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2-3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면합니다. 견해차를 해소하고 화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나와 멍에를 같이한 동역자에게 부탁합니다. 그대가 그들과 함게 있으니, 그들이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나, 그리고 다른 노련한 사람들과 협력하여 메시지를 전하려고 힘쓴 이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의 이름 또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MSG)

 언젠가 한 선교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아마 경제문제, 가족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동료 선교사와의 관계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경제 문제,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 더 관계라는 것이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 속성상 관계로 연합되어 있으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게 된 문제도 관계문제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사실 때도 사람들과의 문제는 관계문제였습니다. relationship이지요. relationship with God 또는 relationship with 누구, 이런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계가 얽혀있다면 풀어야 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빌립보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 두 여인은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 전체에게 하는 바울의 권면과 이 두 여인에 대해서 하는 권면의 이야기가 구별됩니다. 물론 딱 구별하여서 이것은 전체에게 이것은 두 여인에게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읽다보면 어감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빌립보서 2:1-4절을 보면 특히 두 여인을 생각하며 바울이 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무엇을 얻었거나, 그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삶에 얼마간의 변화가 일어났거나, 성령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거나, 여러분에게 따뜻한 마음이나 배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내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뜻을 같이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속 깊은 벗이 되십시오. 자신의 방식을 앞세우지 말고,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방식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자기를 제쳐 두고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우십시오. 자기 이익을 꾀하는 일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자신을 잊을 정도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십시오. (MSG)

 이 두 여인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많은 열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유익이 되려는 생각에 지나친 경쟁의식을 서로가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방식을 앞세우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돕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신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도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과 그들을 위해 돕는 역할을 담당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안되지만 이것이 십자가 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자신이 밑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는 십자가의 나무 위로 사람들은 세상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그 나무를 밟으면서 하나님께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peace maker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떠오른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당신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 

 날씨가 춥지만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따뜻한 품이 느껴지는 날 되시길 바랍니다.
빌립보서 3:17-21 절 중에서 (MSG)
친구 여러분, 내 뒤를 잘 따라오십시오. 같은 목표를 향해 우리와 같은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기 바깥에는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다른 목표를 택하면서, 여러분을 그 길로 끌어들이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시 경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편한 길만 바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편한 길을 막다른 길일 뿐입니다. 편한 길을 걷는 자들은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습니다. 트림이 그들의 찬양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먹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 전념을 해야 하고 그런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잘 예측하여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은 미래의 결과 예측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후자의 사람들은 한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현재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생활의 원리가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발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절제를 하게 됩니다. 가수 지망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기획사에서의 그 혹독한 시간들을 견디고 어려운 환경들 속에 꿈을 꾸며 시간들을 가치있게 사용합니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기에 먹는 것들을 절제하게 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주님이 주실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6일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고 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생활의 원리입니다. 땀을 흘리고 그 결과를 먹는 삶을 주님은 태초부터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생각하기에 노력을 하고 절제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다스릴 사람이고 충만한 기쁨 가운데 누릴 사람들입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주님은 우리에게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십자가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만 생각하면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는 삶이 주는 유익일 생각하면 오히려 십자가의 삶에 대해 자발적인 헌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영광과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그분을 만날 날이 멀지 않기에, 그 기쁨이 얼마나 충만할지를 알기에 이 세상의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을 붙드는 사람, 참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사람, 그들의 눈물을 씻기시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해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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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의 삶은 그리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그가 부르심을 받고 달려가면서 받은 온갖 고난의 삶을 비교한다면 오히려 고난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받았던 행복함,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 예수를 만나고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했던 공동체가 그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 삶 가운데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환경이 변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변하고 자신의 마음 가짐이 변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현실은 여전히 똑같이 어렵습니다.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바로 행복했던 경험을 잊지 못하고 계속 과거를 그리워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처음 예수 만났던 곳, 그 공동체 거기가 참 좋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의 발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고난이 닥쳐오니 광야의 생활이 행복한 것을 모르고 이집트 노예 생활을 그리워 합니다. 또한 그토록 바라던 가나안 땅을 들어갔을 때, 젖과 꿀이 흐를 줄 알았더니, 자그마한 땅이며 주변에 적이 계속 남아 있어 괴롭힘을 당하고, 산지에 있는 무시무시한 적들을 또 정복해야 할 때 그들을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좋았던 기억만을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현재 여기서 베풀어 두신 사명을 기억하지 못해서 항상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앞을 향해 전진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도 사람들이 폭풍같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사역의 정점에 이르게 될 때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는 것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앞에 펼쳐질 상황이 고난이고 십자가 지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믿고 같이 동역하던 사람들과의 교제도 좋았지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 나아갈 때 나중에 세상을 떠날 때가 될 때 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등지게 되었을 때도 그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서 과거로 돌아가고 그 추억만을 그리워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 소망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심을 향해 나아갔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과감히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오늘도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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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25-27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의 좋은 벗이며 동역자인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내려고 합니다. 전에 여러분이 그를 보내어 나를 돕게 했으니, 이제는 내가 그를 보내어 여러분을 돕게 하겠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돌아가기를 몹시도 사모했습니다. 여러분도 들었겠지만, 그는 병이 나은 뒤로 더욱 여러분에게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병이 다 나았으니 여러분을 안심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죽을 뻔했으나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마터면 그의 죽음이 그 무엇보다도 큰 슬픔이 될 뻔했습니다. (MSG)


