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25-34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들꽃의 겉모습에도 그토록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일로 안달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도 안다. 너희는 하나님의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뭔가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매일의 삶에 필요한 것은 모두 채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온전히 집중하여라. 내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로 동요하지 마라.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막상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 (MSG)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여유없이 삽니다. 먹고 살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걱정하느라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 사역을 하다보면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제가 이러한데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쓸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열심히 살되, 하루 하루의 순간마다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과 그분의 생각에 집중할 때 우리는 풍성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하루 되세용^^
마 6:16-18
하나님께 더 집중하려고 식욕을 절제하는 훈련을 할 때에는 요란하게 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조금은 유명해질지 모르나,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는 없다. 너희가 내면의 훈련에 들어가려거든, 겉으로는 평소처럼 행동하여라. 머리를 감아 단정하게 빗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여라. 관심을 끌려는 수법은 하나님께는 필요 없다. 그분은 너희가 하고 있는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두둑이 보상해 주신다. (MSG)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훈련하면 별로 안 좋은 생각이 듭니다. 때때로 기도하기 싫을 때도 많이 있으며 이럴 때는 한탄만 하다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려는 훈련을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 훈련의 진정성은 바로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과 나만의 골방의 시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외적인 조건을 잘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복장을 입고 일상의 생활 방식에서 생활하며 그 안에 하나님께로만 집중하면 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무릎 꿇어 기도하던, 편한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던 그 방법들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도 장소도 산책을 하면서 기도하던, 교회에 앉아서 기도하던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때로는 너무 외형적인 격식을 차리느라 정작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내면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도 잠시 하나님께 집중하는 그 시간들이 오히려 새벽기도의 시간보다 좋을 때가 많습니다. 커피 한잔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잠시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음짓는 시간도 저에게는 바꿀 수 없는 시간입니다. 남들은 모르지요, 제가 왜 웃고 있는지요!!! 그러나, 그 시간은 저에게는 참 의미있는 시간이며, 하나님과 저만 아는 친밀한 시간인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우리가 치장하는 것은 결코 구별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남에게 보이는 조건하에선 꾸미고 치장하고 거룩한 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와 하나님과의 일상의 삶 속에서 순간 순간 속에서의 내면의 교류는 그 교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별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일상의 작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면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내면의 방향성이 순간 순간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 거룩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남들이 모르는 그 시간들을 이용하여, 내면의 방향성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미소짓는 하루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축복합니다.
마 6:5-13절의 내용 중
또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연극을 하지 마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다 스타가 되기를 꿈구며 기도할 때마다 쇼를 일삼는다. 하나님께서 극장 객석에 앉아 계시다는 말이냐? 너희는 이렇게 하여라.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라.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라. 그러면 초점이 너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분의 은혜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른바 기도의 용사들이 가득하나, 그들은 기도를 모른다. 그들은 공식과 프로그램과 비결을 잔뜩 가지고서, 너희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얻어 내는 방법들을 퍼뜨리고 있다. 그 허튼소리에 속지 마라. 너희가 상대하는 분은 너희 아버지이시며, 그분은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희보다 더 잘 아신다. 이토록 너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저 단순하게 기도하면 된다. (MSG)

 기도를 할 때 눈치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는지 저 사람이 보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과도하게 기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느라 마음이 분산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바로 초점이 우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분의 생각과 뜻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기 위한 주술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획하신 것들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등을 듣는 시간이며 그리고 우리의 결단을 주님께 아뢰고 세상 가운데 또한 나아가는 것입니다.

 로렌 커닝햄이 저에게 적어 주었던 구절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33절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니까 더 이상 너희 생각대로 하려는 것들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너희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라는 내용이 마태복음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은 우리의 눈의 초점이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흐르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듣기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음성에 경청한다면 참된 기도가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개개인이 가장 깊게 만나는 사랑 속의 연합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다른 사람 신경쓰느라 온갖 화려한 말로 위장하는 것은 별로이겠지요. 커피숍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테이블에 연인이 앉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경청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느라 정작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않고 위장되고 포장된 다른 행동을 한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그닥 아름다운 관계, 진실된 관계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만의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이 평생 연습이 되고 훈련이 된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그 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위터를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촌철살인의 글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짧은 문장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만들 수 있다면 뭐든 글쓰기는 일관적으로 진행됩니다.
아마, 전병욱 목사님이 가장 잘 표현하는 분 중의 한 분이시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는자는 복이 있다. 이런 문장은 안 좋은 문장이죠.
더 구체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추상적인 문장을 사용할 수록 설교는 추상적이고 폭이 굉장히 넓어집니다.
따라서 주제를 정말 구체적이고 짧은 문장에 담아 그것만 계속 강조하면 일관성과
주제 각인에 큰 효과를 줍니다.

문희곤 목사님의 책 제목 같은 것은 좋은 제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니다.>
짧은 문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책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은사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주제로 통일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깔끔한 것이죠.

