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우리라는 용어를 굉장히 좋아하고 그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묶고 행동하는 것을 은연중에 강요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안에서도 이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 우리 교단, 우리 신학 등등...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우리라는 범주로 예수를 묶으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시다시피 선민 사상이 강합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범주로 묶길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론 한국 문화와 많이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이다,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선지자이다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에 예수 그리스도를 갖다 놓고 자기와 같이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마16:14)
이것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열심당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앞에 나아오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가 "우리"라는 범주에 묶일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우리라는 범주를 깨뜨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범주를 깨뜨리셨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때, 예수님께서는 그 고백을 바른 고백으로 인정하십니다.
또한, 사람들에게도 우리라는 개념보다 하나님안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가르칩니다.
간단히 나타내면
우리 -> 하나님 안에
 로 가는 것입니다.

비단 예수님뿐만 아니라, 바울시대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너는 무슨파냐? 바울파냐? 아볼로파냐? 그리스도파냐? 이렇게 묻는 일들이 생겨났었습니다. (고전 12:12)
그렇지만 바울도 또한 이야기 하기를 하나님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것들을 묶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선교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이 큰 일을 해야 한다. 중국 크리스쳔들이 선교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자 같은일들, 우리교회가 큰 일을 해야 한다, 우리 교단이 한국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우리 신대원이 최고다 등등과 같은 것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참 위험한 일들입니다.
물론, 바라기는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라는 틀을 깨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 한 형제, 자매, 한 가족들로 묶일 때 우리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라는 틀에 묶어 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우리라는 범주에 묶인 사람들만 사용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들, 우리의 생각을 벗어난 그 이상의 한정될 수 없는 것들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시고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할렐루야.


'성경적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하신 나의 주  (0) 2007.03.23
나그네 인생의 정신  (0) 2007.03.11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0) 2007.03.10
알몸으로 도망간 청년  (0) 2007.03.09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  (0) 2007.03.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