 사람은 욕심이 많아 지기 쉽습니다. 사역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의 하나는 눈을 자기 교회 말고 다른 곳에 돌리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기 교회 성도들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은혜가 넘치고 영향력이 커지다 보면 다른 곳에 자꾸 눈을 돌리며 자기 교회 보다도 다른 어떤 집회 강사가 되길 원하는 마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딱히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순종해야겠지요. 그러나 허탄한 명예에 대중적인 인기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교회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교회의 규모를 보면 초라할 수도 있고, 또는 자기가 생각보다 대접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다른 규모 있는 곳에 눈을 돌리는 리더들도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 빌립보 교회는 이런 면에서 많은 도전을 줍니다. 그들에게 에바브로디도가 얼마나 필요했던 사람입니까? 그러나, 바울의 사역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어 돕게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역으로 인해 건강도 많이 해쳤지만, 바울과 같이 있는 동안 한번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토록 소원했습니다. 혹시 자기가 아픈 소식이 들려진 것이 성도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자나깨나 성도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바울을 따라다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당시의 대단한 리더쉽의 위치에 있던 바울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사역을 돕는 것이 오히려 큰 명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도 그러하고 빌립보 성도들도 그러하고, 에바브로디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공과 이기적인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가 있는 곳에 사람을 파송하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사역하면서도 빌립보 교회를 늘상 걱정하고 교회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듯이 우리 모두는 자기가 섬기고 있는 교회, 가장 작은 그 곳을 최우선 순위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가 자기가 섬기고 있는 교회, 자기 교회 옆의 바로 지역사회부터 최선을 다해 돌본다면 한국 사회와 온 세계는 변화될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의 작은 겨자씨와 같은 것이, 작은 일에 충성한 것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 말입니다.
 
서로 그리운 사람들이 되는 것,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그러한 곳이 되는 곳.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빌립보서 2:19-24
나는 (예수의 계획을 따라) 조만간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내어, 할 수 있는 한 여러분의 소식을 모아서 돌아오게 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면 내 마음은 실로 큰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내게는 디모데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충직하고, 여러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디모데는 진국입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그는 내게 충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내게 있을 일을 알게 되는 대로, 그를 보내려고 합니다. 나도 곧 그의 뒤를 따라가게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MSG)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이 있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학교나 가정이나 일터에서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예수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는 교인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비중으로 치자면 후자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내가 있는 공동체만의 문제는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그런 사람 투성이었음을 우리는 빌립보서를 통해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의 주변에도, 바울에게 몰려 들었던 사람들 대부분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발견합니다. 디모데는 예수의 일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디모데와 같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디모데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두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곳곳에서 보게 되는 것은 참 기쁨이며, 이들과 교제하는 것이 너무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생기게 될까요?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 사랑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외적인 조건이 뛰어나지 않고 성경 말씀도 많이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며 알아가며 더욱더 제 안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꼭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를 배우더라도 말씀 앞에서 그대로 따라가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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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1-2
나 바울은, 우리의 산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도입니다. 나는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선물이 그대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MSG)

디모데 전서를 시작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도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라고 말하고 있으며 수신자인 디모데에게도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라고 말합니다.
결국 바울의 머릿속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디모데도 그리스도 때문에 동일하게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빌레몬서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서에서 오네시모라는 빌레몬의 종이 나옵니다.
그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났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물론이요, 세상적으로 봐도 아무런 유익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을 만나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차츰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편지안에 오네시모라는 무익하던 종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하나님 계획 안에 있게 되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를 향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뛰어 들어 하나님과 더불어 나가던 사람이 아닌, 사단의 계획 아래로 자신을 맡겨 파멸로 가던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없던 자들입니다. 무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유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고 생명을 가지는 사람들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실 일들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비젼을 주십니다.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리더가 되는 첫 걸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3절의 내용과 같이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하시는 일에 뛰어들었다. 바로 그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자기 힘으로 바로 서려고 애쓰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 세워 주실 것을 신뢰했다." (MSG)

사단의 계획을 따르던 것을 벗어나 돌이켜(이것이 회개이죠)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획 아래로 뛰어드는 것(이걸 중생이라고 하죠 새로 태어남입니다. 다시 태어남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받았고, 디모데도 마찬가지로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바울과 연결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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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의 리더들과 리더쉽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리더쉽과 관련되어 좋은 책도 많이 있습니다. 좋은 교재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책만 보게 되는 것이지 성경 자체를 많이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리더쉽을 배울 수 있는 성경의 각 책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입니다.
여기 저기서 짜집기해서 리더쉽을 공부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의 각 권에서 나타내고 있는 주제를 그 권 통째로 보면서 배우는 것은 많은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쉽에 대해서 배울 때 성경의 인물을 통해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딤전후, 디도서 같은 경우는 아예 주제를 리더쉽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듣고 배우는데 참 유용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들을 하나씩 나눠 보려고 합니다.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의 커다란 한 가지는 인생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 현재의 자신이 될 때까지 인생의 깊이가 가벼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들이 너무나도 말씀을 가지고 인생을 쉽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심심풀이 땅콩마냥 자기 맘대로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 너무도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인생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까?