지금 제 책 꽂이에 있는 책 제목들 중에서도 좋은 책 제목을 보면
<당신의 생각, 바꿔야 바뀐다.>(좋은 제목이고 긴 글을 쓸 수 있죠. 당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한정시키지 않았으니 어떤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분류가 나올 수 있고 결국은 바꿔야 한다로 귀결되니 논점이 분명하죠.)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홍성건 목사님의 책인데, 하나님이 보내시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나쁜 제목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설교하라.> (이것도 분명하죠.)
<복음에 미치다.> (이것도 나쁜 제목은 아닙니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참 좋은 제목이죠.)

그렇다면 안 좋은 제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종 (흠... 너무 넓습니다.)
성령님과 당신 (이것도 별로죠^^)

뭐 하여간 구체적인 문장 속에 짧게 주제를 담을 수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제 트위터에 쓴 내용 중에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집중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다.
하루 동안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루동안 죽은 것이다.

이런 문장은 괜찮죠? 물론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장을 만들어서 설교 주제로 설정해 놓고 설교를 쓴다면
쓸데 없이 길어져서 논점을 흐리거나, 추상적으로 비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결국 주제문을 얼마나 잘 만드냐에 따라 좋은 설교문은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위터로 연습해 보세요.
하루의 삶 동안 느낀 것들
묵상한 것들 짧은 문장으로 구체적으로 탁 느낌이 오게끔.
성경 말씀도 긴 것을 짧은 나만의 문장으로 탁 만들면
좋은 설교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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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도우슨의 중보 기도 원칙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1. 하나님 찬양과 감사
2. 회개
3. 내 생각 내려 놓기
4.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시도록 초청
5. 사단의 권세 차단
6. 잠잠히 기다리기.

뭐 이런 단계입니다. 번역한데에 따라서, 3,4,5번 같은 경우 순서를 바꾸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세 가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음성 또는 내 음성, 사단의 음성입니다.
그러니 음성듣기에 있어 성령께서만 말씀하시도록 성령의 임재를 구하고 내 음성과 사단의 음성을 차단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간단하죠?

잠잠히 기다릴 때 우리 안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이죠.
때로는 주님이 우리의 상태를 지적하실 수도 있고, 누구를 위해 어떤 영역을 위해 기도할 것을 떠올리게도 하실 수도 있으며, 어떤 일을 행할 것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을 위해서 마인드맵이 사용될 때 훨씬 효과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그림을 가장 큰 주제로 하여
구체적인 것들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리더들이 공동체를 운영할 때나 어떤 모임을 인도할 때
방향성을 미리 가지고 가는데 유용하겠죠!!!

또는 하루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하는데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적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잘 생각해 보시고 적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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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4
"너희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것이 연극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여라. 그것이 멋진 연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은 박수를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너희 자신이 주목받지 않도록 하여라. 분명 너희도 내가 '연극배우'라고 부르는 이들의 행동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도회며 큰 길을 무대로 알고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긍휼을 베풀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한다. 물론 그들은 박수를 받지만, 그것이 전부다. 너희는 남을 도울 때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소리내지 말고 은밀히 도와주어라. 사랑으로 너희를 잉태하신 너희 하나님도 무대 뒤에서 일하시고, 너희를 은밀히 도와주신다."
(MSG)


어떤 사람들을 돕거나 봉사를 할 때 대상만 보여서 사랑 때문에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돕던지 봉사함에 있어서 내가 이것을 함으로 나에게 어떤 유익과 평판이 돌아올까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하며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사랑으로 너희를 잉태하신 너희 하나님도 무대 뒤에서 일하시고, 너희를 은밀히 도와주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저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없는 자격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묵묵히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긍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어 남들의 평판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드러나는 봉사의 자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리가 있습니다. 저는 교회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 부서가 어려운 경우에 그곳에서 묵묵히 섬기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헌신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하면 그냥 사랑을 쏟아 놓아야 할 대상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처음 먹은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돕기를 원했다면 그냥 바로 그 사람을 도우십시요. 조금만 주저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또 갈등이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시간이 더 지나서 나중에 하면 좋지 않을까? 이 액수가 내가 생각하기에 좀 큰 것 같은데... 등등 말입니다.

저는 갈등이 생길 때는 처음 떠오른 생각대로 보통 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따라오는 생각은 사람들의 시선들, 나의 사정들 때문에 주저하면서 떠오른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기도하면서 드는 생각들이 성경의 진리에 맞다면 거의 그것을 따릅니다. 나중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 상황을 고려하면서 한 생각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주저함 없이 우리를 향해 조건없이 품으셨듯이 우리도 사랑을 하나님 아버지 따라 그 방법대로 실천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이티에 많은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지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실천하십시요!!!
마 5:38-42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옛말이 또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절대로 되받아치지 마라. 누가 너를 치거든, 그 자리에 서서 맞아라. 누가 너를 법정으로 끌고 가서 네 셔츠를 달라고 소송하거든, 네 가장 좋은 외투까지 잘 포장해 선물로 주어라. 그리고 누가 너를 억울하게 이용하거든,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아라. 똑같이 갚아 주는 것은 이제 그만하여라. 너그럽게 살아라.(MSG)


