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더린쿨만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성령의 권능이라는 책의 한 부분을 적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이 경험을 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 경험에 관해, 성령님께서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다스리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령세례의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경험 뒤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당신의 의지를 완전히 다스리고 있지 않다면 그 경험은 얕고 일과성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다지 영적으로 깊지 않은 사람들이 강력한 영적 집회에서 강하게 사로잡혀 버린 나머지 열광적인 동작으로 끌려 들어가지만, 그들 자신의 성격에는 어떤 변화도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울 시대에 미스바에서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계시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다윗을 잡으려 하여 사울을 따르던 사람들은 선지자들을 뒤흔들었던 동일한 엑스터시의 영에 사로잡혔습니다.
 강력한 영적 기도 집회에 참석하고 있고, 어떤 놀라운 경험을 체험하면서도 깊고 영속적인 축복을 여전히 놓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속적인 축복이 오는 경우는 성령께서 우리의 깊은 곳까지 이르도록 오직 성령께 허락될 때 뿐이며, 이 때 우리 삶의 근본이 변화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경험이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mind)와 뜻(will)을 절대적으로 성령의 다스림 아래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매우 실제적으로 필요로 하는 가르침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단순히 어떤 감정적인 체험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잡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체험에 대해서입니다. 당신이 마음뿐만 아니라, 당신의 의지도 하나님의 뜻에 진정으로 항복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의 영적 경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깊고 사나운 파도가 밀려올 때도, 어두운 밤 하늘에 별이 하나도 없을 때도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들과 시험이 찾아 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안전합니다. 눈물이 당신의 눈 앞을 가리고,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진정한 토대는 의지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사역에서 많은 해를 보낸 후,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 아래 두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줄곧 보아왔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되고, 성령 세례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을 물어 보겠습니다.
 "당신의 의지(뜻)는 오늘 성령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해도, 나는 당신에게 그다지 높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해도, 나는 당신에게 그다지 높은 점수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다스리도록 양도해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치해 주십니다.
 성령이 사람 위에 임하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그 사람의 생활에서 최고의 권력자가 될 때, 그 사람의 삶은 전생애를 통하여 이 경험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이미 삶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지 않게 되고, 성령께서 그 삶을 통치하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힘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뜻(의지)은 옆으로 비켜나고, 하나님의 뜻(의지)에 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사람은 이렇게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나의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의 뜻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205-207p.)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못받았는지 그걸 누가 알겠느냐 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치심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추상적인 신앙은 항상 발전을 저해합니다. 성경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신앙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구체적이이시며 실제적으로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대부분 이론에만 그치는 신앙으로 만족하고 거기에 머물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인쳐주신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도장을 찍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데 그것에 대한 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오늘은 성령 충만한 집회에 가 보니 구원받은 거 같고, 내일은 일상의 삶 가운데 무너지니 구원받지 못한 거 같고. 이런 생활이 반복됩니다.
흔히, 많은 신앙의 선배라는 사람들은 그냥 믿어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구원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믿으라고. 그러나, 안 믿겨지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말로만 믿는다고 그게 믿어집니까? 저는 그런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안 믿겨지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성령 받은 것에 대해서도 믿으라고 합니다. 말로만 믿는다 믿는다를 반복한다고 해서 믿어집니까?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은 선포함으로써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또 시간이 지나면 의심이 들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의심의 구름이 벗어지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가운데 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이 확증 도장을 찍어주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구원받았는지 의심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너가 구원받은 거 확실하다. 맞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분께 직접 들을 때 그동안 그토록 해결되지 않았던 믿음의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고 어떤 의심도 들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성령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세례는 성령 충만이라는 표현과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으로 내 영이 충만해져서 거기서 하나님의 권능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사역을 위해선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사역이 바리새적인 사역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적인 사역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성령충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흘러나올 때 바로 은혜의 의한 사역, 내가 중심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직접 너 가운데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주었다라고 인쳐주실 때 의심없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의 인치심을 우리는 들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임재와 관련이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속에 깊게 들어갈 때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주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전부가 되시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때, 성령의 인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성경의 표현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규명하는데, 그 사람들이 성령의 인치심을 경험해 본 일이 없으니 그것을 추상적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에 대해서 기록한 책 중 학자의 이론으로만 그저 적어 놓은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읽으면서 이 분은 목사님이시긴 하지만, 성령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구나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에 비해 손기철 장로님 같은 분은 참 성령님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성령님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고 성경이 성령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어떤 것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캐더린 쿨만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령의 권능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위에 적은 내용에 대한 부분이 있어 그대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진 어휘로는 우리가 경험한 것을 묘사할 만한 말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성령께서 그 사건(transaction)위에 인치셨을 때, 그분의 영(성령)은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과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되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태어난 것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너무나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180p.


우리는 양자의 영이신 성령을 받았으며,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치심을 받은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있는 자이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들에게 뭔가 장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치심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 때문이고, 성령께서 친히 그것을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치심을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감정이 아닙니다. 당신이 잘못된 환상 아래서 수고하지 않도록 그것을 확실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어떤 감정이 아닙니다. 믿는 자 안에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받아들여 졌음을 증거하고 계시는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191p.)

정죄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내적인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옆에서 당신에게 정죄감이 없다, 너의 상처를 하나님이 치유하길 원하신다라고 해도 믿고는 싶고 감사는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처리되진 않습니다. 완전히 신뢰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깊은 임재 가운데 그분이 선언하시는 것을 듣게 되면 일순간에 모든 속박과 얽매임과 의심의 구름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이 선언하시는 것을 들으십시요. 그런 인치심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주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속으로는 믿지 못하며 겉으로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러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그 분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께 내 삶을 다 맡기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때를 가르쳐 주시고 그 때 구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느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안에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구해봐라.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구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가 제 안에 바로 임했습니다. 그걸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가 그 이후에 그냥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 이후에 저는 믿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 뒤에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구하라고 하시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주시며 그것을 그 때 바로 구하면 즉시로 이루어지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손기철 장로님의 책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분도 똑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한 성령님이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만을 구하는 것이며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를 가르쳐 주실 때 크로노스의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며 믿음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하는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안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믿음을 연습시키십니다. 즉, 하나님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신뢰하는 법을 연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어떻게 생기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순종했을 때 그 분과 동행했을 때 차츰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여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런 동행의 삶이 지속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구하라는 신호를 주십니다. 구했을 때 바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부터 연습하여 믿음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그리고 듣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신뢰가 쌓이게 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되고, 담대함으로 자녀의 권세로 주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뜻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알므로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하심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십시요. 그럴 때 믿음이 자라고 그럴 때 그분이 내 삶 가운데 가르치시고 공급하시는 때를 알게 되며 성령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될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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