제발 인생을 쉽게 이야기하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그분께서 이야기하시는 것만 이야기하며 성도들을 향한 끝없는 참음과 사랑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설교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대원을 졸업하는 이 때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뭘 안다고 그렇게 쉽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말씀을 이야기했던 모습들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저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도자가 되려고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묵묵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대로 삶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기대함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게 그토록 구속처럼 느껴져서 싫었던 제가 이제 조금씩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내 삶 가운데 다루실 것들을 기대하며 나를 맡겨 드리는 삶,
그리고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며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말고
오직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 하시도록 하며, 그 인생의 무게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
그것이 오히려 참 자유를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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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성경을 통독하고 이번에는 정독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메시지 성경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 놀라운 계획들이 얼마나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YWAM SBS에서 공부하면서 또는 신대원에서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겨우 겨우 알아냈던 그 말씀을 이해함이 메시지 성경을 통해 놀랍게도 정확하며 쉽고 문맥을 따라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솔직히, 사역자인 저로서는 그만큼 할 역할이 줄어든 것이죠.
성경을 읽으면서 얻었던 통찰들이 메시지 성경을 통해 놀랍게 전개되어 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사역자 없이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 뜻을 알고 자발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자라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임을 생각해 볼 때 메시지 성경은 참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자라게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계획 아래 사역자는 도구가 될 뿐이지요.
저는 성경도 가장 쉽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역자 없이도 성경을 읽고 누구나 구원의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메시지 성경 자체가 주는 의미는 너무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사이트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메시지 성경을 통독 및 정독하시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고백하며 결단하시는 분들 되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우리 가운데 명확하게 계시하셔서 사랑으로 더욱더 깊어지는 사람들 되길 기도합니다.

메시지 신약 상세보기
유진 피터슨 지음 | 복있는사람 펴냄
『메시지 신약』은 유진 피터슨이 저술한 것이다. 평생을 원어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학자이자 목회자로 살아온 저자의 모든 것이 녹아든 평생의 결실이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읽는 성경이다. 한...
선악과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 조차 없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의도적으로라도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살겠죠.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중요한 것은 선악과를 만드신 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고 세상의 주관자이므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 그 분에게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선악과 자체만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를 사단은 이용하여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 자체가 줄 수 있는 이익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도 선악과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 7:8-12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 기억 못하십니까? 나는 너무도 잘 기억합니다. 율법 조문은 처음 시작할 때는 대단히 멋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어떻게 되었던가요? 그 명령을 죄가 왜곡하여 유혹이 되게 만들었고, 그래서 결국 "금지된 열매"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율법 조문이 나를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유혹하는 일에 사용되어 버린 것입니다. 율법 조문이라는 장신구가 붙어 있지 않았을 때는 죄가 그저 따분하고 생기 없어 보였을 뿐, 나는 그것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율법 조문을 가져다가 장신구로 삼고 자신을 꾸미자, 나는 그것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나를 생명으로 안내해야 할 그 명령이, 도리어 나를 넘어뜨리는 일, 나를 곤두박질 치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죄는 생기가 넘치게 되었으나 나는 완전히 생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율법 조문 자체는 하나님께서 상식으로 여기시는 것으로서, 각 명령은 모두 건전하고 거룩한 권고입니다.

율법도 하는 역할이 율법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쪽으로 인도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선악과를 이용하여 선악과 자체만 집중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썼던 것처럼, 율법도 똑같이 사단이 그 의미를 왜곡하여 사람을 거기에 얽매이는 역할로 잘못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율법이 진정으로 지시하고자 했던 것, 선악과가 진정으로 지시하고자 했던 것, 바로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 분과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즉, 선악과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도구였으며, 선악과를 볼 때마다 선악과 이외의 그 넓은 에덴 동산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구나라고 하나님 사랑에 빠져드는 그 아름다운 관계의 도구였습니다. 율법도 원래는 그런 역할을 담당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재하시면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 자체만 바라보고 맞네 틀리네 너무 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역시 선악과 자체만 보는 것이고 율법 자체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바라보지 못하며 눈이 어두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로 만드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모든 율법이 이루어지게 되고 모든 목표가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뛰어넘는 아니, 율법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내 삶을 아름답게 빚어가실 것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율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은혜가 시작됩니다. 비로서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온갖 서류를 다 구비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면, 인격적 신뢰가 들어설 여지는 아예 사라지고 약속은 냉혹한 계약으로 바뀌고 맙니다.! (롬 4:13-15 중, 메시지 성경)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서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계약서 없이 그분을 믿고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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