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8-9
내면세계, 곧 마음과 생각이 올바른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바깥세상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MSG)


 죄악이 범람한 이 세상 속에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찾아보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호의를 베푸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안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기쁨이겠습니까?
 신앙 생활도 겉으로는 훌륭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 것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직 마음과 생각이 올바로 하나님께 향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peacemaker로 부르셨습니다. 이 역할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요구되는 것입니다. 교회들도 갈등과 분쟁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소그룹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많이 있습니다. 욕심과 경쟁이 이런 구도를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쟁의 사이에서 중재하면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우리는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는지,  사람에게도 우리의 마음의 진실함으로 대하는 지 점검해 보고, 혹시 주변에 갈등이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또한 우리가 누구와 경쟁 관계에 있다면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한번 따라 주면서 섬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마 5:7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MSG)

 정확한 통계는 생각나지 않지만 전세계 부의 70% 이상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대다수의 국가가 또한 기독교 인구가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설교를 하면서 봐라, 기독교를 받아들이니 부자가 되지 않았느냐? 다른 종교 믿어서 잘 사는 나라 봤느냐? 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의 대부분을 기독교를 많이 믿는 국가에서 차지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부유함입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예수 잘 믿었더니 복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라고 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tv를 보다보니, 사회의 어려움을 돕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놓는 것이 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의 심정은 가난한 사람이 안다고 오히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내어 놓는 것을 볼 때 눈물이 핑 돕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돈을 맡겨 주셨습니다. 돈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재능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만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 다른 사람을 돌보면서 주님께서 돌보심을 체험하는 삶 이 삶이 2010년에 넘치기를 기도해 봅니다.

 백주년 기념교회의 이재철 목사님은 자신의 책(새신자반, 성숙자반)에서 이런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 분은 이 말씀을 신조로 사신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이 많아도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나의 필요한 것들을 주님께서 다 채우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맥락의 글을 적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이 시간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도하지 못한 자신의 것들을 돌보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 오늘 너무 추워서 새벽기도를 갈 때 잔뜩 웅크리고 갔더니 근육이 그대로 굳어서 목이 뻐근합니다. 추운날은 스트레칭을 꼭 하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

마 5:6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 (MSG)

 한 해가 시작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합니다. tv를 보다보니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도 신년만 되면 중국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온통 복을 기원하는 종이 같은 것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복은 아마도 돈이 되겠지요. 돈의 복, 건강의 복, 자녀 출세의 복, 운수 대통의 복 등등 여러가지 복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통틀어 보면 하나님을 복으로 삼는 사람, 즉 그 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눔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의 교제 보다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그 분만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며 그 분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 그 분을 신뢰하며 그분과 깊은 교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는 입맛이 당기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 그 분 자체를 신뢰하는 마음이 생긴 걸까요? ^^;;;
그러니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신겁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의 상황 가운데 너희에게 이런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죠.
 즉, 사람들이 저보고 너는 이런 면에서 복 받았다라고 하는 것과 하나님이 선기야 너 이런 면에서 복 받았다라는 것이 정말 많이 틀립니다.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아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주신 참 복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감사를 드리는 한 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내 삶 가운데 드러나시고 그 분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는 삶 다시한번 다짐해 봅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마 5:4-5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MSG)

 
 마태복음은 구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언의 성취에 대한 부분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 습니다. 그래서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동안 스스로 해 보려고 했는데, 결국 좌절과 절망 뿐이지 않느냐?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겠다. 하나님이 직접 구원하시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즉, 예수님이 직접 너희들 가운데 가르치시고 위로하시고 함께 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기억해야 마태복음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8복의 내용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본문을 개역개정으로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는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여러분, 애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애통해야 하나님 앞에서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약간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애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너희가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그 속에서도 어려움과 핍박을 겪어서 혹시 애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애통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고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봐야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패커도 이런 해석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사람도 그런 잃어버린 양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들 이렇지? 힘들지? 이런 너희들에게 이제는 복이 있어. 왜냐하면 너희들은 나에게 왔기 때문이고, 나의 품에 안길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율법주의로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내가 너희를 이제 품에 안겠다. 주인없는 목자처럼 방황하는 너희를 내가 직접 안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구절들을 우리는 이러이러 해야 합니다. 복 받기 위해 이러이러 해야 합니다.라고 바꾸면 또 악순환인 은혜를 율법주의로 바꾸는 역할밖에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힘드시고, 어떤 사람도 여러분 곁에 없다고 느끼십니까?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과정 가운데 아무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 없습니까? 그래서 애통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시고 품에 안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음성보다 격려보다, 하나님의 격려와 인정을 받을 때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품겠다. 걱정하지 마렴. 너희들은 내가 인정하는자야. 힘내렴.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0) 2010.01.07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0) 2010.01.06
공평하신 하나님!  (0) 2010.01.04
너희가 작아질수록  (0) 2010.01.04
같이 가는 신앙  (0) 2010.01.02
금요기도회에 갑자기 반주자가 못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땜방 전문 사역자(^^;;;)인 저는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만 했었지 반주는 하지 않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신디로 반주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손이 내 손이 아니더군요. 부드럽게 움직이는 신들린 손놀림이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반주를 했습니다.

