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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의 9달...
짧지 않았었고, 힘들었던 것도 있었고,
물론, 좋은 일들은 훨씬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배 드리고, 강의 하고, 점심 먹고 work duty 하고
선풍기 밖에 없는 찜통의 방안에서 또 공부하고, 저녁먹고
또 공부하고 숙제하고, 시험 준비하고, 밤 12시 넘어서 자고...

정말 평생에 귀중한 시간들이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01
소식이 뜸해서 궁금하셨죠?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경순이가 미국 세일럼에서 안부전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변덕으로 사계절 옷을 번갈아가며 입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디계시든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거의 7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4월초에 세일럼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개월 동안 여행 가방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디 한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YWAM(예수전도단)에서 수십 년을 여행 가방을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음 행로를 놓고 신중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9월 이곳을 떠날 때 세일럼에서의 시간이 이것으로 마감했는지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많이 황당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굴복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세일럼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 돌아와 거의 두 달 동안 막노동을 했습니다. 커다란 베이스가 왜 이렇게 원망스럽게 느껴지던 지요. 손님들이 오고간 방을 수십 번 청소하고 더러운 화장실 변기를 박박 문지르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 함께 훈련받던 친구들이 이젠 리더십으로 올라가 회의하고 있을 때, 저는 베이스 한 구석에 처박혀 먼지를 털고 있는 모습이 참 처량해 보였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중앙아시아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의 상황이 더욱 힘들게만 느껴졌습니다. 밤마다 욱신거리는 등을 주무르면서 불평을 털어놓기가 일쑤였습니다. ‘주님! 저를 이곳에 화장실 청소하라고 보내셨나요?’


정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란 참 힘든 것 여러분도 공감하시죠? 기도하면 할수록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모델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이 떠오르면서도, 제 육체의(flesh) 연약함으로 자꾸 비교하고 질투하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모습에 어쩔 수 없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고, 선교라고 인식되지 않는 분야(부엌, 손님대접, 회계, 캠퍼스관리 등등)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섬김에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이런 분야에서 섬기는 분들을 하찮게(정직하게 고백하면) 여겼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학교를 운영하는 것 못지않게, 부엌에서 일하고 화장! 실을 청소하는 것도 주님보시기에는 중요하다는 것을 큰 값을 치르면서 몸소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승진(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을 해서 회계(Accounting)와 전화안내(reception)를 하고 있습니다. 후원자로부터 베이스로 들어오는 돈을 정리하고 입금하며, 또 베이스에 들어오는 모든 전화를 받고 베이스 내로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부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베이스가 하루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한편, 두 달 전쯤 유학생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는 분들이 한국음식을 만들어주지 않겠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대량의 잡채를 만들면서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대부분 아시아)을 만났는데 이들이야말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몇 주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였고, 또 방학을 맞이하여 월요일에 있는 친목 운동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국 학생들을 초대하면서 한국음식을 해먹자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하는 말 ‘누님! 소주는 제가 댑니다.’순간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좀 당황스러웠지만 기대가됩니다. 이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또 기? 만?따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요즘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에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곳 YWAM 세일럼 베이스도 새로운 시절이 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리더십의 교체로 겪었던 진통의 과도기를 잘 넘기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서 베이스를 향해 새롭게 주신 비전을 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다음에 자세하게 소개할 것을 기대하며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왜 돌아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며 기도할 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눅 5:38)’의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주님께서 이곳에 새로운 일을 하시고 계신데, 제게 새로운 마음과 태도로 이곳으로 돌아오기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 넘게 이곳과 인연을 맺으며 일하면서 어느 정도 타성에 젖어버린 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베이스와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회개해야 할 부분을 말씀하셨을 땐 정말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더군요. 저를 겸손케 하시려고 막노동의 시간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모든 것에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고민과 연단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나누어야 할지 몰라 소식을 자주 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떤 분께서 힘든 시간도 함께 나누어야 기도해주지 않겠느냐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던데, 굴속을 지날 때 잠잠해지는 것이 습성이 되어버린 터라 나누기가 힘들었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여러분들의 격려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주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P.S. 사진첨부

사진1 - 화장실을 예쁘게 가꿀 때 (오랜만에 붓글씨도 써보고..한자가 맞나?)

