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3-15
학자들이 떠난 뒤에, 하나님의 천사가 다시 요셉의 꿈에 나타나 지시했다. "일어나거라.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따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거기 있어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한다. 요셉은 순종했다. 그는 일어나, 밤을 틈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떠났다. 동틀 무렵에 마을을 벗어나 제법 멀리까지 가 있었다.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서 살았다.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아간 이 일은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고 한 호세아의 설교를 성취한 것이다. (MSG)

2009년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하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루 하루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풍성한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자녀로 성장시키기 위해 그분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강력하게 몰아가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그 분의 뜻을 따를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우리의 반응을 지켜보실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우리 가운데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하나님이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의 뜻을 따를지 안 따를지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넘어서 이것이 정말 필요하다 싶으면 하나님의 강력한 강권으로 인도하시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자유의지 문제 가지고 많은 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우리를 향한 정말 좋은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자유의지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어떤 경우에는 자녀의 자유 의지를 꺾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부분들을 내가 계획해 놓았는데 너 한 번 해 볼래? 이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주셨어도 그분의 뜻대로 어떤 부분을 강력하게 인도하신다 하더라도 자녀를 존중하지 않으신 걸로 단정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결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십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성취의 기쁨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 진우와 장을 보게 될 때 제 아들은 장바구니를 자기가 들기를 원합니다. 힘이 없어서 사실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짝 도와주면서 아들이 장바구니를 든 것처럼 들어봐 이렇게 말하면서 들어올릴 때 아이는 참 기뻐합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도 참 좋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요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보면 호세아의 말씀을 성취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두가지가 어찌보면 상충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 두가지가 절대 상충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도 주셨고, 하나님의 계획과 강권하심도 있었고 두 가지가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렇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들을 우리의 의지로 묵묵히 이루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2009년 한 해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맡겨주신 것들을 우리가 순종하면서 이루어나간 것도 있었을 것이며, 나의 배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래도 은혜로 주님이 우리를 성장시켜 주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해 성장시켜 주신 부분에 대해 감사하는 하루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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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방주를 짓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여 구원의 방주를 짓습니다. 하나님은 방주가 구원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세상이 멸망될 것을 말하며 거대한 방주를 짓는 동안,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 같으냐? 보이지도 않는 실체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하루 이틀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의 비아냥은 그칠 줄 모릅니다. 그러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계속해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구원의 방주를 짓습니다.
노아는 믿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방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방주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며 방주 속으로 다가갑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방주로 오라고 초청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처럼 우리들을 취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노아들은 여전히 묵묵히 전진합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 방주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 하루를 삽니다. 그 시간이 길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에 그 길을 따라갑니다.
누가 증명하라고 하면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는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분의 음성은 명확하며 그분의 생명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이 분명하기에 그 분명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가장 명확한 것은 나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길을 따를 수록 더 분명해 진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은 증명하라고 말하지만 증명할 필요가 없이 그에게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 분명함이 없었다면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여 저는 방주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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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8
헤롯은 동방의 학자들을 은밀히 따로 만났다. 그는 자기도 그들처럼 열성인 척하면서, 탄생을 알니는 별이 나타난 정확한 때를 자세히 캐물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베들레헴에 관한 에언을 일러 주면서 말했다.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아기를 찾으시오. 찾거든 곧바로 나한테 알리시오. 나도 즉시 가서 경배하리다."  <MSG>


제가 사용하는 노트북이 고장나서 고치느라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흔히 우리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멋진 성경의 사람들이 우리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야,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요셉과 같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의 모습은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고 오늘 본문처럼 헤롯의 모습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헤롯은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 공동체의 통치자였습니다. 사실 유대 공동체라는 곳에 헤롯이 들어와 거기서 리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천대받던 민족의 출신으로 지도자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억지로라도 존경받고 싶어서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온갖 행동을 다 합니다.
 저는 헤롯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기에는 신앙이 좋아 보이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전혀 따르지 않고 제 욕심대로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따른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따르지 않고 우리의 욕심만을 따라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자기한테 알려달라고 경배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아기를 제거하려고 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헤롯은 그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는 세상에서는 화려한 통치자였고, 정말 호화스러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지만- 호화스러운 종교 생활을 했지만- 결국, 그는 예수님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영화에 눈 먼 자로 기억되고 말았습니다.

