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 바쁜 하루를 지내고 오다 보니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밥 먹고 내내 잤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1시쯤 일어나게 되었네요. 다시 잘 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항상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지만, 그래도 꼭 붙들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이 나에게 얼마나 가까운 분이신가? 그분의 따뜻함을 나는 느끼고 있는가? 그분과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는가?
주님은 그토록 우리와의 관계안의 친밀감을 원하십니다.
사실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더 알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비록 허물이 많고, 아직까지 변화되지 않는 저의 모습이 많지만, 주님 변화시켜 주시고, 주님 사랑 더욱더 알게 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세요. 평생 타락하지 아니하고 마음 지킬 수 있도록 하여 주세요.
그저 말씀 하시는 것이라면 거기에 순복하며 그 길을 묵묵히 따르는 자 되게 하여 주세요.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모든 율법을 뛰어넘게 하며, 모든 율법을 이루게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존귀한 가족, 청년부원들...
어느 한 사람 하나님께서 아끼시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 안에 부족한 점들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더욱더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든지간에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이에서 더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3. 모든 것이 주님의 은헤입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고 오로지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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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대원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1월달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한 달 있으면 종강이고 그것으로 신대원 생활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자에게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여 주신 것만으로도 참 감사합니다.

항상 중요하게 얻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따라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계획 하신 곳에 내 자신이 통로로 사용되길 원하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것을 바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율법주의적으로 살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유진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의 갈라디아서를 보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율법을 자발적으로 감사함으로 지킬 때 율법주의라는 것을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세우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일 하나 하나에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라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삶이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대 교부들이 성령을 사랑의 끈으로 생각한 것이 많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진정한 자유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렵고 답답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 사랑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십자가의 길이라도 자유롭게 됩니다.
멀리 돌아가지 마시고
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그 사랑에 반응하는 자 되도록 기도하며 나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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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두어지고 악해지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절망하다가도,
하나님이 숨겨두신 믿음의 용사들을 발견하게 되고 도전받습니다.

삶의 무게는 저보다 훨씬 무겁지만
믿음으로 이겨낼려고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 축복이 됩니다.

사역자이지만 성도들의 믿음을 보고 많이 도전받게 된다는 것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잘것 없는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믿음 좋은 성도를 만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신앙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는 게 취미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서점에서도 특히 성경이 있는 부분은 꼭 들립니다. 여러 가지 디자인의 성경, 여러 목적을 위한 성경 등 여러 가지 성경들이 있습니다.