본당 앞에 여자 전도사님 두 분이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고 있더군요.
찬양을 열심히 하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분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공평 하신 하나님을 말하며 찬양했답니다. 감사하면서...

내용인즉슨
장** 전도사님, 찬양인도도 잘하고 반주도 잘하고 등등...
이야기를 하시다가
하나님은 얼마나 공평하셔요?
우리 장 도사님 키도 작으시고 머리도 빠지시고 계시고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시죠!!!

두분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더 깊이 예배로 나아갔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눈가에는 습기가 가득찼습니다. ㅠ.ㅠ

simplemindx 라는 무료 마인드맵이 있습니다.
마인드맵은 모든 일을 계획함에 있어 또는 글을 작성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한 도구입니다.
사고의 과정도 마인드맵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설교 본문을 잡아서 일주일 동안 계속 생각하며 받은 것들을 기록했다가 쭉 써내려 갑니다. 한번에 써내려 갈 때 좋은 점은 생각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 정도 써 놓고 또 서 놓고 이러면 장문의 글은 쓸 수 있을지 모르나, 설교문 작성시 하나님이 주셨던 느낌의 표현이라던가, 기타 글 외에 상황적인 표현들이 글 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인드맵을 그릴 때 어느 정도 빼 놓지 않고 설교문에서 필요한 것들을 채울 수 있습니다.
우선, 성경 본문의 구절 중에서 주제가 될 만한 문구를 하나 잡습니다.
주제가 다양하면 절대 좋은 설교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 또는 두개 정도가 됩니다.

1. 그러면 마인드 맵에 처음 도형 안에다가 그 문구를 적습니다.
2. 그 다음 가지는 왜? 라는 질문입니다. 왜 그런 구절이 있는가? 왜라는 질문은 배경을 담는 질문입니다. 그 말을 저자가 한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시대에 어떤 상황이 있었길래,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를 찾습니다.
 성경은 context로 파악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작성 당시의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를 알아야 명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다음가지는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 비슷한 문제는 뭐가 있나? 현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개인의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를 찾는 것이죠.
4. 다음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무엇을 우리는 배울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그 분의 음성은 이것이다를 적습니다.
5. 다음 가지는 예화입니다. 적절한 주변의 이야기, 내 경험, 다른 사람의 경험 등, 여러 가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고릅니다.
6. 다음은 적용입니다.

뭐 이 정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죠.
가장 간단하게는 세 가지입니다.
ywam sbs에서 던지는 질문 세 가지
observation - 관찰의 영역(발견한 것)
interpretation - 왜? 라는 질문을 던져서 그 해석
application - 적용의 부분입니다.
이 세가지만 마인드맵 그리셔도 충분합니다.
그 다음에 예화만 추가하시면 좋겠죠...

