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이 서로 하나가 되고 사랑하라 하셔서 그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연합 운동을 많이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야 할 점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 되느냐는 것이다. 억지로 하나 되려고 하다보니 문제가 많이 생긴다. 사상이 틀리고 생각들도 틀린데 억지로 하나 되는 운동을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결국 하나 되지 않고 하나되려는 운동이 오히려 하나됨을 방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2. 주님께서는 하나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됨은 이렇게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7:23절에 보면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하나가 되려면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모든 기독인들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계신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가 계신 것처럼 위장하는 신앙인도 존재한다.

3. 그리스도가 어떻게 계시는가?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계시게 된다. 신기하게도 서로 만나본 일도 없는 사람이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되는 경우들을 우리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라고 하시고 연락하라고 하셔서 서로 연락할 때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됨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억지로 하나되려는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랐던 사람이 전혀 다른 곳에서 신앙 생활 했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것이다.

4. 뭐든지 억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자기 의만 내세우고 자기 자랑만 내세우고 자기 뜻대로 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께 집중할 때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 그럴 때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1.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 왔다. 그리고 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보면 이런 여자는 돌로치라 명하였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할꺼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다가 글씨를 쓰신 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다.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라는 말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다 떠나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는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2.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사실이 있다. 죄 지은 사람이 당당하게 니가 뭔데 나를 정죄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다. 잘못을 범하고도, 죄를 짓고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니가 뭔데 나를 정죄하냐? 너도 그렇지 않느냐?라는 논리를 펴면서 이 구절을 당당하게 이용한다. 간음한 여인이 니가 뭔데 나를 정죄해? 이러면서 당당하게 나온다면 올바른 태도인가?
 성경을 제발 자기 입맛에 맞도록 자신을 옹호할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행동중의 하나이다.

3. 주님은 간음한 여인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주님이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성경 본문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둘이 있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이신 그 분이 죄를 사하겠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바로 그 분이 직접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겠다라는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셨을까? 풀리지 않을 논쟁이 있는 구절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생각하시면서 하나님, 내가 이 여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테니 이 여자를 살려주십시요. 라는 마음을 담아서 땅에다가 글씨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4. 주님은 이 땅에다가 글씨를 쓰신다. 죽어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다가 살리기 위한 글씨를 쓰시는 것이다. 내가 대가를 치룰 테니 이제 생명 가운데 나아오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고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주의 영이 이끌리는 대로 가는 풍성한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 밭에다가 어떤 글씨를 새길까? 너는 이제 내 소유된 사람이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고, 나로 인해서 구원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라. 영원히 나와 교제하는 그 생명의 충만함으로 가득하여라는 글씨를 쓰시지 않으실까?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직접 모세의 돌판에 글씨를 쓰셨듯이, 지금은 우리의 마음 밭에 하나님 사랑의 글씨를 쓰신다.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그 사랑의 글씨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함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들 환경 탓, 자신의 능력 탓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생명력이 없고 자유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자유함이 없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31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으므로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느냐라고 반문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8:34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죄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자유로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저의 상황의 문제 때문에 제가 매인 것 같고 자유함이 없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죄가 해결되면 영혼이 놓임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자유가 있어서 우리의 육신이 비록 상황 가운데 어려움에 처해도 영은 날로 새롭고 하나님의 자유가 우리 가운데 찾아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6절에 보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여러분,
죄의 문제를 해결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유가 찾아옵니다.
상황을 해결한다고 자유가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억압과 얽매임은 죄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죄 사함을 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수의 강을 흘려보내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내 삶에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앉으셔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해 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요.
그 순간 그토록 해결되지 않았던 나의 자유함 없음이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