2009년 한 해를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의 진정한 마음 속에는 누가 자리잡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진정한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멋진 신앙 고백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삶 속의 주인은 나이며, 추구하는 가치관은 나의 개인적인 욕망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그 분께 경배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그분이 그토록 주시고자 하셨던 영원한 생명의 삶과 거리가 먼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09년 한 해 진정으로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님이셨습니까? 그렇지 않으셨다면,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노동 가요의 한 구절을 패러디했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같이 살고 싶다. 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Posted by HolyNFire sunki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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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10-12
주께서 아하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아하스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MSG)

남유다의 아하스왕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앗수르를 끌어들여 그들의 힘을 얻으면 전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먼저 부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징조를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하스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얼핏 보면 참 겸손한 표현일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고생시키기 싫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런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하스의 태도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겉보기에는 아하스가 겸손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께 맡기는 어떤 태도도 없으며 인생의 주인이 아하스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떤 일이 다가왔을 때 먼저 기도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다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그제서야 기도라는 형식적인 것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급한 문제일 때 그렇습니다. 먼저 이곳 저곳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 없나 전화부터 합니다. 안절부절 못합니다. 이런 위급 상황일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내려 놓고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먼저 내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결정해 놓고 그 다음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드립니까?

하루를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 저 오늘 하루의 삶을 주님께 맡깁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데, 우선 순위를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도와 주십시요.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제 삶의 인도자이시며 주님은 나의 기업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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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8-9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친구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존경할 만한 것과 믿을 만한 것과 바람직한 것과 품위 있는 것을 마음에 품고 묵상하십시오. 최악이 아니라 최선을,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저주할 만한 일이 아니라 칭찬할 만한 일을 생각하십시오. 내게서 배운 것과, 여러분이 듣고 보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협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가장 탁월한 조화 속으로 여러분을 끌어들이실 것입니다.(MSG)


만나면 우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사에 말하는 것이 부정적인 말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사회에는 얼마나 악이 가득한지, 교회에도 이런 저런 문제가 많다. 이런 이야기만 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언급도 좋은 역할을 하지만, 그래서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건설적인 이야기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상을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발견하고 그것만 묵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자기 연민이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겸손해 보이나 교만한 것입니다. 복음이란 자기 연민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현재는 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점들이 많지만 그래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하실 것들을 기대하며 '하나님 나를 다루어주십시오. 그렇다고 제가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깨달았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이 부분에서 훈련시켜서 더 나은 그릇으로 만드시길 원하시는 그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하며 올바른 나를 회복시켜 가겠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좋다고 생각되는 일도 하나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존경할 만한 것과 믿을 만한 것과 바람직한 것과 품위 있는 것, 최선과 아름다운 것, 칭찬할 만한 일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보기에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점들만 묵상하면 어찌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점 한 가지씩은 있고 배울 만한 점들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안 좋은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점들을 가르치시고 배우게 하시는 것들을 더욱더 묵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한 점들을 실천할 때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는 현장 속에서 나와 정말 다른 사람들과도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의 세력을 분별하는, 영적으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묵상하는 것이 마귀라는 것의 아이러니함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어딜 가나 악한 영이 보이니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분열의 영을 쫓아내야 돼, 미움의 영을 쫓아 내야 해 이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를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작 그 은사를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생각하고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인데, 은사 자체만 묵상하거나 은사가 사용될 것만 생각하다가 하루 종일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에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온전히 자리잡도록 성육신하신 그 분이 내 몸과 영혼 깊숙히 자리 잡도록 기도하고, 그분의 아름다움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자리잡도록 도와 주는 사람들이 됩시다.
또한 우리가 아름다운 일들을 묵상하고, 배운 것들을 실천할 때 수많은 사람 가운데 관계속에서 탁월한 조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협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가장 탁월한 조화 속으로 여러분을 끌어들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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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6-7
마음을 졸이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대신 기도하십시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한 감각, 곧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믿음이 생겨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삶의 중심에서 염려를 쫓아내실 때 일어나는 일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MSG)