대충 그려본 일부입니다. 아직 다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방법만 보여드리려고 그려본 것입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자세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그러나 기약없습니다. ^^

'Preach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문 던지며 시작하기  (0) 2009.06.25
설교는  (0) 2009.03.09
설교에서 가장 큰 주제는  (0) 2009.01.07
설교는 복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0) 2009.01.07
서론은 약간의 암시를 주는 현실 사건으로  (0) 2009.01.06
마 5:1-3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큰 무리가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 배우고, 그분께 인생을 건 사람들도 함께 올라갔다. 조용한 곳에 이르자,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셔서 산행에 함께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이렇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있다.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MSG)

오늘은 두 가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플로이드 맥클랑은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지 직접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플로이드 맥클랑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타내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모아 놓은 것이 성경이지요. 성경을 읽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라는 책에서 저자인 문희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수다쟁이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잘 모르겠다면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신 분이셨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을 하셨으며 그 이후로도 계속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제자들을 시간만 나면 끊임없이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로 가르치시고, 직접 해설도 하시고,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말씀도 하시고, 제자들이 서로 싸울 때는 그것을 지적하시기도 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또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수다쟁이라는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며 우리를 성장시키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아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자녀가 아버지 앞에 그 모든 것을 말씀드리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시려고 하고 가르치시려고 하는 것들을 듣는 것은 어떨까요? 산으로 올라갔을 때 예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을 사람들은 듣습니다. 2010년 한 해 우리는 우리는 각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먼저 예수님이 앉으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조금만 눈을 들어보면 예수님이 저기 계신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먼저 듣는 것은 어떻습니까? 너무 우리의 말이 많았고 우리의 생각이 많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쓰임 받는 많은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물어보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깊게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2. 마태복음 1장에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을 때 그 이름을 예수-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고 지으라고 천사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계속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볼려고 했을 때 잘 살았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죄악의 수렁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예수, 하나님 그분 자신이 직접 구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인간으로 이 땅 가운데 사시면서 제자들과 더불어 배고픔과 아픔들 모든 고난들을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시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예수님도 똑같은 그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함께 하니까 이 시간들 가운데 힘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 그분의 삶을 의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우리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 드리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살아보라고, 그럴 때 우리 삶에 영원한 기쁨과 생명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있다.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작아질 수록, 작아져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뜻을 내려 놓고 우리의 힘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그분의 생각과 뜻이 우리 가운데 자리 잡도록 하고 그분의 이끄심대로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 때 그 분의 다스림은 커지며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게 넘칠 것입니다.

 2010년 한 해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의 작음을 인정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계획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맡겨 드립시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0) 2010.01.05
공평하신 하나님!  (0) 2010.01.04
같이 가는 신앙  (0) 2010.01.02
2010년 새롭게 시작되는 믿음의 발걸음  (0) 2010.01.01
신대원 생활 이야기1  (0) 2009.12.31
마태복음 4:18-25
고기잡이는 그들의 평소 직업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희를 새로운 어부가 되게 하겠다. 잉어와 가물치 대신에 사람을 낚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대로 그물을 놓아두고 그분을 따라갔다.(중략) 예수께서 거기서부터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 예수께서는 회당을 집회 장소로 삼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하나님 나라가 그분의 주제였다. 바로 지금,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질병과 잘못된 생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리아 전 지역에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정신 질환, 정서 질환, 신체 질환 할 것 없이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쳐 주셨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행렬은 끝이 없었다. (MSG)

 그리스도인들의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고, 완전한 신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에 신학적인 의미가 많이 있지만 별로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지라(^^;;;), 좌우지간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다는 말은 그분이 참된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 즉 example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본이 되는 인간상을 마음에 두고 그 사람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그 말 뜻에는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마음 속에 이상적인 인간을 놓는 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사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분이시지? 어떻게 그분을 닮아가느냐? 라고 말하지만, 히브리서에서는 그분이 인간으로 우리가 겪는 고통을 똑같이 겪으시고 참된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행동 하나 하나를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원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이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그 분은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하나되셔서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혼자 거하셨던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같이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바로 공동체성입니다. 같이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실망했다고 하면서 자기만 신앙 생활 잘 하면 되지 이러면서 혼자 신앙 생활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공동체를 통해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창조 때부터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더 중에서도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자기가 다 할 줄 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일을 맡겨 주지도 아니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할 줄 알아도, 부족해 보여도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일들이 놀랍도록 확장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고생 충분히 이해하고 격려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지위를 혼자만 누리시고 계시고 혼자 다 일을 하려고 하신다면 같이 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 가운데서도 일정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성장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교회 가운데서도 자기가 정말 잘해도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너가 해 볼래? 하면서 기회를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속터지는 일들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 큰 감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어떤 여배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동안 철저히 무명으로 있었던 저에게 모 작가님께서 나를 선택하여 주셔서 기회를 주셨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작가님은 작년인지 재작년에도 어떤 여배우의 고백 속에서 언급되었던 분이셨습니다. 항상 기존의 인기있는 사람들만 찾는 제작 현실 속에서 과감하게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그 작가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같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더 나눌 것이 많지만 너무 길면 읽기에 화 날 수도 있으니, 여기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줬던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그들이 성장하도록 도우라고 부탁하십니다.
 2010년 한 해는 나 자신만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 보내며 그들 또한 하나님 안에서 제자로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에 유용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은 어떨까요? 비단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유용한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도록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평하신 하나님!  (0) 2010.01.04
너희가 작아질수록  (0) 2010.01.04
2010년 새롭게 시작되는 믿음의 발걸음  (0) 2010.01.01
신대원 생활 이야기1  (0) 2009.12.31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0) 2009.12.31
마 4:12-17
예수께서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기슭에 자리한 호숫가 마을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이로써 이사야의 설교가 성취되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 이방 사람들의 중심지인 갈릴리, 평생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죽음의 땅에 앉았던 그들이 해 돋는 것을 보았다. (MSG)


