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우스꽝스럽고 당혹스럽게 여겨지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큐티를 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약간의 위험성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말씀 묵상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말씀 묵상의 방법이 우리에게 은연중의 위험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예배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은혜를 만들어내지 말고 하나님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예배 인도자로 섬겼습니다.
정말 중요한 예배는
회중들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불붙는 떨기 나무에서 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예배의 분위기나 감정 적인 것에만 자신을 맡겨 은혜 받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입니다.

말씀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묵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말씀 묵상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취해서 적용점을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큐티를 보통 하게 될 때
우리는 말씀을 여러번 읽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묵상한다음
하루에 적용할 점을 찾습니다.

여러분의 상황 가운데 맞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취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하려고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말씀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다면
그 말씀 묵상은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여러분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의 삶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태여 적용점을 만들지 않아도
길을 가는 도중에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살아서 여러분을 이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창세기 1장을 공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는 것을 공부하고 묵상했습니다.
저는 어떤 적용점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 인간을 향한 존엄성의 부여를 느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지하철 역을 내려가는데
때가 꼬질꼬질한 노숙자 분을 보았습니다.
그 때 저는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를 그분에게 주었는데
그때 이런 말씀이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분이다.'
그 노숙자 분이 인사할 때, 저는 더 허리를 숙여 그 분을 존경하며 인사하였습니다.

말씀이 사역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적용점을 찾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적용점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은혜를 억지로 자아내려는 묵상은 바른 묵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마치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알지 못해도
길을 가듯이
우리의 삶을 말씀이 스스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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