나 자신의 욕심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가득채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씀을 읽다가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먼저 하나님 혹시 무엇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역자이다 보니 의욕에 앞서서 제가 의도한 것을 말씀이라는 도구로 말하는 죄를 범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 나에게 하신 것이면 나에게만 적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전하라고 하시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번지수를 잘 찾아가는 신앙, 주어진 범위와 한계 내에서 하나님의 주권만이 드러나게 하는 신앙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2009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혹시 나의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은 뒤에 계시고 나 자신만이 빛났던 적은 없었습니까? 나 자신만을 높이게 하는 사단의 전략에 말려 버렸던 적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의 예수님처럼 하나님만이 드러나시게 하며, 모든 삶의 근원이 하나님만이 되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십자가 뒤로 감추시고 하나님만이 찬양 받으시는 분이 될 수 있도록 2010년을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가오는 2010년 한 해,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 되셔서 우리를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가르치시고 자라게 하시길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깊은 묵상이 있는 하루, 감사가 있는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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