 가끔 합리적이고 올바르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저는 흥분할 때가 많습니다. 속으로 똑같이 갚아 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온갖 머리를 굴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겠지 생각하며 혼자 웃음지을 때도 많습니다. 전략가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주님은 누가 너를 억울하게 이용하거든,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아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똑같이 갚아주지 말고 너그럽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접할 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나의 욕구와 나의 자아는 이 말씀과 다른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도 이 말씀을 접할 때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나를 억울하게 대접했던 사람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 자녀를 비참하게 두지 않으십니다. 말씀대로 결단했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오히려 놀랍게 들어올리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ywam colorado springs base에서 저희 부부는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습니다. 태국 전도여행을 갔었는데,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했고 전도여행 준비에 시간이 부족해서 우리 부부는 소외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맡겨진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인도 전도여행에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시아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미국학생들이 별 활약을 못했고 저희 부부가 많은 부분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dts가 다 끝나고 미국 베이스로 돌아와서 많은 스텝들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디렉터가 저희 부부들을 높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학생들을 본 일이 없다고. 여러분들은 이들에게 배우고 이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냥 묵묵히 그 길을 따르면 정해진 때에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나 자신의 생각들을 내려 놓고 순종할 때 주님의 높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마 5:33-37
그리고 마음에 없는 말은 아예 하지 마라. 이 권고는 우리 전통에 깊숙이 박혀 있다. '기도해 주겠다'고 말하고는 기도하지 않거나, 마음에도 없으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고 하며 경건한 말로 연막을 치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종교적 장식을 멋지게 단다고 해서 너희 말이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너희 말을 거룩하게 할수록 그 말의 진실성은 떨어진다. 그러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라고만 하여라.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말을 조작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빠진다. (MSG)

 가끔씩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진실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된 것입니다.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면 기도해 주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은 경우도 여러번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진실되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기도하기로 했으면 기도해 주는 것이 책임있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같으나, 이런 작은 것 하나 하나에 충성을 다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욱더 기름부으실 것입니다.

마 5:31-32
성경에 누구든지 아내와 이혼하는 자는 아내에게 이혼 서류와 법적 권리를 주고 합법적으로 하라고 한 말을 기억하느냐? 너희 중에는 이 규정을 자신의 이기심과 변덕스러운 마음을 포장하는 구실로 이용하거나, 합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옳은 척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제발 가식은 그만두어라. 아내와 이혼하면, 너희는 아내를 간음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아내가 문란한 성생활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상 말이다.) 또 그렇게 이혼한 여인과 결혼하면, 너희도 자동으로 간음하는 자가 된다. 법을 구실삼아 도덕적 타락을 미화할 수 없다.
(MSG)


 말씀은 안다는 사람 중에 위험한 사람이 바로 ~~하는 척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혼을 하길 원했습니다. 아마,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겠죠. 그러나 정당한 구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구절이 있는데 그걸 미끼삼아 이혼을 하고 당당하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며 마음의 자신감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꿰뚤어보고 계신것이죠. 결국 자기의 이기심과 변덕스러운 마음을 포장하기 위한 구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예수님은 강력하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말씀 자체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 할 때도 그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그냥 품어 주면 될 것을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느라 말씀을 근거로 상대를 공격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 뿐만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데, 자신을 방어하느라,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느라 성경의 어떤 구절을 구실삼아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은 어떤 경우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만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는 과연 어떤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마음이 떳떳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담대한 기도가 될 것이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0년 한 해는 보이기 위한 신앙,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묵묵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의 행동과 마음의 묵상이 일치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은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부터 변화되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내면 세계의 하나님을 향함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아멘.
마 5:13-16
너희가 여기 있는 이유를 말해 주겠다. 너희는 소금을 쳐서 이 땅에 하나님 맛을 드러내라고 여기 있는 것이다. 너희가 짠맛을 잃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경건의 맛을 알게
있느냐? 너희가 쓸모 없어지면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너희는 빛이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빛깔을 드러내라고 여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감추어 둘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훤히 드러낼 것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만큼 훤히 드러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등불을 들고 있게 한다면, 설마 너희는 내가 너희를 통속에 숨겨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단 위에 둘 것이다. 내가 너희를 언덕 위에, 등불 놓는 단 위에 두었으니 빛을 비추어라! 너희에게 오는 손님을 기쁘게 맞아들여라. 후하게 베풀며 살아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면, 그들도 너희에게 자극을 받아 하나님께, 하늘에 계신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MSG)

 한 예언하시는 분이 예언을 하실 때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이 하나님이 당신 안에 이런 성품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 갈 때 삶 속에서 그것들을 실천할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표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은사를 주셨습니다. 재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런 것들을 밖으로 표현하고 섬기는 데 사용하지 않고 내적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매일 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는 하지만, 삶에서 어떤 영향력도 없고 오히려 안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전혀 따르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못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자신을 드려 삶으로 풀어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안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등불을 들고 있게 한다면, 설마 너희는 내가 너희를 통속에 숨겨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단 위에 둘 것이다. 내가 너희를 언덕 위에, 등불 놓는 단 위에 두었으니 빛을 비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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