사진2 - 잡채를 만들던 날 (대부분 맛있다고 잘 먹었는데, 아이들은 당면이 지렁이 같다고 먹기를 거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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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경순이를 나에게 친구로 주심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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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Littleton - 사진에서 보는 오른쪽 분이시다.
YWAM 에서 예언의 은사를 가지신 분이신데, 이 분과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많다.
이 분이 한국에 오시기 전에, 난 bedts( http://bedts.org ) 를 하고 있었다. 2004년이었고...
그 때 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미국으로 갈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곳은 전략적(strategic)인 곳과 연관되어 있으며
높은 곳(high place)과 관련되어 있을 것을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 때 당시 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더 알길 원한다는 마음을 많이 주셨었고 그에 관련된 책도 읽고 있었다.

난 그것에 대해 확증을 받길 원했는데, 그 때 제프가 와서 예언을 해 줬다.
잘 들어 보면, 이륙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널 들어올릴 것이다. 너는 전략을 세우길 좋아한다. 등 많은 것이 일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때 많이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래는 미국 가기전에 썼던 글들...


V015.wav  (옆의 파일이 제프가 해 줬던 예언을 녹음한 것이다.)



콜로라도 dts에 가기까지  /written by 장선기 (씨앗2호판 20Mar05, special)



2004년 4월 16일

여호수아 1:9 절 말씀 주시다.
-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2004년 4월 21일

오늘 야자 가운데 dts에 대한 생각이 들어 해외 베이스를 검색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관심 갔던 것은 커플들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고, 해외 한국인 dts는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냥 생각들이 접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보경 자매랑 통화 하면서 놀랐다. 보경 자매도 오늘 해외 dts(제주 열방대학 링크되어있는 해외 dts 검색)를 생각하며 검색하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역시 똑같이 커플에 대한 정보를 보면서....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의 생각의 확신을 주셨던 경우를 돌아보아 나가는 것이 맞다는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었다.
거기다 더 놀라웠던 것은 나의 그동안 기도 제목이 누가 나를 calling 한다면 하나님 제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겠습니다 였는데 보경 자매가 나에게 calling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아무튼 너무 놀라서 나는 정말 흥분했고 곧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경 자매와 전화 끊은다음 하나님께 물어보았다.
"하나님 정말 이것이 맞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번 맞다는 말씀을 하여 주셨다.
그리고 어떤 base로 가야 할 지 기도해야 겠다는 것과 앞으로 결혼 일정에 대해서도 기도하며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4월 23일

오늘 내내 난 사단이 주는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그리고 잘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에 시달렸다.
보통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겠다는 주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포기란 쉽지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오늘 bedts 찬양 시간에 하나님은 잔인하게도(?) 계속 너가 어느 곳에 가든치 요동치 않을 것이다. 주의 팔이 너를 붙들리라(찬송가 464장), 주는 평화,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등의 찬양을 통해 어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요동치 아니하리라, 나의 강한 팔이 너를 붙들리라. 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너의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며 계속 말씀하셨다.  내내 눈물만 나왔다.
그리고 창세기 12장 1절로 2절 말씀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선기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계획하심을 믿는다.


2004. 4. 26.

We are living in an incredible season of harvest right now. Regions of the world once considered impenetrable strongholds of darkness are responding to the Gospel at phenomenal rates.
콜로라도 dts 홈페이지에 있는 말이다.
언젠가 교회를 가면서 보경과 하나님께서 이제는 추수할 일꾼을 보내시는구나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우리는 그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놀랍다...^^ 기대된다.