 제자훈련의 여러 사역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역을 꼽으라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The Father's Heart) 사역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은 가부장적이고 완고한 모습을 지닐 때가 많이 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에 투영 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거나, 어떤 일을 안하면 바로 채찍질하고 뭐라 그러는 하나님으로 비추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로지, 자녀의 잘됨을 위해 무한한 사랑과 애정으로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잘못된 아버지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 자녀들이 진짜 아빠로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고 모든 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며 깊은 교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로이드 맥클랑의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이라는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과연 어떤 분이실까 생각한다. 그분은 자신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명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고 알려 주고 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나는 딸에게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나타내고 계신지 살펴보자.
 유대인 중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축복받도록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런 사소한 일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어린아이들을 자신에게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팔로 안아 주시고 그들과 대화하셨다. 그분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셨고 그들의 놀이에도 관심을 보이셨다. 그분은 아이들이 코를 흘리고 무릎에 앉아서 옷을 더럽히는 것에도 개의치 않으셨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신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위한 시간도 갖게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분은 우리 인생의 보잘것 없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동일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영접하신다.
(플로이드 맥클랑 지음,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예수전도단)

 염려 대신 기도로 바꾸어서 하나님을 깊게 묵상할 때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영혼 깊숙히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바라보며 친밀하고 깊고 애정 가득한 대화이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아버지를 완고한 아버지로 무서운 아버지로 바라보는 기도는 율법적인 기도에 그칠 따름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하기 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진짜 마음이 어떠신가? 나를 향한 마음이 어떠신가? 그것이 충분히 이해되어질 때 그리고 나서 속 마음을 아뢰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마음을 느낄 때 하나님의 사랑을 통과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깊게 신뢰하며 따뜻함으로 연합된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삶의 중심에서 염려를 쫓아내실 때 일어나는 일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자리잡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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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2009. 12. 16. 09:28

빌립보서 4:2-3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면합니다. 견해차를 해소하고 화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나와 멍에를 같이한 동역자에게 부탁합니다. 그대가 그들과 함게 있으니, 그들이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나, 그리고 다른 노련한 사람들과 협력하여 메시지를 전하려고 힘쓴 이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의 이름 또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MSG)

 언젠가 한 선교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아마 경제문제, 가족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동료 선교사와의 관계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경제 문제,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 더 관계라는 것이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 속성상 관계로 연합되어 있으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게 된 문제도 관계문제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사실 때도 사람들과의 문제는 관계문제였습니다. relationship이지요. relationship with God 또는 relationship with 누구, 이런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계가 얽혀있다면 풀어야 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빌립보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 두 여인은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 전체에게 하는 바울의 권면과 이 두 여인에 대해서 하는 권면의 이야기가 구별됩니다. 물론 딱 구별하여서 이것은 전체에게 이것은 두 여인에게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읽다보면 어감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빌립보서 2:1-4절을 보면 특히 두 여인을 생각하며 바울이 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무엇을 얻었거나, 그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삶에 얼마간의 변화가 일어났거나, 성령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거나, 여러분에게 따뜻한 마음이나 배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내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뜻을 같이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속 깊은 벗이 되십시오. 자신의 방식을 앞세우지 말고,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방식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자기를 제쳐 두고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우십시오. 자기 이익을 꾀하는 일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자신을 잊을 정도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십시오. (MSG)

 이 두 여인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많은 열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유익이 되려는 생각에 지나친 경쟁의식을 서로가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방식을 앞세우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돕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신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도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과 그들을 위해 돕는 역할을 담당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안되지만 이것이 십자가 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자신이 밑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는 십자가의 나무 위로 사람들은 세상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그 나무를 밟으면서 하나님께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peace maker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떠오른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당신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 