저는 평소 성경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쉬운 성경,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우리말 성경 등 여러 가지 쉬운 번역 본의 성경이 있지만 살짝 아쉽습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이해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성경을 찾아보니 그림만 넣어둔 개역 개정판이나 쉬운 성경 이런 종류의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참 아쉬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딱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의 출판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요? ^^
동화책과 같은 성경이 교회학교에서도 읽혀지는 그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아울러, 유진 피터슨의 message 성경이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옵니다.
유진 피터슨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다가 너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본인이 직접 현재 사용되는 일상어 형태로 성경을 옮겼습니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message 성경입니다.
사실, 유진 피터슨의 영어로 된 메시지를 한국어로 옮겼으니 이 또한 한국사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유진 피터슨과 같은 취지를 가진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성경을 위한 성경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 성경도 그런 맥락에서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저도 해 보고 싶으나, 워낙 언어적 소질이 떨어지다보니 참 아쉽습니다.
주님께서 그 쪽에 소질이 있는 유진 피터슨과 같은 사람을 일으키셔서 아이들을 위한 성경, 초신자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경 그런 성경이 출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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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노우호 목사님의
성경통독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구약편, 신약편 총 2권)입니다.
노우호 목사님은 성경 통독 운동을 오랫동안 펼쳐 오신 분입니다. 이분만큼 성경 자체에 대한 열정을 지니신 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성경을 사랑하시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나 뵌 적은 없으나, 이 분의 책을 거의 다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읽을 때 마다 오랜 시간동안 성경 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그 통찰력들이 신선하게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우호 목사님은 이 책을 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노우호 목사님은 오직 성경으로 부터 발견하고 성경으로 부터 얻은 것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성경으로부터 듣는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진실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약도 그림과 같은 표지에 구약편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http://mall.godpeople.com/mall/?G=97889710304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 다닐 때 저는 의아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았던 선배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신앙을 버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과연 그들이 믿었던 신앙은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이 아니었다.
믿었으면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극단적인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직도 저의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죤 맥아더 목사님은 이 책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 뜻을 따르려는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라고 까지 선언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겠다 지키겠다라는 순종과 분리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서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그들이 영생을 얻었는지 성경의 구절 구절 하나 하나를 예로 듭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의 특징은 행위로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 즉 모든 면에서 예수님 아닌 것을 주로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즉, 행위가 좋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구원 받았으면 반드시 행위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위로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복음의 문제는 회개에 대한 부분의 약화됨이라고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지식으로만 동의하고 영접 기도만 하면 구원이 임하는 것처럼 속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서 뿐만 아니라 책의 부록에는 사도들과 초대 교회 및 유명 설교자의 설교 속에 나타난 믿음과 행위의 일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도 그렇고 요한 일서도 그렇고 바울 서신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비추임을 받고 영생을 얻은자는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행위 속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들도 칭의를 강조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화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칭의와 성화는 반드시 같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지킴으로 어떤 것을 이루겠다는 사람은 율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참된 구원의 빛을 누리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기에 지키는 율법의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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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14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독자는 알아 들으라. )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13:15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려 내려 오지 말며

13:16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 가지 말아라.

13:17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13:18 이런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13:19 그 때에는 무서운 재난이 닥쳐 올 터인데, 이런 재난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또 앞으로도다시 없을 것이다.

13:20 주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사람은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뽑으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줄여 주셨다."

 

재난이 다가오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재난이 다가올 때 가장 피해를 입는 계층이 어느 계층인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마가 다가올 때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침수가 잘 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즉, 침수가 잘 되는 걸 알면서도 그 지역에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질병이 돌 때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치료를 잘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플루로 인해 인도가 어느 나라보다 피해를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문지상에 보면 그 나라는 치료 시설이 열악하여서 방치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피해가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앙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에 편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에 골고루 경각심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 계층에 피해를 입는 방식으로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하나님의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생각없는 비판에 대해서 감히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일컫는 행동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위에 적은 마가복음에서도 불의한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군인에 의해 자행되는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일이라든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행동에 대한 이미 이루어진 예언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런 행동들이 결국 약자들에게 가장 피해가 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더 고통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고통의 기간을 줄여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일으키고 악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의 결과를 수습하시고 선으로 바꾸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나미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생각의 깊이가 얕음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구는 인간이 지구를 잘 보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에너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한쪽으로 지구 에너지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지각의 얕은 부분을 통해 분출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쓰나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약한 지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쓰나미의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으켰습니까? 선한 하나님을 왜 불의한 하나님으로 몰고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어두운 눈이,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죄악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 죄로 인해 가슴 아프고 절망 적인 현상들을 선으로 바꾸길 원하시고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결국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것이 주님의 심판이니 뭐니에 대한 판단을 하지 말고,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현실이 빨리 그치고 여러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도록, 고통의 기간이 짧아지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레몬서 1:1-3 (현대어 성경본)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과 믿음의 형제 디모데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1:2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 여러분과 압비아 자매와 나처럼 십자가의 군인이 된 아킵보도 함께 읽어 주시오.

1:3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빌레몬서는 옥중서신의 하나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입니다.

감옥은 고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의를 위해 일하다가 육체적 감옥에 갇힐 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감옥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좌절하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적을 분명히 하고 도리어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걱정해 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상할 뿐입니다. 그럴 때 도리어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결과를 맺습니다.

바울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나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낼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더욱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래는 신문기사입니다.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암투병 숨기고 강단지킨 토목학계 거목 영면

http://bit.ly/Q4L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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