2004. 5. 18.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것은 bedts 기간 동안 강사님을 통해 나에게 calling의 확증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좀 웃긴 발상이다.
강사님이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강의를 하는데 나만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러나, 아버지 사랑 강의의 강사님이 이번에 사정이 생겨 예언의 은사가 있으신 분으로 바뀌어서 뭔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기수는 예언을 안한다고 미리 언질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가 없었는데, 강의 하루 지나 느닷없이 다음날에 예언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차례는 토요일이 되었고 난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였다.
강사이신 제프 장로님을 통해 dts에 대한 확증을 달라고 하였다.
은근히 외국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면 했다. 처음에 예언 기도 받을 때는 잘 몰랐다.
하지만 자리에 들어와 생각해 보니 놀랄만한 부분이 있었다.
나에게 전략을 세우길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난 전략 dts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고,
내가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말씀하셨고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부분에 대한 표현이 있었다. 너무도 놀랬고, 내가 앞으로의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일들을 나눴던 사람들도
나의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놀랐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말 놀라우며 선하시다. ㅠ.ㅠ


2004. 5. 18.

제프 장로님의 예언 중 “사랑이 너를 들어올리게 될 것이다”에 대한 부분
[예수 우리의 복음이라는 헨리나우웬의 책을 읽다가]
중대한 고비에 온전히 반응하지 못한 사람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아라'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1-22)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내가 보는 바로는 그를 제자로 곁에 두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그 청년의 삶은 너무 복잡했다.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았고 챙겨야 할 사무가 너무 많았고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자기 관심사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실망하고 풀이 죽어 예수님 곁을 떠났다.
오늘밤 나는, 예수께서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보시며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좇으라고 부르실 때 "예" 할 수 있을 만큼 내 삶이 단순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그 순간을 놓친다는 것은 예수님과 나 자신에게 슬픈 일일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 진정한 내 자리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다른 부분
이 이야기는 '전부'에서 '무'로 단걸음에 도약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사랑의 방향으로 계속 작은 발걸음을 이어갈 것을 말하고 있다.
부자 청년의 비극은 부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데 있지 않다. 누군들 그러고 싶겠는가?
그의 진정한 비극은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 관계야말로 예수님도 바라시던 바였고 그 자신도 바라던 바였다.
문제는 부에 초연한 태도가 아니라 사랑의 음성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것이다.
초연함이란 더 큰 집착의 당연한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풍성한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초청받았는데 그까짓 얼마 안되는 소유물로 걱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분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주시며 빵도 먹고 남을 만큼 넘치게 주시는 분이 아니던가?

부자 청년이 예수님 말씀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른 제자들처럼 그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얼마나 큰 손해인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다 채워 주시리라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의 음성에 따른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도전이다.


2004. 6. 19.

무언가 모르는 막막한 두려움...
사단이 주는 마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두려운 상황가운데서 담대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이 두려움들을 연단의 기회로 사용하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은 계속 나의 상황 가운데 두려움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신다.
우연히 책을 봐도 두려움에 대한 부분... 강의를 들어도 꼭 두려움에 대한 부분이 나오고...
말씀을 묵상해도 두려운 상황 가운데 사도들이 성령받고 담대해졌는가를 보여주고...
어제 문희곤 목사님의 강의 중에 우리의 편견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셨다.
가나안을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머리속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여 꺼려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함으로 나아갔던 두명의 정탐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담대했다는 것...
편견을 버리며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는 것... 이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이 부분을 마음에 새겼다면 나는 두려움 가운데 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가운데 내가 무엇을 이루고 지금까지 살았다는 나의 교만과 자아가 강해서 진정한 담대함과 강함이 없나부다.
나 자신은 약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강해지며 하나님 앞에 연단받아 성령 가운데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담대함을 연단받자...


2004. 8. 28

bedts 찬양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부분에 대한 마음과 내 마음속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 특히 내게 크게 들렸던 것은
바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하나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이라는 분명하고도 강한 메시지였다. 나의 사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확증시켜 주신 주님...
그 주님의 말씀속에 나는 잠잠하고 평안함과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2004. 9. 5

어제 dts 때의 찬양이었고 오늘 예배의 찬양이었다.
나의 지금 주위의 모습들을 보면 어려움이 많은 듯 보인다.
어머니 건강, 결혼 준비, dts, 학교일들, 미국가는 문제 등...
이런 문제들 가운데 자칫 지치고 힘들 수도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찬양 가운데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기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너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겠니?
너의 상황들이 힘들고 어려울찌라도 오직 나만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겠니?" 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자꾸 눈물이 나왔다.
하나님은 믿음 가운데 나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일어날 수 있는 힘... 바로 하나님께 있다.