 2010년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임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 낯설은 길, 상처받고 깨어진 곳에 들어가는 길이 저에게는 펼쳐져 있습니다. 그럴 때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해를 시작하는데 한 해를 힘차고 기대하며 맞이하실 수도 있고, 올 한 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낯설은 환경 속에서 적응해야 할 지 긴장 되시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어떤 긴장 관계에 들어가야 할지, 또 나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지.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요한이 체포되자마자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사실 요한은 동역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도왔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요한이 체포가 되었고, 이제 모든 사역은 예수님께서 주도적으로 하게 되셨습니다. 그럴 때 사실은 나에게 익숙한 환경 속에서 그냥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분의 새로운 발걸음을 고향 땅 나사렛을 떠나,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고 예비하심이 있던 그 소외되고 상처받은 주변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이 바로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복이 되게 하겠다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익숙한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순종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울고 웃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그 곳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웠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항상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익숙한 곳에 물들어서 어떤 믿음의 발걸음도 옮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의지이던 아니던 새로운 곳으로 우리를 옮기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다면, 이전 것은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정하며 주님의 뜻이 있는 곳에 나의 뜻이 있기를 기도하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요?

 저도 제 맘에 안 드는 곳이라고 생각될 지라도, 올 한 해 그저 주님의 뜻이 있는 곳에서 이전의 생활은 잊어버리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리라 결심해 보며 하나님 저와 동행하시며 보내시는 곳에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는 하루로 보낼 생각입니다.

 낯선 곳, 깨어진 곳, 새로운 곳으로 가시는 믿음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Intimacy With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가 작아질수록  (0) 2010.01.04
같이 가는 신앙  (0) 2010.01.02
신대원 생활 이야기1  (0) 2009.12.31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0) 2009.12.31
하나님의 바로 잡는 역사는 어디서부터?  (0) 2009.12.30
신대원 3학년 2학기에 예배의 실제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예배를 주제에 맞게 기획을 합니다. 저희 팀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저희는 성찬과 세례과 포함된 예배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각각의 말씀 근거와 이론들을 사용해서, 성찬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빵으로 해야 한다. 떡으로 해야 한다. 포도주로 해야 한다. 포도즙으로 해야 한다. 성찬 집례시 까운을 입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성찬에 이런 멘트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세례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세례시에 사용되는 물에 성령 임재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세례의 분위기가 유쾌해야 한다. 아니다 엄숙해야 한다. 축제처럼 되어야 한다. 아니다 진지해야 한다. 이런 논쟁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성경적 근거와 신학적 지식과 교회 전통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불붙게 되었습니다.
 이런 후에 어떤 형제님이 말하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교회가 교단이 분열되는지 이해가 된다고. 왜 서로 사이가 갈라지는지 아주 깊이 느껴진다고... ^^;;;
 사실 교파가 나누어진 것도 아주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본질과는 상관도 없는 것 때문에 교단이 나누어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ㅠ.ㅠ
 이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12, 13장을 우리는 수없이 읽으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