 날씨가 춥지만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따뜻한 품이 느껴지는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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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7-21 절 중에서 (MSG)
친구 여러분, 내 뒤를 잘 따라오십시오. 같은 목표를 향해 우리와 같은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기 바깥에는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다른 목표를 택하면서, 여러분을 그 길로 끌어들이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시 경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편한 길만 바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편한 길을 막다른 길일 뿐입니다. 편한 길을 걷는 자들은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습니다. 트림이 그들의 찬양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먹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 전념을 해야 하고 그런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잘 예측하여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은 미래의 결과 예측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후자의 사람들은 한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현재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생활의 원리가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발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절제를 하게 됩니다. 가수 지망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기획사에서의 그 혹독한 시간들을 견디고 어려운 환경들 속에 꿈을 꾸며 시간들을 가치있게 사용합니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기에 먹는 것들을 절제하게 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주님이 주실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6일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고 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생활의 원리입니다. 땀을 흘리고 그 결과를 먹는 삶을 주님은 태초부터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생각하기에 노력을 하고 절제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다스릴 사람이고 충만한 기쁨 가운데 누릴 사람들입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주님은 우리에게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십자가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만 생각하면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는 삶이 주는 유익일 생각하면 오히려 십자가의 삶에 대해 자발적인 헌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영광과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그분을 만날 날이 멀지 않기에, 그 기쁨이 얼마나 충만할지를 알기에 이 세상의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을 붙드는 사람, 참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사람, 그들의 눈물을 씻기시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해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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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의 삶은 그리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그가 부르심을 받고 달려가면서 받은 온갖 고난의 삶을 비교한다면 오히려 고난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받았던 행복함,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 예수를 만나고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했던 공동체가 그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 삶 가운데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환경이 변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변하고 자신의 마음 가짐이 변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현실은 여전히 똑같이 어렵습니다.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바로 행복했던 경험을 잊지 못하고 계속 과거를 그리워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처음 예수 만났던 곳, 그 공동체 거기가 참 좋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의 발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고난이 닥쳐오니 광야의 생활이 행복한 것을 모르고 이집트 노예 생활을 그리워 합니다. 또한 그토록 바라던 가나안 땅을 들어갔을 때, 젖과 꿀이 흐를 줄 알았더니, 자그마한 땅이며 주변에 적이 계속 남아 있어 괴롭힘을 당하고, 산지에 있는 무시무시한 적들을 또 정복해야 할 때 그들을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좋았던 기억만을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현재 여기서 베풀어 두신 사명을 기억하지 못해서 항상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앞을 향해 전진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도 사람들이 폭풍같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사역의 정점에 이르게 될 때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는 것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앞에 펼쳐질 상황이 고난이고 십자가 지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믿고 같이 동역하던 사람들과의 교제도 좋았지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 나아갈 때 나중에 세상을 떠날 때가 될 때 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등지게 되었을 때도 그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서 과거로 돌아가고 그 추억만을 그리워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 소망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심을 향해 나아갔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과감히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오늘도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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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25-27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의 좋은 벗이며 동역자인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내려고 합니다. 전에 여러분이 그를 보내어 나를 돕게 했으니, 이제는 내가 그를 보내어 여러분을 돕게 하겠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돌아가기를 몹시도 사모했습니다. 여러분도 들었겠지만, 그는 병이 나은 뒤로 더욱 여러분에게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병이 다 나았으니 여러분을 안심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죽을 뻔했으나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마터면 그의 죽음이 그 무엇보다도 큰 슬픔이 될 뻔했습니다. (MSG)


 사람은 욕심이 많아 지기 쉽습니다. 사역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의 하나는 눈을 자기 교회 말고 다른 곳에 돌리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기 교회 성도들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은혜가 넘치고 영향력이 커지다 보면 다른 곳에 자꾸 눈을 돌리며 자기 교회 보다도 다른 어떤 집회 강사가 되길 원하는 마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딱히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순종해야겠지요. 그러나 허탄한 명예에 대중적인 인기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교회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교회의 규모를 보면 초라할 수도 있고, 또는 자기가 생각보다 대접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다른 규모 있는 곳에 눈을 돌리는 리더들도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 빌립보 교회는 이런 면에서 많은 도전을 줍니다. 그들에게 에바브로디도가 얼마나 필요했던 사람입니까? 그러나, 바울의 사역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어 돕게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역으로 인해 건강도 많이 해쳤지만, 바울과 같이 있는 동안 한번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토록 소원했습니다. 혹시 자기가 아픈 소식이 들려진 것이 성도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자나깨나 성도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바울을 따라다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당시의 대단한 리더쉽의 위치에 있던 바울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사역을 돕는 것이 오히려 큰 명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도 그러하고 빌립보 성도들도 그러하고, 에바브로디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공과 이기적인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가 있는 곳에 사람을 파송하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사역하면서도 빌립보 교회를 늘상 걱정하고 교회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듯이 우리 모두는 자기가 섬기고 있는 교회, 가장 작은 그 곳을 최우선 순위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가 자기가 섬기고 있는 교회, 자기 교회 옆의 바로 지역사회부터 최선을 다해 돌본다면 한국 사회와 온 세계는 변화될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의 작은 겨자씨와 같은 것이, 작은 일에 충성한 것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 말입니다.
 
서로 그리운 사람들이 되는 것,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그러한 곳이 되는 곳.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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