2005. 2. 2

[하나님의 인도하심]
지난해를 돌아다본다.
하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던 과정들...
제프 장로님이 원래 예언 안하시기로 했다가 예언 해 주신 일이며...
어느 dts를 가야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경순이가 한국에 와서 콜로라도 dts 추천해 줬던 일이며...
꿈 속에서 고지대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콜로라도 strategy frontier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어느 주일 오후 우리 두 사람이 차를 몰고 갔을 때 나눴던 이야기의 구절이 콜로라도 dts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는 것들...(2004.4.26.에 쓴 글 참조)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보내겠다고 말씀하시며,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던 일...

[어려움들]
그냥 한국에 머물면서 여러 분들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의 걱정들....

[하나님의 신실하심]
dts 합격...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이 모든 것들을 이기고 끝까지 소망을 붙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던 것.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결국...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그분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단,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변치 않으며 흔들리지 않을 때...
숱한 유혹과 나를 넘어지게 하려는 것들에 대해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려고 했던 것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는다.
난 그의 손의 양이라.


2005. 2. 5

^^;;;
오늘밤 유달리 잠이 안오네...
하나님 아버지...
저를 향한 주의 뜻을 제가 잃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세요...
믿음이란...
저에게 주신 뜻을 제가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붙드는 거라고 말씀하셨죠...
아브라함처럼, 노아처럼, 예수님처럼...

이 믿음의 길 가운데 하나님 풍성함을 주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더욱더 알기를 원합니다.
내 평생 소원인거 아시죠?

deeper and deeper
아직도 제 귀를 울리고 있는 이 음성들...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더 깊이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며
그 사랑안에 잠기어 있는 저를 기대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이끄시는 삶을 기대하며...
주를 바라봅니다.

아버지만이 나의 사랑이십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아버지... 그 아름다운 주의 영광을 제가 바라봅니다.
아버지 나라의 그 날까지...
아버지와 더욱더 친밀함을 가져서
그날에는 어색하지 않게 하여 주세요... ㅎㅎㅎ...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항상 넘어지고...
마음을 끝까지 잘 못지키지만...
이번에는 꼭 잘 지키고 싶네요...
아버지... 저를 붙들어 주세요...
오직 주의 은혜만이 저를 붙드실 수 있는 거 제가 압니다.
저의 삶을 통해 주 영광만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 사랑이 저를 들어올립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제게 보여주신 장면이 떠오르네요...
저를 안으시고 끝없는 파도위를 날아간 모습...
그 포근하고 따뜻한 그 품...

아버지... 그 사랑에 저를 계속 품어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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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penang 디렉터...
아프라카 잠비아 에서 살았다. 부모님이 선교사였고.
그리고 형제 중 한 명이 사고로 아프리카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정말 대단하다. 왜냐면 선교 현장에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만, 항상 여유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따뜻함과 기쁨이 있다.
부모님들의 극진한 사랑,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해주며
다 같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Nadine은 말씀을 잘 적용하는 리더이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며, 사람들의 말을 하나 하나 잘 귀담아 듣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민감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9시 정도만 되면 어김없이 자신과 하나님과의 personal relationship을 갖는다.

재정적인 후원을 40만원 정도 캐나다 두 교회에서 받는데,
사실 보면 적은 돈이지만, 본인은 너무도 감사하며 충분하다고 말하고 그 돈을 최대한 아껴서 쓴다.

