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화제를 주었고 감동을 주었던 영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는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고통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느끼라는 취지의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정말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신앙의 회복등 긍정적인 측면을 주었지만, 난 다른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 또한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영화의 목적이나 시간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예수의 고난 측면에 초점을 맞추게 된 부분인데, 그럼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측면을 소홀히 하였다.
사실,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 및 세상에서의 태어남과 사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부터 부활까지 이르는 것이며 결국은 영광스러운 부활 생명, 영생에 대한 부분으로 하이라이트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부분을 다루는 데는 미약했다.
즉, 우리에게 눈물을 짜내기는 했지만 웃음은 거둬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SBS(School of Biblical Studies)에서 공부할 때, 4복음서에 대해서 성경을 그대로 읽어가며 영화가 전개되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 따라서 다양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참 유머와 웃음이 넘치고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다가갓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었던 복음서의 영화였다.(어떤 복음서에 대한 비디오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SBS direacror도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였다.
달라스 윌라드 이야기를 어쩌다 많이 하게 되는데, 그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웃음에 대해 이런 말을 적어 놓았다.
 
"(초략) 웃음은 진정한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웃음이 건강에 그토록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웃음은 구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피조 세계에서 구속보다 더 큰 부조화는 없기 때문이다. 구속이 이를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126:1-2)"
그리고 예수에 대해 말하기를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세간에 굳어진 예수의 이미지는 그분이 재미있고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분임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한다. 복음서 도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분께 보인 반응을 보면 그 이미지가 완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분은 당대 지도자들이 인기를 시기하여 죽일 만큼(마27:18) 매력 있는 사람이요 강력한 연사였다. 그분은 유머의 대가이셨고, 여느 훌륭한 연사와 다를 바 없이 듣는 이들이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머를 즐겨 사용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파티의 손님 목록에 그분을 올릴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예수를 지식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만큼 함께 지내기 즐거운 명랑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복있는 사람 펴냄, 324p.]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또한 많은 믿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사명감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아마도 많은 환경의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을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성만찬 예식을 할 때 분위기는 교회사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즐거움 속에서 성만찬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부활에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생명, 그리그 그 풍성함, 천국의 기쁨등이 그 안에 넘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그 즐거움이 그들의 얼굴속에 가능한가? 또한 나의 얼굴속에 가득한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다는 말이 이웃 사랑과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제자화 하고 변화시킨다는 것과 대치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의 부조리나 이웃에 대한 소외 현상등을 고치려고 하는 어떤 기독인들의 모습에는 그 문제에 대한 무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그 영역들을 제자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기쁨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넘쳐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잔혹사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우울하다. 어둡다. 무엇인가 그들을 얽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신 것이 그토록 원하셨던 우리를 향한 생명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어도 아마 우리들을 향해서는 이 세상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기쁨과 평안을 원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불균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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