참 본이 되는 리더이며 모든 사람들이 godly life의 example 이라고 할 정도 좋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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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와 샌디부부
the heart of Father 사역하시는 분들이시다.
참 사랑이 많으시고, 예언의 은사들이 있으신 분들...
콜로라도 스프링스 베이스에서 계셨었고, 또 우리가 그 곳에서 왔음을 알고
집에 초대해 주시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던 분들이다.
아들 하나를 입양해서 키우고 계신데, 제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따뜻함과 사랑이 이 가정가운데 흘러나온다.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항상 웃고 친절하신 분들...
이들 사역 가운데 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풍성함이 넘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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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united kingdom 에서 왔고 Irish 임을 강조한다.
알다시피 영국은 연방국가이니까...
영국계 통신 분야의 가장 좋은 대학 중의 하나를 졸업했으며, 제일큰 통신 분야의 회사에 manager로 스카웃 되었던 사람이다.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지만 한살 어리다.
그런데, 하나님이 중국에 대한 마음을 그에게 주셨고 선교사로 살기로 결정한다.
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는 너무 아쉬워서 대접을 더 잘 해 준다고, BMW 좋은 차도 주고, 집도 준다고 했는데 다 고사했다.
많은 연봉과 좋은 환경을 팽개치고, 페낭으로 와서 SOFM School을 하고 나와 보경 자매와 함께 SBS를 같이 했다.
SBS를 하면서 당장 살 돈이 없어서 struggling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긴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신기하게 알 수 없는 많은 재정이 Robert에게 채워지는 걸 보면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린 그를 로보트라고 부른다.
좌우지간...
그의 삶이 기대가 된다.

참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재주도 굉장히 많지만
언제나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사랑이 넘쳐나는 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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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내려놓음의 문제입니다.
권리포기란 말로 많이 불리고 있지만, 내려 놓음이란 말이 더더욱 좋은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면,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것이므로, 내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럼 제 안에 있는 내려놓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의 문제:
사실, 가난하게 살거나, 불편하게 살거나 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이 어찌보면 저에게는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거나, 고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삶을 어느덧 추구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막연한 반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소위, 돈을 많이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것에 대한 반감들...

과연 이런 행동이 옳은 것일까요?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와도 교제를 나누셨고, 아시다시피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에게도 안타까운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럼, 우리의 반응은 어찌해야 할까요?
이 사회 구조 간에는 너무나 큰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이들과, 나이 드신 분들과의 대립,
보수 주의 진영과, 진보 주의 진영의 대립,
부자와 가난한 자들과의 대립...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고 서로 자기의 생각들이 옳다고 하죠.
어느 것에도 답은 없습니다.

단지, 요구되는 것은 상대방을 편견없이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고,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예수님을 만나고 삭개오는 삶이 변화되었고,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게 되었듯이,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는 삶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함과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된 상태에서 잘못의 교정이 이루어졌던 것이지, 편견이나 어떤 비난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을 바라보던지 간에, 그 사람에 대한 편견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봐주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겠죠.

내려 놓음에 대해 좋은 일화를 소개하죠.
예수전도단의 홍OO 형제님이 bedts 강의 때 이런 강의를 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외국에 강의가 있어서 누추한 여인숙에 묵을 때에도 마치 자기 집인양 편안하게 누리고, 혹시 좋은 호텔에서 묵을지라도 마차 자기 집인양 편안하게 누린다고...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저는, 누추한 곳에서 잘 누릴 수는 있어도, 풍부함에 있을 때는 잘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안에서 잘 누리고, 또한 무엇을 풍요롭게 받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려 놓음의 좋은 실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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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는 두 장 밖에 되지 않지만 놀라운 책입니다.
작은데, 성경에 들어가 있는 것은 뭔가 놀라운게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개인적으로 갖게 합니다.

학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제 1차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지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정말 열심히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에스라나 느헤미야를 읽어보시면 알 수 있죠...
그들이 잠도 잘 안 자면서 열심히 노력했죠...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성전 짓는 것을 멈추기 시작합니다. 14년 정도 동안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학개 2장 4절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계속 마음을 굳게하라고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성전 짓기를 멈춘 이유 중에 하나가 두려움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라에 보면 성전 짓는 것을 중단하게 된 이유가 나오는데, 그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머물러 살던 사마리아인들이나 여러 이방인들의 박해가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짓기를 중단하고 그들의 눈을 돌려 현실적인 만족에 안주하기 시작합니다.
학개 1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전은 황폐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좋은 집에 거주하고 있고, 1장 6절에 보면 이들이 자기 자신의 만족과 필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노력은 많은 것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삶은 우리에게 참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씀을 어떤 분이 성전 건축하는데 이용하며 마음의 일종의 죄책감을 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성전 건축이 우리의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성전 건축에 힘쓰라고...

하지만, 사실 학개를 인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말이죠...
학개 당시 사람들이 성전 건축에 마음이 많고 실제로 힘썼지만 두려움이 그것을 계속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거죠.

좌우지간,
그리고,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지은 성전을 보면서 규모가 보잘것 없음에 대해 실망을 느꼈습니다.(2:3)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면 그 안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이전 성전에 비해 초라하지만, 하나님은 그 영광이 더 클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7, 2:9)

저는 많은 기독인들이 선교사나 아니면 그런 쪽으로 풀타임으로 하면 헌신된 사람이고 그냥 직장에 머물러 있으면 뭔가 부족한 듯이 느끼는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부족해 보여도, 다시 짓고 있는 이스라엘 성전 같이 초라해 보여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시고 임재하시면 그것이 얼마나 크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영광이 있는지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외면적인 거대함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냐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 있게 하시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하나님께 함께 거하는 것. 이것이 하나의 부흥의 원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두려움의 문제로 돌아가면...

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내가 함께 한다. 용기를 가져라. 내가 함께 한다. (1:13, 2:4)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영광스러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9)

전 학개를 보면서 바울의 삶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오로지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모든 두려움과 고통들을 능히 감당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인 상황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인 거대함이나 이 세상의 부나 명예 등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적인 의미를 잊기 쉽고, 하나님의 나라의 풍성함에 대해 잊어버린채 살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그 영광의 풍성함이 얼마나 클지 생각한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매이게 만들지 못하며, 우린 하나님의 자유함속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하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흘러 나오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학개는 이 외에도 다른 굉장한 의미가 있지만
저에게는 위에 적은 부분의 의미들이 많이 다가왔습니다.

이곳에 어떤 자매가 나눈 이야기가 많이 저에게 의미를 주어서 적어봅니다.

그 자매가 생일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림을 하나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그건 결혼식 장면인데, 저 끝에 예수님이 신랑(주례자 앞)의 위치에 있고 그 자매는 드레스를 입고 한 걸음 한걸음 예수님이 서 계신곳으로 다가가는 그런 그림이랍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예수님 있는 그 곳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 일일까요.
삶의 고통과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지만, 그것을 이기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생각만해도 우리에게 소망과 힘을 줍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2006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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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룻기 teaching을 그룹별로 했습니다.
처음에 룻기를 읽었을 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몰라서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르치긴 해야 하는데 뭘 초점을 맞추고 가르쳐야 하는지...
아무리 성경을 보고 또 보아도 룻이나 나오미의 삶-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이 아주 하나님과 친밀한 상태였다고 보여지지도 않고...
자라면서 룻기를 읽었을 때 룻과 보아스의 러브 스토리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숨어 있었습니다.

룻기는 사사기의 일부분인데
사사기는 죄의 순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다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의 길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서 구원하시자만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떠나고 또 심판받고 부르짖고 또 구원임하고... 계속 그런 스토리입니다.

룻의 시어머니는 나오미입니다.
나오미의 이름의 의미는 pleasant(기쁨)입니다.
하지만 유다 가문의 나오미와 남편은 모압땅으로 갑니다.
모압민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잘못된 관계속에 태생된 민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모압자손은 절대 하나님의 공회에 들어올 수 없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오미은 그 잘못된 땅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면 먹을 것을 찾아서지요...
하지만 그 땅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남편도 죽고 아들들은 하나님이 율법속에서 주신 이방여인들과 결혼했고 아들들마저 죽어버립니다.
나오미의 삶을 보면 참 비참하고 힘든 우리의 모습들이 떠올라집니다.
힘겨운 삶 속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지만 많은 것을 실패한 사람의 모습...
희망없음...
나오미 아들들의 이름도 참 재미있습니다.
말론의 의미는 -sicky 이고 기룐의 의미는 -failure 입니다.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도 나오미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이름을 지었으니 얼마나 나오미의 삶이 힘들고 괴로웠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룻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룻의 민족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로부터 멸시받고 따돌림당하는 그런 민족에다가 더구나 혼자 되었던 모습들...
그의 삶도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같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룻의 동서는 오르바입니다. 오르바의 뜻은 neck 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의 의미는 자신의 생각대로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교만함 결국 그 교만함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우상을 만들고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룻의 이름은 친밀감입니다. friendship

룻은 나오미에게 시어머니가 가는 곳은 설령 죽음이라도 무조건 따르겠다고 합니다.
저자는 유달리 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시로 하나님을 떠나고 그랬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룻처럼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을 끝까지 유지하길 원했습니다.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나가는 것 이것이 룻기의 큰 하나니의 메세지인 것 같습니다.
룻이 나오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갔듯이 말입니다.

한국에 휴대폰 광고중에 좀 섬뜩한 광고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데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등에 꼭 달라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좀 섬뜩하지만...
좌우지간 하나님과 절대 떨어지지 않게 끝까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붙들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신약도 보면 같은 메세지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가지가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 이야기...
예수님이 나의 길은 험한 길인데 그길을 따라 올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들...
어떤 상황 가운데도 힘들어도 하나님을 꼭 붙드는 것...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저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곳 말레이시아의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힘듭니다.
날씨가 더워서 머리도 아프고... 환경은 열악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건강적인 부분들도 있고... (더 나눌 기회가 있겠지요...)

두번 째 중요한 메세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입니다.
보아스가 나타나는데요...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척입니다. 친척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12번 정도 나오는데요... 그 의미는 구원자 입니다.
나오미는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삶의 씁쓸함입니다.
만약에 나오미의 삶에 룻의 삶에 보아스(구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의 고통의 악순환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아마 계속 고통과 아픔속에서 희망없음 속에서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아스가 나타나서 그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나오미의 삶은 마라에서 나오미로 바뀌었습니다. 씁쓸함에서 기쁨으로...

나오미는 한편 죄책감도 가지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왜냐면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통해 그의 삶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자... 즉 하나님,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이 이야기는 신약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와 굉장히 연관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삶에 희망없이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4:5~ 이야기)
그래서 예수님 외에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을려고 남자를 여러번 바꿨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진정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은 남편이 되어서 계속 함께 했겠지요...
인생에 피곤해서 그렇게 있을 때, 희망없이 다른 곳에서 해결을 찾을려고 했을 때, 결국은 실패했을 때,
예수님이 찾아 왔습니다. 내가 영원한 생수를 줄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나에게 해답이 있다.
그 여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바로 그 redeemer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룻기는 희망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바로 소망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끝까지 친밀감을 유지하라는 메세지를 닮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오미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룻은 이방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구원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결국 룻기 마지막 장에 보면 룻의 자손을 통해 다윗이 나오고
마태복음 1장에서 보듯이 다윗의 자손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사랑...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나오미와 룻과의 관계와,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22 -이 부분은 저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적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의 정말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소망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를 하나님은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희망과 우리의 위로이십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받은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
선기 드림...
200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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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탄의 유혹함으로 인해 죄에 빠져 들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이후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받은 존귀한 자라는 신분을 잊어버리고 자꾸 유혹아래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이후로, 사람은 자신의 관점이나 자신의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행위로 모든 것을 용납하고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죄를 지은 이후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신이 생각하기에 수치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리기 시작하였다.(3장 7절)
바로 여기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인간 중심적 사고 방식이 들어가게 된다. 선악과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신이 착한 행위를 하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생각들... -들이 도처에 사로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자신을 하나님 대신으로 놓게 되며 나중에 나아가 바벨탑 사건에서 그 극치를 맛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죄에 대해 문책하시지만, 그 죄를 이기고 해결할 수 있는 구원의 약속을 보여 주신다.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직접 해 입은 무화과 나무잎의 행위로 나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아래 직접 피 흘림이 있는 구원으로 나아가는 가죽옷인 것이다.(21절)
하나님은 결국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주시고 자기를 제약하기로 결정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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